올가 페도렌코 서울대 인류학과 조교수 ⓒ서울대 인류학과
올가 페도렌코 서울대 인류학과 조교수 ⓒ서울대 인류학과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 남학생에게 공개 서신 보내

외국인 여성이 겪은 캠퍼스 내 성차별·외국인 괴롭힘 공론화

“캠퍼스 내 여성의 평등·인권 문제, 구성원 모두가 고민해야”

“경찰에 연락하는 대신, 나는 학생에게 이 공개 서신을 쓰고, 이 일을 공론화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사건을 성차별, 외국인 괴롭힘, 그리고 그릇된 인종적 편견에 관해 배울 수 있는 계기로 삼기 위해서요.”

올가 페도렌코(Olga Fedorenko) 서울대 인류학과 조교수가 최근 이 대학 학생들을 통해 공개한 ‘나를 괴롭힌 서울대 학생에게 보내는 공개 편지’의 일부다. 러시아 출신으로 미국, 캐나다 등에서 연구와 교육 활동을 해온 그는 서양인 인류학자로는 최초로 지난해 가을 서울대에 임용돼 ‘한국학’을 가르치고 있다.

이 편지에 따르면, 지난 10월5일 밤 9시께 인적 없는 캠퍼스를 혼자 걷고 있던 페도렌코 교수에게 한 서울대 남학생이 다가와 갑자기 영어 단어 발음을 묻고, 영어를 가르쳐달라고 요구했다. 페도렌코 교수가 이를 거절하자 이 남학생은 소리를 지르고 공격적인 몸짓을 하는 등 위협적인 태도를 보였다. 마침 길을 가던 한국인 여성들과 경비원의 도움으로 페도렌코 교수는 안전하게 귀가했다. 

그는 “불안했고, 당혹스러웠고, 화가 났고, 그리고 사실 두려웠다”고 고백했다. “내가 그들에게 주의를 기울일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는 한국 남성들이 얼마나 더 많을까? 그런 남성들이 우리 캠퍼스에 얼마나 도사리고 있을까? 그리고 그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이들이 내게 소리를 질러댈까? 어떤 사람들은 언성만 높이고 끝이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할 수도 있겠지요.”

그의 주변인들은 경찰에 신고하라고 권유했다. 그러나 페도렌코 교수는 그 학생의 행동이 “성차별적이고, 위험한 인종적 편견에서 비롯된,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이며, “왜 그런지 교육하는 것은 서울대 교수의 의무”라는 판단에서 신고 대신 이 공개 편지를 작성했다고 밝혔다.

 

페도렌코 교수는 이 남학생의 행동이 “‘강간 문화(rape culture)’”, 즉 “여성에 대한 남성의 권리 주장과 폭력을 제도화하는 사회 안에 배태된 여성혐오적인 문화”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또 이 학생이 자신을 “한 명의 인간으로 대하지 않고 백인 여성이라는 정형에 끼워맞췄고, 그 편견을 따르길 거부하자 화를 내고 공격적으로 굴었다”고 비판했다.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주의를 기울일 의무는 전혀 없습니다. 설령 그 의도가 호의적인 경우라도 말입니다. 모든 여성은 독립적인 주체입니다. 당신이 낯선 사람에게 영어 레슨, 문화 자문, 혹은 잡담을 요구할 권리는 없습니다. 남성이건, 여성이건, 한국인이건, 한국인이 아니건 - 어떤 이에게 접근하건 간에, 당신은 그 사람을 존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이 당신이 바라는 대로 응해주지 않을지라도 말입니다.”

그는 이번 사건은 자신만이 아닌 캠퍼스 내 많은 외국인 여성들이 경험한 여성 문제고, 모든 구성원들이 함께 고민할 인권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것이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이고, 우리는 이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이는 여성의 평등과 관련된 사안이며, 인권과 관련된 사안이기에 말입니다. 그리고 이를 고민하지 않는다면 서울대가 진정 세계적이고 다양성을 갖춘 대학으로 거듭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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