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과 분노의 여성들… 거리에서, SNS에서 "나의 대통령 아니다" 외쳐

남성 VS 여성, 백인 VS 유색인종으로 뚜렷이 갈린 투표 결과

노동자 공략 트럼프 전략 성공...클린턴 '구식 정치' 이미지 탈피 실패

 

대선 결과 확정 후 패배 인정 연설 중인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 연설 동영상 캡쳐. ⓒfacebook.com/hillaryclinton
대선 결과 확정 후 패배 인정 연설 중인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 연설 동영상 캡쳐. ⓒfacebook.com/hillaryclinton

 

대선 결과 확정 후 승자 선언 연설 중인 도널드 트럼프 당선자. 연설 동영상 캡쳐. ⓒfacebook.com/DonaldTrump
대선 결과 확정 후 승자 선언 연설 중인 도널드 트럼프 당선자. 연설 동영상 캡쳐. ⓒfacebook.com/DonaldTrump

미국의 가장 견고한 유리천장은 결국 깨지지 않았다. 지난 8일(현지시간) 미국 전역에서 열린 제45대 대통령 선거에서 첫 여성 대통령에 도전했던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는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에 패배했다.

도널드 트럼프는 선거 다음날인 9일 오전 2시 30분경 선거인단 과반수인 270명을 넘기며 승리를 확정지었다. 미시간(선거인단 16명)과 뉴햄프셔(4명)의 개표 결과를 남겨놓은 상태에서 CNN 집계 기준으로 트럼프는 290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하며 228명을 확보한 클린턴을 크게 따돌렸다.

하지만 총 득표수에서는 클린턴이 47.7%(5979만여 표)로 47.5%(5958만여 표)를 획득한 트럼프에 미세한 차이로 앞섰다. 2000년 대통령 선거에서 앨 고어 당시 민주당 후보가 조지 W. 부시(공화당)에게 총 득표수에서 앞서고도 선거인단 수에서 뒤져 패했던 상황을 떠올리게 하는 결과다. 공화당은 같은 날 치러진 상·하원 선거에서도 민주당에 승리를 거두며 과반수 의석 확보에 성공, ‘완전한 승리’를 거뒀다.

트럼프는 선거 유세 동안 성희롱과 성폭력, 여성비하와 거짓말을 반복하며 여성들의 ‘공공의 적’이 됐다. 공화당 내에도 힐러리를 지지하는 여성 의원 모임이 만들어 졌고 중진들도 트럼프를 외면했지만 트럼프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선거 직전 여론조사에서도 클린턴이 우세할 것이라는 예측이 대세였으나 이를 뒤엎은 대이변이 일어났다.

트럼프의 당선을 강력하게 반대했던 여성들은 큰 충격에 빠졌고 “뿌리 깊은 여성혐오(misogyny)로 인한 패배”라며 분노했다. 페미니스트 블로그 ‘비치미디어(bitchmedia)’는 “오늘 나는 내 조국을 애도한다”거나 “도널드 트럼프는 백인들의 문제이자 가부장제의 문제 그 자체”라며 비판했다. ‘페미니스팅’(Feministing)은 “트럼프의 당선은 앞으로 4년 동안 기본적인 인권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특히 유색인종과 성소수자, 이민자, 무슬림, 여성, 장애인들은 극도로 불안한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라 우려했다.

클린턴의 패배 원인에 대해 영국 시사주간지 ‘더 위크’ 미국판은 경선 때 버니 샌더스에게 밀리는 양상을 보였던 클린턴의 후보로서의 약점, 해킹으로 인해 밝혀진 ‘이메일 게이트’로 인한 이미지 추락, 백인 남성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어낸 트럼프의 정책과 미국 중서부와 북동부의 쇠락한 산업지대인 ‘러스트 벨트(Lust Belt)’ 지역에서의 트럼프의 선전을 꼽았다.

선거 4달 전인 지난 7월에 트럼프의 승리를 예견했던 진보 성향의 감독 마이클 무어의 분석도 다시 화제를 모았다. 당시 무어 감독은 ‘브렉시트’에 비유한 ‘러스트 벨트’ 지역의 노동자들의 정부에 대한 분노, 여성 대통령을 원하지 않는 백인 남성들의 최후의 저항, ‘구식 정치’로 여겨지는 클린턴 본인의 문제, 샌더스 지지자들의 투표 거부, 병든 정치 시스템에 대한 장난을 의미하는 ‘제시 벤추라 효과’를 트럼프 승리의 요인으로 꼽았다.

그의 예언처럼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 유권자들의 투표 참여 저조는 클린턴 패배의 중요한 원인이 됐다. 미국 정치전문지 ‘폴리티쿠스USA(PoliticusUSA)’에 따르면 2008년과 2012년, 2016년 선거의 투표수를 비교했을 때 공화당은 세 번 모두 5900만~6100만 명 사이의 수치로큰 변동이 없었지만 민주당은 2008년 약 6950만 명, 2012년 약 6600만 명에서 이번에 6000만 명 밑으로 떨어지는 등 큰 감소폭을 보였다.

남성 유권자들의 여성 대통령에 대한 반발은 성별 투표수에서 확인할 수 있다. 데이터 저널리즘 전문사이트 파이브서티에잇(FiveThirtyEight)이 출구조사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여성 유권자 중 클린턴 지지 비율은 트럼프에 12% 앞섰으며 반대로 트럼프는 남성 유권자의 지지를 12% 더 받아 사상 최고의 ‘젠더 갭’을 기록했다.

‘젠더 갭’은 2012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의 주요 요인으로 꼽혔던 지표로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여성 유권자의 55%, 남성 유권자의 45%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됐고 10%의 젠더 갭을 보인 바 있다. 엘리노어 스밀 FMF(Feminists Majority Foundation) 회장은 선거 전날인 7일 미즈 블로그에 “선거마다 여성 유권자의 비율은 계속 증가했고 이번 선거에선 유권자의 53%가 여성이며 힐러리 클린턴 지지자의 젠더 갭은 그 어느 때보다 높을 것이다”라며 클린턴의 우세를 예측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상 최고의 ‘젠더 갭’도 저조한 투표율을 이기지 못했다. 또한 같은 여성 유권자, 특히 백인 여성 내에서도 대학 교육을 받은 백인 여성은 51%가 클린턴, 45%가 트럼프를 지지한 것과 달 고졸 이하의 백인 여성은 트럼프지지 비율이 62%로 34%의 클린턴을 크게 앞선 점도 주목할 만하다.

선거 결과가 발표된 후 미국 전역은 큰 충격에 휩싸였고 워싱턴 DC, 펜실베이니아 등 미국 곳곳에서는 “(트럼프는) 나의 대통령이 아니다”라고 외치며 거리로 몰려나온 시민들의 거리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SNS에서도 #NotOurPresident나 #Elections2016와 같은 해시태그와 함께 충격과 분노의 메시지가 쏟아졌고 선거 유세 동안 좋은 모습을 보였던 영부인 미셸 오바마의 다음 대선 출마를 원하는 ‘미셀 오바마 2020년에 부탁해요(Michelle Obama 2020 please)’와 같은 메시지도 확산되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과 선거 결과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읽어내려는 움직임도 있다. 저널리스트이자 변호사인 질 필리포빅은 워싱턴 포스트 칼럼에서 “트럼프 지지기반의 압도적 비율을 차지하는 백인들이 빛바랜 미국 권력의 상징이라면 흑인과 아시아인, 히스패닉 표의 대다수를 차지한 클린턴의 지지기반은 미국의 미래를 나타낸다”면서 다양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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