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 안 맞는 소비한다고

‘된장녀’라 욕하더니

200만원짜리 낚시대나

고가의 드론 날리려 지갑

여는 남자는 뭐라 부르나

 

남편의 취미 인정하라고? 

“왜 그래요, 진짜!”

 

영화 ‘즐거운 인생’의 한 장면. 고교 때 밴드를 했던 이들이 중년이 된 뒤 다시 밴드를 하면서 삶의 의미를 찾는 내용의 영화다.
영화 ‘즐거운 인생’의 한 장면. 고교 때 밴드를 했던 이들이 중년이 된 뒤 다시 밴드를 하면서 삶의 의미를 찾는 내용의 영화다.

“너네 사는 게, 사는 거냐?”

2007년 상영된 영화 ‘즐거운 인생’은 고교 때 밴드를 했던 이들이 중년이 된 뒤 다시 밴드를 하면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내용이다. 이 대사는 주인공 중 한 명인 정진영이 다른 친구들에게 다시 밴드를 하자고 꾀면서 한 말이다.

‘즐거운 인생’과 중년 밴드

실제 이들의 삶은 그리 행복하지 않다. 백수인 정진영은 물론이고 아이의 학원비를 대느라 택배와 대리운전을 하는 김윤석 그리고 기러기 아빠로 중고차를 팔며 외국에 간 아내와 자식들을 부양하는 김상호는 이 땅의 평균적 아버지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당연히 이 영화는 많은 남성분들의 공감을 받았다. “난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는데.” “내겐 멋진 꿈이 있었는데.” 그들은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생업을 때려치우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즐기고 싶어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짜 ‘즐거운 인생’이니까.

하지만 현실이란 게 녹록치 않아, 자신의 꿈은커녕 소소한 취미 생활을 누리는 것조차 힘든 게 요즘 세상이다. 얼마 전 마음 아픈 기사가 났다. 취미를 위해 비싼 물건을 산 뒤 아내가 알까봐 가격표를 고치고, “중고로 샀다”며 둘러대는 남편들이 많다는 거다. 이 기사에 남성분들이 다시금 집결했다. 뼈빠지게 일하며 돈 버는데, 이 정도 취미도 용납 못하다니 남자들이 무슨 돈 버는 기계냐는 게 그들의 항변이었다. 2000개가 넘는 공감을 받은 댓글을 보자.

“저 정도면 건전한 취미인데 그냥 넘어가라고 해야지. 계집질, 노름질처럼 기둥 뽑아 헛돈 쓰는 것보다 백배 천배 건전한 거 아니냐?”

일견 공감이 간다. 아무리 돈이 많이 들어간다 한들 계집질, 노름질에 비할 바는 아니니까.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보면 이 말은 정당성을 상실한다. 더 나쁜 게 있다는 이유로 덜 나쁜 게 용납될 수는 없으니 말이다.

계집질? 노름질? 둘 다 불법

일단 우리나라에서 도박이나 성매매는 불법이다. 살인자도 있으니 강도가 나쁜 건 아니다, 라는 게 말이 안 된다면 불법적인 취미를 빌미로 분수에 맞지 않는 취미를 정당화해선 안 된다. 구입 가격을 속이는 것으로 보아 남편들 역시 자신의 행동이 잘못이라는 건 알고 있는 듯한데, 왜 네티즌들이 난리인 걸까?

둘째, 아내들이 왜 남편의 취미 생활을 타박하는지 생각해 보시라. 십중팔구 빠듯한 살림살이가 그 원인이다. 돈 들어갈 곳은 많은데 남편이 45분 비행이 가능한 150만원짜리 드론이나 수백만원 상당의 소리가 청아한 기타를 산다면 한 푼 두푼 아껴가면서 집안 살림을 해온 아내가 억장이 무너지지 않겠는가?

셋째, 아내라고 해서 사고 싶은 게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고급 백 하나만 가지고 다녀도 금방 주목받는 세상이 아닌가? 하지만 아내는, 안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자신의 욕망을 거세한다.

왜? 자신이 아껴야 아이가 좋은 대학에 갈 수 있고, 또 남편도 잘 먹일 수 있으니까. 그래서 아내는 남편의 과한 소비에 눈을 흘긴다. 자, 사정이 이렇다면 “아내는 내가 즐거운 꼴을 못 봐요”라고 징징거리는 게 옳은 것일까?

분수에 맞지 않는 소비를 하는 여성을 지칭하는 ‘된장녀’가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에서 비롯됐다면, 200만원짜리 낚시대나 고가의 드론을 날리기 위해 선뜻 지갑을 여는 남성들은 과연 뭐라고 불려야 옳은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자신의 취미 생활이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답은 간단하다. 결혼을 하지 않으면 된다. 이 경우 자신이 버는 돈을 온전히 취미 생활에 투자한다 해도 욕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내가 번 돈 내가 쓰는데 너희들이 무슨 상관이냐’는 말은 이럴 때나 쓸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위에서 예로 든 영화에서, 그리고 이 기사에 나오는 남자들은 모두 애가 딸린 유부남들. 이런 분들이 다른 건 다 팽개치고 취미 생활을 즐기겠다는 건 지나치게 이기적이다. 이 상황을 어느 분이 댓글로 잘 정리해 주셨기에, 그대로 소개한다.

“그냥 결혼하지 말 걸 그랬어요. 그냥 내 돈 내가 다 쓰고 싶은데 설거지하기 귀찮고 빨래도 하기 싫고 섹스는 하고 싶고 아이도 갖고 싶어서 결혼하다 보니 이 꼴이 났네요.”

가족 행복보다 낭만 추구?

토크쇼 ‘안녕하세요’에 나온 소위 ‘마술 아빠’는 마술사가 되기 위해 하루 7시간씩 연습을 한다. 패널로 나온 마술사 이은결이 “저보다 많이 하시네요”라고 웃을 정도의 열정인데, 그렇게 몇 년을 노력했음에도 그가 선보인 마술은 어설프기 그지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행복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인 데다 요양원 등에 가서 무료공연을 하면 사람들이 즐거워해서다. 하지만 그의 짧은 행복 뒤엔 가족들의 고통이 있다. 마술에 빠져 가족들과 대화를 안 하게 된 것도 그렇지만, 그의 본업인 어린이집 셔틀버스 운전이 많은 수입을 보장해 주지 못하니 말이다.

마술 도구를 사는 데 얼마나 썼느냐는 질문에 남편은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가 더 높은 차원의 마술을 꿈꾸며 학원에 다니느라 생활비를 다 써버리는 바람에 가족들은 생활비가 없어 몇 달씩 카드빚으로 산 적도 있단다. 심지어 고2인 딸이 다니던 입시 학원도 못 다니게 했다니, 이쯤 되면 ‘이기적’이라는 말도 사치스러워 보인다.

이분이 좀 극단적이어서 그렇지만, 기사와 댓글로 보건대 한국 남성 중에는 ‘마술 아빠’가 꽤 많은 모양이다. 가족의 행복보다는 자신의 낭만만을 추구하고, 그러기 위해 지나친 소비도 서슴지 않는 그런 아빠들 말이다. 결혼을 해서 애들이 있다면, 자신만의 행복보다는 가족의 행복에 좀 더 신경쓰자. 드론을 날리느라 운동장에 나가는 대신 가족들과 대화도 하고, 되도록 그들과 함께 하려고 노력하자. 가족 속에서 행복을 찾는 게 결혼한 가장의 권리이자 의무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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