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 우리마을 가게들의 장천이라는 이름의 내력을 말했는데,

원래 이곳의 지명은 ‘장차마을’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장차를 장

천으로 바꾼 주인공이 바로 장천 슈퍼마켓 할머니이다.

슈퍼마켓에 갈 때마다 만나게 되는 그 할머니는 좀처럼 웃는 얼굴

을 볼 수 없었다. 그 할머니의 얼굴을 처음 본 순간 나는 유홍준 교

수(<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저자 )의 강의 슬라이드에서 보았던 돌

부처가 떠올랐다. 그 돌부처는 코가 약간 삐딱한데다 아주 낮았는데

돌부처의 돌가루를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소문에 동네 아낙은 물

론 먼 곳에서 온 여자들까지 그 코를 갈아가는 바람에 그리 되었다

고 했다. 유교수는 이처럼 우리나라 돌부처는 못생겼지만 그것이 다

서민적인 친화력의 상징이라는 해설을 덧붙여 관객들의 호쾌한 웃음

을 샀었다. 그런데 장천 할머니의 코가 바로 그렇게 생긴 것이다.

얕고 삐딱하게.

나는 슈퍼에 갈 때마다 웃는 얼굴을 보기 힘든 그 할머니를 피해서

가능하면 상냥하고 후덕한 큰 딸과 거래를 했다. 어느날 밤 아주 늦

게, 거의 문을 닫을 시각인데 수퍼에 가게 되었다. 다행히 문이 열

려 있었다. 나이 지긋한 동네 아저씨 두어명이 물건을 사고 있었다.

한 아저씨는 계산대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아 일행이 물건을 고르는

동안 주인(장천 할머니의 큰 딸)과 친근하게 이야기 하는 게 오랜

단골 같았다.

“오늘, 재미있게 노셨나봐요?”

아마 동네 사람들끼리 버스를 대절해서 관광을 다녀 온 모양이었

다.

“아, 저 친구들하고 버스에서 노래 실컨 불렀네. 다 술기운에 그런

게지.”

아마 헤어지기 섭섭한 사람끼리 2차를 가려고 술과 안주를 사러온

모양이었다.

“노시는 건 좋은데 술은 조금만 드세요.”

친정 오라비나 친정 아버지 걱정하듯 염려한 한 마디를 잊지 않는

주인.

“아, 술 안 먹고도 잘 노는 건 이 집 할머니지, 우리는 그렇게 못

놀아.” “어머, 여기 할머니가 그렇게 잘 노세요?”

순간 호기심이 발동해서 나도 모르게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그 아저

씨는 내가 낯이 설어 한 순간 멈칫하더니 “그럼요, 이 근동에서 이

집 할머니만큼 잘 노는 사람 못 찾아요. 술 한방울 안 넣고도 얼마

나 신명나게 잘 노시는데요. 보는 사람들이 재미나서 죽어요, 죽

어.” “아줌마, 정말이예요?”

나는 친딸의 확인까지 구했다. 주인 아줌마는 함박 웃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울엄마, 정말 잘 노셔요”하는 게 아닌가.

나는 상상할 수가 없었다. 삐딱한 코인데다 “뭐 달라구?”하면서

인상을 약간 쓰시면 정말 후기인상파가 되는 그 무뚝뚝한 할머니가

신명나게 노는 모습이라니.

그 다음부터 그 할머니는 내 관심인물이 되었다. 전에는 피했는데

가능하면 할머니한테 사다가 보니까 웃는 모습도 더러 보게 되었다.

할머니는 웃는 모습도 특이했다. 웃으시면 삐딱한 코가 윗입술의 동

선을 따라 얼굴 가운데로 정확히 대칭형으로 자리잡는데, 어찌나 활

짝 웃으시는지 이가 드러나는 입이 얼굴의 반쯤을 차지한다. 유홍준

교수가 보여준 돌부처의 웃는 모습을 컴퓨터그래픽으로 가상해보면

바로 이 할머니 모습이 나올 것라는 생각을 하곤 혼자 재미있어 하

기도 했다.

그러면서 할머니의 인상파외모를 이해하게 되었다. 이웃에서 장천

수퍼를 소개하는 말 중의 하나가 ‘엄마가 딸들하고 가서 좋은 야채

들을 떼다 파는 집’이다. 예순이 훨씬 넘은 나이에 새벽에 물건 사

다가 밤늦게까지 하루종일 판매와 배달보조(운전석 옆에 앉아서 배

달가기)까지 하자니 지칠 수밖에. 매일 비슷한 사람들과 비슷한 대

화를 나누는 것도 권태로울 수밖에. 나는 어느새 겉으로 무뚝뚝해서

속정이 더 깊을 것이라는 기대까지 하게 되었다.

“그 할머니 보통분 아니셔요. 이 근동의 땅이 다 그 집 것이었어요.

그런데 할아버지가 보증을 잘못 서서 그랬다나 어쨌다나 아무튼 그

많던 재산을 다 놓쳤어요.

할머니가 배달을 오셔서는 물건을 내려놓으면서 이 땅도 다 우리가

팔아먹은 거다 하세요. 그 때 그 표정을 보면 정말 아무렇지도 않으

셔요. 우리 같으면 속 상하고 울화가 치밀고 그럴텐데 그 할머니는

그냥 지나가는 말처럼 하시는 거예요. 참, 좋은 땅이지 그러시고는

옷 툭툭 털고 배달차 타고 또 가세요. 사람들이 다 도 튼 할머니라

고 그러세요.”

고촌 토박이와 결혼해서 사는 이웃 아낙의 말에 나는 무릎을 쳤다.

그래, 그 할머니는 코만 돌부처를 닮은 게 아니라 속도 진짜 부처일

지 몰라.

할머니의 큰 딸인 슈퍼 주인에게 “동네사람들이 이 댁 할머니를

도 튼 분이라고 하시던데요”했더니 주인 아주머니는 입으로는 웃고

눈으로는 울면서 “정말, 우리 엄마 살아온 건 말로 다 못해요. 몇

년 사이에 집이 곤두박질 하는데…” 말을 맺지 못했다. 마주 쳐

다보기가 갑자기 민망해져서 두리번거리다가 계산대 뒷벽에 붙은 달

력에 눈길이 멈췄다. 경기도 광주에 있는 어떤 절에서 만든 달력이

었다. 그 할머니는 불교도였다. 그것도 아주 독실한. 나는 집에 돌

아와서 허풍을 섞어 그 이야기를 했다.

“내가 장천슈퍼 할머니를 보는 순간 돌부처라는 영감을 받았거든

요, 그런데 그 할머니가 대단한 불교신자래잖아요. 아무래도 나는 어

디다가 멍석 하나 펴야지, 안되겠어.”

그로부터 얼마되지 않아서 우리 어머니는 그 집 할머니와 경기도

광주의 그 절에 관광을 겸하여 불공을 드리러 갈 만큼 관계가 발전

했다. 비슷한 나이의 두 분이 살아온 세월의 나이테와 믿음의 근거

가 같다는 데서 쉬 친해지신 모양이었다. 함께 절에 가시는 날, 할머

니는 큰딸(슈퍼주인)이 운전하는 승용차를 타고 우리 어머니를 태우

러 오셨다. 딸을 셋 둔 것까지 똑같은 두 할머니는 가면서 아마 딸

이 더 편하고 좋다는 데에도 뜻을 함께 했을 것이다.

그 다음부터 슈퍼에만 가면 어머니의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같은

물건도 우리 어머니가 물어보면 그 할머니가 “이거 집에 가져갈라

구? 그러면 내가 얼마에 드리리다”하고 나서는데 값이 조금 더 내

려갔다. 그러더니 다음에는 언니의 어깨가 올라갔다. 슈퍼주인인 할

머니의 큰 딸이 알고보니 언니와 동갑인게 드러나자 언니가 주인과

금방 친구사이가 된 것이다. 과일을 사면 약간 흠이 난 것을 덤으로

받아오기도 하고 지나가다 들르면 음료수라도 한 잔 얻어먹고. 물

론 그 전에도 고객으로서 그 정도의 선심은 제공받았지만 받는 사람

의 입장에서는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는 게 큰 차이였다.

어디나 시골에 가면 마을 초입에서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을 만나

게 된다. 나는 장천슈퍼 할머니가 우리마을의 살아있는 여장군이라

고 생각한다. 인생이란 것이 흐르는 긴 강과 같다는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납작코의 할머니, 그 코가 이제는 서민적인 친화력으로 느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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