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지촌 여성들과 함께 벼랑에 서다

지역여성들과 함께 하는 여성운동가들이 늘고 있다. 지역 현안을 해결하

는 주체는 이제 여성이어야 하며 지역여성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으로 여

성운동의 방향은 전환되어야 한다. 지역사회에 깊숙히 뿌리 내리고 가부장

제적 질서와 싸우면서 지역사회를 재편하는 데 온몸을 던지는 운동가들을

만나본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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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명지대 캠퍼스 내 자택 앞의 안일순씨.

커다란 눈이 인상적인 편안한 얼굴에 사연많고

재주있는 여자들이 주위에 꼬이는(?) 것 같다는

주위의 평. <사진·민원기 기자>

“여성운동이라니까 너무 거창하네요. 더 좋은 분들이 많을 텐데...”

끝까지 겸손을 표하며 물러선다. 이 운동가에게 ‘당신도 훌륭한 여성운

동가입니다’라는 사실을 주입시키는 일은 어렵고도 특이한 경험이었다. 예

의상 겸손의 말을 하는 것이 아닌, 진실로 자신의 가치를 모르고 있는 것같

은 그는 기지촌 여성들의 친구이며 그네들의 이야기를 소설과 그림으로 널

리 알린 안일순씨.

대표작 '뺏뻘'의 묵직한 느낌과는 달리 얼굴은 마냥 앳띤 그를 만나보았

다.

기지촌 여성과의 만남에서

'뺏뻘'의 탄생까지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95년의 ‘윤금이사건’이었다. 그전

에는 막연하게 생각됐던 기지촌 여성문제가 이 사건이 터진 후 한국여성단

체연합에서 시를 청탁받아 현장을 방문한 후에는 커다란 전환점으로 다가오

기 시작했다.

“닭장같은 방에 그때가 95년도인데도 연탄을 때고 방마다 요강이 있

고... 마치 5,60년대 판자촌 같았어요. 그에 비하면 사무직 여성문제나 여성

노동자 문제, 농민문제가 엄살처럼 생각되더라구요.”

돌이켜보면 안일순씨는 늘 그들과 가깝게 살았던 것 같다고 한다. 수도

여고에 다니던 시절에는 학교 건너편이 용산기지여서 미군과 여성이 데이트

하는 걸 쉽게 볼 수 있었고 문산으로 이사를 간 후에는 산부인과 의사인 아

버지의 병원에서 유산수술을 위해 대기실에 앉아있던 양색시들을 늘 봤었

다. 서울역 부근에 살았을 때는 시골에서 무작정 상경, 뚜쟁이에게 붙들려

몸팔던 15,6세 여자들이 근처 매춘지역에서 약을 먹고 토하고 쓰러져 있는

걸 수도 없이 봤다. 그리고 어려서는 뭔지 몰랐었던 이 경험들이 기지촌 여

성들과 만나자 매춘문제와 연결되고 그 속에 담겨진 폭력과 권력들에 눈이

떠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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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념적으로만 생각하던 군국주의, 자본주의, 상업주의 등이 완전히 짬

뽕이 돼서 나타난 상태’라고 기지촌을 설명하는 그는 기지촌 출신으로 이

곳에서 30년을 살아온 김연자 씨와 기지촌 골목을 뒤지고 다니며 굉장히 폐

쇄적으로 반응하는 여성들과 어렵게 연줄연줄로 마음을 열고 부대끼기 시작

했다. 클럽에도 가보고 바텐더로 취직도 했던 경험들을 마치 즐거운 추억처

럼 말하면서도 상처받은 기억이 없진 않았다고.

“기지촌 여성들은 심리적으로 피해의식이 강하기 때문에 친하게 지내다

가도 상대를 할켜요. 멸시받고 천대받으면서 살아와서 그렇죠.”

그리고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기지촌 여성들의 삶을 담은 '뺏뻘'이라는

장편으로 탄생했다.

기지촌 여성운동

세계에 알려

안일순과 마르고 오까자와 레이의 만남. 두 동양여성의 특별한 만남은

한국 기지촌여성운동에 탄탄한 발판이 되었다.

아버지가 흑인이고 엄마가 일본여성인 오까자와 레이는 미국 샌프란시스

코주립대학 교수로 혼혈아와 한국여성의 현실을 알기 위해 한국여성단체연

합을 찾았다가 당시 '뺏뻘'을 위해 취재 중이었던 안일순씨를 소개받아 송

탄, 군산, 동두천 등지를 함께 돌아다녔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여성들과

같이 분노하고 같이 가슴아파하며 “죽을 때까지 기지촌 여성을 위해 일하

겠다”고 했던 오까자와 레이 교수는 이 약속을 지켜 안일순씨와 김연자씨

를 미국으로 초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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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년 LA에서 'front line feminism' 회의때

한국 기자촌관련 의제를 다뤘던 사람들과 함께.

맨 왼쪽이 마르고 오까자와 레이교수와 안일순씨.

이들은 샌프란시스코 버클리대학, LA민족학교, 워싱톤정책연구실, 시카

고대학 등 6대 도시에서 “한국에서의 미국군대에 의한 매음”이라는 주제

로 순회강연을 했다. 이곳에서 만난 소수민족 여성운동가들은 그에게 깊은

감명을 주기도 했다고. 백인 중산층 여성이 아닌 유색인 여성들을 중심으로

하는 풀뿌리 운동이라는 새로운 기류, 바로 그것이었다.

이 경험들을 바탕으로 이들은 매년 국제회의를 열기 시작했다. 미군기지

가 주둔하는 나라마다 돌아가면서 미군으로 인해 파생되는 여성의 문제를

이제는 국제무대에서 심판하는 것이다. 오끼나와, 워싱턴을 거쳐 내후년에는

한국에서 국제회의를 하게 된다.

“매년 열릴 때마다 계속 만나니까 점점 결속이 돼서 많이 친해졌어요.

매년 가다 올해는 못갔죠. 최근 1, 2년간은 기지촌여성들과 적극적인 관계를

갖지 못했는데 그러면 늘 부채감이 있어요. 회의를 못가면 굉장히 미안하

고...”

목판 위에 그림을 그리는 안일순씨는 기지촌여성들을 그림으로 담아 기

지촌 기금마련을 위한 바자에 내놓기도 한다. 이 일만은 현장에서 물러난

지금도 꾸준히 하고 있다. 다행히 그림이 많이 팔려 도움이 돼서 기쁘다는

그는 건강 등의 문제로 지금은 기지촌 여성들과 직접적으로 운동하지 못하

지만 두 아들이 다 성장하면 계속 이 운동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사람이 벼랑 끝에 있어야 글이 써지나 봐요. 진흙탕 속에서 같이 뒹굴

어야...”라며 그 진흙탕을 그리워하는 그에게서 또 하나의 열정적인 작품이

기대 된다.

여성은 참혹한 조건서도

저마다 ‘예쁜’ 가치를 갖고 있다

“꽃 하나하나가 요건 요렇게 이쁘고 조건 조렇게 이쁘고 그렇듯이 사람

들도 자기 가치를 갖고 있더라구요. 사람 사귀다가 상처받기도 하지만, 얻는

것이 더 많은 것 같아요, 항상.”

그에게는 또다른 재능이 있다. 본인은 재능이 아니라고 극구 우기지만.

일상 속에 묻혀있는 여성들을 발굴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돋궈주고 장

을 마련해주는 일은 그가 아니면 하기 힘들 듯. 70대의 나이에 시집을 낸

류춘도 할머니와 유년의 성적 학대 경험을 쓰레기를 재료로 한 공간 미술로

승화시키는 쥬디 알케마 등이 그의 ‘작품’이다.

안일순씨는 어떤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에게 함뿍 빠지는 성격이라고 말

한다. 자신은 모르고 있는데 그렇게 혹 빠져 들여다보면 그 사람 안의 반짝

이는 무언가가 보인다고. 조금만 피워주면 펼칠 수 있는데 스스로 가둬놓는

모습이 안타까워 옆에서 계속 부추긴다고 말한다.

“옆집 사는 아이가 셋인 아줌마도 가만히 보니 에너지가 있는 사람이더

라구요. 글도 잘 쓰고 그래서 지금 숙제도 내주고 조금씩 부추기고 있어

요”라는 그는 결코 ‘운동’을 쉬고 있는 것 같지가 않다.

<이신 지영 기자>

skyopen@womennews.co.kr

안일순 이력

소설가, 화가

한국여성민우회 문화부 활동 중 마당극 대본 '불꽃이여, 이 어둠을' 외

다수 발표. 장편 '뺏뻘'로 데뷔. 그외 '과천미인', '엄지아가, 어머니는

어디만큼 오시나' 등의 작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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