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4차 민중총궐기에 참여한 여성들이 깃발과 손팻말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19일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4차 민중총궐기'에 참여한 여성들이 깃발과 손팻말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이정실 사진기자

‘박근혜 퇴진’ 이후의 세상, 집회 공간에서부터 만들어가자

하윤정 (노동당 여성위원회)

“여성·청소년 등에겐 불평등한 집회 공간, 이제는 바꿔야”

100만이 거리에 모였던 지난 12일, 어떤 남성이 당보(당 유인물)를 배포하고 있던 여성 상근자(20대 여성)에게 욕을 하며 때리려 했다. 곧 이어 누가 내 옆구리를 세게 찔러서 뒤돌아보았더니 음료를 전해주러 온 어떤 할아버지였다. 꼭 옆구리를 찔러야 했을까? 당보를 배포하는 한 여성 상근자(20대 초반 여성)에게 반갑다며 안으려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경험 때문에 유독 힘든 날이었다.

집회 장소에서 담배를 피우고,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 ‘어려 보인다’는 이유로 반말하고.... 과거부터 계속된 일이다. 온라인 공간에선 박근혜 대통령을 ‘병신년’, ‘닭년’ 등으로 지칭하는 언어를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한 명의 시민으로서 집회에 평등하게 참여해 목소리를 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불평등하다. 사회를 바꾸기 위해 참여하는 집회다. 다른 약자나 소수자를 비하·혐오하지 않고 동등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19일 사전집회에서 시민자유발언에 참여한 한 남성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미스 박’이라고 말했는데, ‘페미존’ 참가자들이 그 자리에서 바로 ‘혐오 발언 하지 마세요’라고 외치고, 주최 측에 문제를 제기해 본 집회 사회자를 통해 사과를 받았다.

나아가 박근혜 퇴진 이후 우리가 만들 세상의 모습을 집회의 공간에서 조금씩 만들어가고, 시민들과 토론해야 한다. 최근 ‘페미당당’을 비롯한 온·오프라인 페미니즘 활동그룹과 정당 내 여성주의자들이 함께 만든 ‘페미존’은 하나의 좋은 시도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19일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4차 민중총궐기에서 중‧고생들이 피켓을 들고 집회에 참가하고 있다.
19일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4차 민중총궐기'에서 중‧고생들이 피켓을 들고 집회에 참가하고 있다. ⓒ이정실 사진기자

 

12일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3차 민중총궐기에 참여한 남성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12일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3차 민중총궐기'에 참여한 남성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이정실 사진기자

여성혐오적 ‘아재문화’ 뒤엎을 여성들의 반란이 필요하다

이소영 (30·전문직)

여성혐오를 자유와 표현의 문제로 여기는 사회, 민주주의 아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는 여성혐오가 우리 모두의 내면에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시장, 국회의원, 유명 진보 인사.... 지정 성별이 여성인 이들이 ‘비선실세 국정농단’의 핵심 인물로 드러나자, 감춰온 혐오를 드러내는 이들이 늘었다. 이게 왜 ‘여성혐오’냐고? 한두 여성의 부적절한 처신과 언행은 여성 일반의 문제로 호명되는데, 지금까지 누구도 남자 대통령의 실패에 대해 ‘남자의 문제’ ‘앞으로 남자 대통령은 못 나올 것’이라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함께 싸우고 있지만, ‘우리’는 평등하지 않다. 

광장과 온라인 공간에서 오가는 숱한 여성혐오 발언은 대개 처벌도 주의도 받지 않는다. 그 바탕엔 성차별적 권력관계와, ‘그 정도’는 문제 삼지 않는 남성 중심적 공동체가 존재한다. 오히려 명백한 혐오 발화마저 ‘표현의 자유’로 포장돼 수용·확산되고 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어느 남성 진보 인사는 사석에서 ‘병신년’ 발언에 누군가 문제를 제기하자 “예민한 XX들의 물 흐리기야. 여자가 했으니까 년이라고 하지, 남자가 했으면 놈이라고 하고”라고 일축했다. 이곳은 페미니즘이 ‘역차별론’으로 둔갑하고, ‘IS보다 더 무서운 극단주의’로까지 불리는 한국 사회다. 현 정권의 불의와 파탄에 항거하는 여성들은 이런 거대한 산 앞에 서 있다. 그 앞에서 주눅 들고 상처받아 결국 집회를 거부하는 여성들이 늘어날까 걱정스럽다. 

그래서 다가오는 촛불집회의 ‘페미존’은 더 커져야 한다. 평등하고 안전한 집회를 만들려면, 여성이 원하는 새 민주주의의 청사진을 보여주려면, 더 많은 여성들이 모여 그러한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집회 주최 측도 강한 의지를 보태야 한다. 더 엄격한 규정을 만들고 이를 위반하는 언행은 엄격히 제재해야 한다. 여성혐오를 자유와 표현의 문제로 여기는 사회를 민주주의 사회로 불러서야 되겠는가. 그러한 언행을 서슴지 않는 ‘아재’들의 시대착오적인 현실 인식과 집회 문화를 뒤엎을 여성들의 반란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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