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 여성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대통령 당선 일등 공신 ‘여성들’

국정농단 사태에 “배신감 크다”

이번 사태는 국가 권력의 문제

여성 리더십 비판은 “성차별적”

 

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관련 비상시국회의 및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박근혜 퇴진’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뉴시스·사진
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관련 비상시국회의 및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박근혜 퇴진’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뉴시스·사진

“내가 뽑고 지지했던 대통령이 이럴 줄 몰랐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기분이다.” 경북 포항에 사는 전업주부 정승교(56)씨의 말이다. 그러면서도 정씨는 “이번 일은 최순실이 대통령의 힘을 이용해 기업들에게 돈을 뜯은 것”이라면서 “검찰 조사가 다 끝난 후에 하야나 탄핵을 얘기해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야권을 지지한다고 밝힌 장순아(60)씨는 “야당은 물론 여당도 모르게 개각을 단행한 것은 민심을 무시한 처사”라며 “대통령이 최순실과 관련해 명명백백하게 사실을 밝히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최순실 게이트’ 파문이 연일 지속되면서 전국이 배신감과 분노로 들끓고 있다. 각계각층에서 대통령 ‘탄핵’과 ‘하야’를 외치는 목소리가 커지고,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했던 전통적인 지지자들조차 등을 돌리고 있다.

박 대통령은 ‘헌정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녔다. 지난 대선에서 박 대통령이 내건 ‘준비된 여성대통령’이라는 구호는 여러 반론에도 불구하고 유권자들의 높은 지지를 끌어냈다. 특히 여성 유권자는 박 대통령 승리의 일등 공신이었다. 한국선거학회가 2012년 대선 직후 실시한 국민의식조사에 따르면, 대선 당시 남성 유권자는 48.3%가 박 대통령을 찍은 반면, 여성 유권자는 53.8%가 박 대통령에게 표를 줬다. 대선에서 박 대통령이 51.6%를 득표해 상대 후보를 3.6%포인트 차로 당선된 것을 보면 여성들이 박 대통령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지지했는지 알 수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이 확산되는 가운데 여성들은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이번 사안을 여성 리더십의 문제로 보는 시각에 대해선 어떤 의견인지 직접 들어봤다.

교육계에 종사하는 이모(51)씨는 “국가의 정책을 돌볼 능력도, 자신의 생각이란 것도 없는 사람이 어떻게 대통령을 할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며 “한 나라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로서 리더십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이번 사태가 너무 심각하고 중대해서 앞으로 여성 대통령은 나오기 힘들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며 “아직 여성 지도자 수도 적고, 고위직에 진출하기 힘든 여건인데 대통령이 이번에 ‘여성 대통령’에 대한 이미지를 너무 망쳐 놨다”면서 “모든 잘못을 ‘여성’으로 돌리면 안 되겠지만, 그래도 앞으로 (여성 대통령이)나오기는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민중총궐기 충북준비위가 3일 오후 충북 청주 성안길에서 열린 ‘청주시국 촛불행동’에 참여한 시민들이 촛불을 들며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외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민중총궐기 충북준비위가 3일 오후 충북 청주 성안길에서 열린 ‘청주시국 촛불행동’에 참여한 시민들이 촛불을 들며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외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박 대통령 지지여부를 떠나 여성들은 이번 사태를 ‘여성 대통령’의 실패 또는 ‘여성 리더십’의 약점으로 성별을 부각시키는 여성 혐오적 반응은 경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두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 김지영(35)씨는 “첫 여성 대통령으로서 박 대통령에게 기대했던 것은 기존의 남성 대통령과는 다른 유연하고 청렴한 리더십이었다”면서 “그런데 오히려 최악의 부패를 양산한 모습에서 실망감을 넘어 참담함을 느낀다”고 했다. 이어 김씨는 “이번 일로 여성들이 다 그렇다거나, 여성 리더십의 문제로 보는 목소리가 높은데 한국 사회의 만연한 여성 혐오라고 본다”고 우려했다.

직장인 이영옥(49)씨는 “여성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감도 크다”고 말문을 뗐다. 이씨는 “그동안 대통령에 대한 안 좋은 소리가 들려도 기다리고 믿었는데, 이번만큼은 배신감이 상당하다”며 “그렇다고 해서 이번 사안을 여성 대통령의 실패로 몰고 가는 것은 성차별적인 언사 아니냐”고 반문했다.

대학생 김모(23)씨는 “박 대통령 때문에 여성 대통령에 대한 안 좋은 이미지가 생길 거라고는 생각지 않는다”면서 “여자·남자로 성별을 따지기보다는 개인의 잘못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별이(23)씨도 “대통령이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서 모범을 보이지 못하고 오히려 망쳐놓은 부분이 크지만 이를 ‘여성’으로 싸잡아서 욕하는 것은 안 된다”며 “이번 일로 여성 대통령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박혀 이후에 등장할 여성 대선 후보에 악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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