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여성으로서의 사생활”

유영하 변호사 발언에 거센 비판 

여성단체 “성차별·여성모욕”

 

전국여성연대 등 여성단체들이 1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여성 모욕을 중단하고 즉각 퇴진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변지은 기자
전국여성연대 등 여성단체들이 1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여성 모욕을 중단하고 즉각 퇴진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변지은 기자

박근혜 대통령의 변호인 유영하 변호사의 성차별 발언에 여성들이 분노하고 있다. 대통령의 담당 변호인이 최고 공직자인 대통령에 대한 의혹 제기를 ‘여성’ 운운하며 여성의 문제로 치환하고 정당한 의혹을 어물쩍 넘기려 꼼수를 부린다는 비판이다. 특히 ‘최순실 게이트’를 대통령의 문제가 아닌 여성의 문제로 몰아가는 여성혐오 분위기를 비판해온 여성계에선 이번 성차별 발언에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이기 전에 여성으로서의 사생활이 있다는 것도 고려해 달라.” 유 변호사는 15일 기자회견에서 이 같이 말했다. 취재진이 “최순실 게이트와 사생활이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이냐”고 물었지만, 그는 “추후에 다시 말할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고만 답했다.

문제는 ‘비선 실세’로 지목된 대통령의 최측근 최씨의 ‘국정농단’ 파문이 연일 지속되고 있고, 수많은 비리 의혹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고 공직자인 대통령에 대한 의혹을 ‘사생활’이라고만 볼 수 있느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박근혜 대통령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유영하 변호사가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에 참석해 취재진 질문을 듣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박근혜 대통령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유영하 변호사가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에 참석해 취재진 질문을 듣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여성단체들은 한목소리로 유 변호사의 발언을 성차별적 발언으로 규정하고 강력 비판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논평을 내고 “대통령으로서 법을 위반한 수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여성으로서의 사생활을 고려할 지점이 무엇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단체는 ‘여성으로서의 사생활’ 발언에 대해 “여성은 약하고 특별하게 보호받아야 하거나 배려 받아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성차별적이고 성별고정관념을 강화하는 발언”이라며 “대통령은 변호인을 통해 ‘여성으로서의 사생활’ 운운하지 말고, 즉시 검찰 수사를 받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국여성연대 등 또 다른 여성단체들도 16일 기자회견을 열고 “‘여성’ 운운하다는 것 자체가 많은 여성들에 대한 모욕이자 차별과 혐오로 힘들어하는 여성을 두 번 죽이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단체들은 발언 당사자인 유 변호사의 이력도 문제 삼았다.

이들은 “유 변호사는 군포여중생 성폭력 사건 당시 가해자 일부를 변론하며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자행했고, 인권위원시절에는 유엔에 제출할 한국인권보고서에 세월호, 통합진보당, 카카오사찰 등 주요 쟁점을 삭제할 것을 지시한 대표적인 반 여성, 반 인권적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런 인물이 ‘여성 사생활’이 있다며 검찰 조사에 선긋기를 하고 나선 것은 검찰의 조사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시간끌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야권도 강도 높은 비판을 이어갔다. 박경미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대통령 이전에 여성으로서의 사생활이 무엇인지 해명해야 한다”며 “청와대는 검찰 조사를 지연시켜 검찰의 책임 추궁에서 빠져나갈 묘수라도 찾으려는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이용호 국민의당 원내대변인도 “여성으로서 사생활을 보호받으며 살고 싶으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라”고 말했다.

 

1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전국여성연대 등 여성단체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여성 모욕을 중단하고 즉각 퇴진하라”고 촉구했다. ⓒ변지은 기자
1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전국여성연대 등 여성단체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여성 모욕을 중단하고 즉각 퇴진하라”고 촉구했다. ⓒ변지은 기자

유 변호사의 이번 발언에 대해 여당 내부에서조차 강도 높은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이혜훈 새누리당 의원은 16일 오전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공직에 있는 동안 대통령은 사생활이 없다”고 일축했다. 이 의원은 “(유 변호사의) 얘기는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다”며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을 탄핵까지 가게 한 르윈스키 스캔들이야말로 사생활인데, 왜 미국 국민들은 사생활 보호를 하지 않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에게는 24시간 사생활이 없다”며 “사생활을 얘기하려면 대통령직에 나오지 않는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의원은 “여성들은 출산과 육아를 하는 등 가정 내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 많지만 모든 사생활을 희생하면서 커리어우먼으로 인정받고 책임을 다하기 위해 죽을 고생을 하고 있다”면서 “(유 변호사의 발언으로) 여태 고생한 여성들이 기가 막히고 주저앉아 울고 싶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배은경 서울대 교수는 “지금 여성운동계나 촛불을 든 여성들은 이번 사건이 여성의 실패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며 “그런데 오히려 사태의 책임을 져야 하는 대통령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특별대우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 실망감이 크다”고 말했다.

배 교수는 이어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이유로 ‘여성 대통령’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어 당선됐고 이번에도 ‘여성은 약하고 보호받아야 한다’는 가부장적 사고를 드러냈다”며 “성불평등한 구조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여성에 대한 편견을 깨기 위해 노력하며 여성들과 공감하고 연대해나갈 수 있어야 진정한 여성 정치 지도자라고 부를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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