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9시, 늘 그렇듯 남녀 두 명의 앵커가 등장한 가운데 뉴스가 시

작된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KBS 9시 뉴스입니다. 종합주가지수가 10

년만에 최저치로 폭락했고, 그동안 다소 안정기미를 보이고 있던 환

율이 다시 오르는 등 금융시장의 혼란이 재연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남자앵커와 여자앵커 중 누구의 멘트일까?

“올해 수능시험의 평균점수가 크게 오르면서 논술시험이 합격의

주요변수로 떠오르자 수험생들에게 논술 비상이 걸렸습니다. 요즘

논술 특강 학원에 수험생들이 대거 몰리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누구의 멘트일까? 오프닝멘트와 주요뉴스는 남자앵커가 한다

는 게 힌트.

방송학보 가을호에 이화여대 김훈순 교수가 발표한 논문을 보면 뉴

스에서의 남녀앵커의 역할분담 내용이 구체적인 수치로 제시되어 있

다. 일단 전체 뉴스꼭지수의 60%를 남자앵커가 맡고 있어 여자앵커

(40%)보다 많은 뉴스를 전달한다. 또 남자앵커는 맡은 뉴스꼭지 모

두 화면에 나와 보도하지만 여자앵커는 출연하지 않고 목소리로만

뉴스를 ‘읽는’ 경우가 37% 정도 되었다. 즉 여자앵커는 남자앵커

에 비해 단편적인 뉴스를 보도한다.

여자앵커가 다루는 뉴스는 주로 건강, 환경, 문화 등의 영역이다.

정치, 북한·국방 관련 뉴스는 거의 남자앵커 몫이다. 앵커의 말에

권위나 전문성이 실려야 하는 뉴스분야는 여지없이 남자앵커가 맡는

다.

방송현업인들은 여자앵커를 ‘뉴스의 꽃’이라고 말한다. 아름다운

외모와 목소리로 뉴스프로그램을 장식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

다. 심지어 여자앵커의 멘트를 남자앵커가 써주는 경우도 있다고 한

다. ‘아름다운 꽃 한철’이 지나 40대에 들어 ‘시들기’ 시작한

여자앵커들은 카메라 앞을 떠나 라디오로 자리를 옮기곤 한다. 시청

자들은 어느새 ‘여자앵커는 꽃’이어야 한다는 데 동의를 한 채 뉴

스를 본다. 이렇게 한국의 TV뉴스는 불평등한 성역할 체제를 설파

하고 있다.

누군가는 이렇게 반론할 지도 모른다. ‘그게 방송만의 일이냐’고,

‘남성이 공적이고 중요한 영역을 장악하고 있는 게 한국의 사회현

실이니 현실을 전달하는 뉴스도 그러한 게 당연하지 않느냐’고 말

이다.

뉴스가 사회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믿는 ‘순진함’은 나중

에 지적하기로 하자. 그러면 사회에서 이뤄지는 불평등한 성역할 체

제의 담론을 사회성원에 제공하는 것은 무엇일까? 사회성원의 내부

에 형성된 성에 대한 사회적 고정관념들이 만들어 내는 것은 무엇일

까?

불평등한 성역할 체제를 제공하는 것은 커뮤니케이션이며 그 커뮤

니케이션을 창조하는 것은 사회적 성역할 관념이다. 어느 것이 먼저

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연쇄의 고리를 어떻게 끊느냐가 문제

다. 그 고리를 끊는 작업은 우리에게 제공되고 있는 메시지들을 뒤

집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마흔 가량의 연륜 있는 여자앵커와 스물대여섯의 잘생긴 남자앵커

가 함께 뉴스를 진행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부터 시작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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