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포털사이트 다음 웹툰에 공개된 ‘사컷 – 죽음의 소리’ 42회 ‘사랑’편 중 ⓒ다음 웹툰 사컷 – 죽음의 소리’ 42회 ‘사랑’편 캡처
지난 10일 포털사이트 다음 웹툰에 공개된 ‘사컷 – 죽음의 소리’ 42회 ‘사랑’편 중 ⓒ다음 웹툰 사컷 – 죽음의 소리’ 42회 ‘사랑’편 캡처

디지털 성범죄 판치지만 피해자들은 신고 주저

신고해도 대부분 ‘솜방망이 처벌’...낙인과도 싸워야

“‘꽃뱀 괴담’ 확산, 피해자 위축시켜 더 광범위한 2차 피해 유발할 것”

‘커플 셀카’ ‘연인 셀카’ ‘여친’ ‘국산’ ‘골뱅이’(만취한 여성을 가리키는 은어로 성폭행의 대상이 됨)…. 국내 불법 음란물 사이트엔 이런 제목을 단 사진과 영상이 매일 수십 건씩 올라오고 공유된다. 최대 불법 음란물 사이트 소라넷은 공식 폐쇄됐지만, 한국은 여전히 ‘디지털 성범죄 공화국’이다. 

이런 가운데 디지털 성범죄를 ‘꽃뱀 괴담’으로 풀어낸 웹툰이 나와 파문이 일고 있다. 지난 10일, 포털사이트 다음 웹툰 연재물 ‘사컷 – 죽음의 소리’ 42회 ‘사랑’ 편은 남자친구와 자신의 성관계 장면을 몰래 촬영해 온라인에 영상을 유포한 여성의 이야기를 그렸다. 이 여성이 ‘몰카’ 피해자인 것처럼 행동했지만, 알고 보면 남자친구를 자신의 곁에 붙잡아두기 위해서 디지털 성범죄를 ‘역이용’했다는 내용이다.

해당 웹툰 댓글란과 SNS에선 독자들의 항의가 빗발치고 있다. “몰카의 피해자 절대다수가 여성이고, 이걸 실질적인 위협으로 느끼고 있는 여성들이 많은데 남성을 잡기 위한 도구로 성관계 동영상을 사용하는 여자를 그리신 의도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네요. 너무 불쾌합니다.” (kreuz 님) “남자 피해자가 단 한 명도 없진 않겠지만 여성 피해자가 많은 건 사실인데 대체 무슨 생각으로 만화를 그리신 건지? 웹툰을 보면서 저럴 수도 있겠다 하다가 나중엔 저런 동영상이 떠돌아다닐 때 저거 여자가 짜고 치는 거 아님? 여자가 일부러 찍은 거 아냐? 라는 인식의 변화를 줄 수 있다는 거 모르시는지” (쵸코로망 님)

 

국내 최대 불법 음란물 사이트 소라넷이 공식 폐쇄됐지만 디지털 성범죄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디지털 성범죄는 카메라나 인터넷 같은 디지털 매체로 일어나는 모든 성적인 가해 행위를 뜻한다. ⓒ일러스트 김성준
국내 최대 불법 음란물 사이트 소라넷이 공식 폐쇄됐지만 디지털 성범죄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디지털 성범죄는 카메라나 인터넷 같은 디지털 매체로 일어나는 모든 성적인 가해 행위를 뜻한다. ⓒ일러스트 김성준

가부장제가 뿌리내린 한국 사회에서 성폭력 피해 신고는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피해자 대부분이 침묵을 택한다. 신고 접수가 되지 않거나,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공식 범죄 통계에 잡히지 않는 성폭력 범죄율이 87.5%에 이른다. 용기를 내 피해를 고발한 여성들은 ‘꽃뱀’이라는 주홍글씨와 싸워야 한다. 최근 성폭력 피해자를 무고로 맞고소하는 사례가 언론에 연속 보도되면서, 상담기관엔 신고를 주저하는 피해자들의 문의가 쏟아졌다고 한다. (▶관련기사 : “나는 꽃뱀이 아니다, 성폭력 피해자다”

‘온라인상 몰카 유포’ 등 최근 급증한 디지털 성범죄의 경우, 많은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 자체를 몰라 신고조차 하지 못한다. 형사재판이 열린대도 피해의사가 확인되지 않거나 피해자가 불특정 다수라는 이유로 단순 벌금형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법원이 가해자의 ‘상황을 참작’해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검사가 항소하는 사건은 전체의 5% 수준이다. 이에 한국여성변호사회는 “동영상이 어딘가에 떠돌고 있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계속 갖고 살아가야 하는 피해자들을 고려해 엄격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요구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성폭력 범죄와 피해자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웹툰 등 젊은층에 파급력이 높은 콘텐츠를 통해 확산된다면, 더 광범위한 2차 피해를 유발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실체 없는 디지털 성범죄 꽃뱀 등이 이렇게 하나씩 문화가 된다면, 경찰이 조사를 할 때 ‘일부로 본인이 올린 거 아니에요?’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순서가 되겠지. 실제 디지털 성범죄 가해자는 가벼운 벌금형에 안 물어도 그만이지만 피해자는 평생 가해자들에게 소비당하고 사회에서 고립되는 구조인데도 말이다. 가해자가 억울해지는 것부터 걱정하는 사회란...” 소라넷 공식 폐쇄를 이끈 단체 리벤지포르노아웃(Revenge Porn Out·르포)이 이번 웹툰 논란과 관련해 지난 13일 트위터에 쓴 글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웹툰 작가는 “‘꽃뱀 괴담’ 확산은 성범죄에 대한 무지와 여성혐오가 보편적이라는 증거”라고 했다. 그는 “창작자들이 젠더 인식을 갖추지 않으면 위험한 창작물이 나온다. ‘꽃뱀 괴담’은 클릭수 유발용 아이템이 아니다. 엄연히 존재하는 성범죄 피해자들을 위축시키고 그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강화할 수 있다. 사회적 영향력에 대해 고민하면서 (젠더 문제에) 무척 섬세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여성신문은 14일 해당 웹툰을 만든 최승범·유난희 작가에게 논란에 대한 해명을 요청했으나 답변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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