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정부에도 여성 리더 증가

부패 감소, 기본 서비스 확충과 여성인권 향상에 기여

디벨트 “남자들이 어질러 놓은 것을 치우러 온 ‘페모크라티’

 

왼쪽부터 고이케 유리코 일본 도쿄도지사, 비르지니아 라지 이탈리아 로마시장, 안 이달고 프랑스 파리시장, 뮤리엘 바우저 미국 워싱턴DC시장.
왼쪽부터 고이케 유리코 일본 도쿄도지사, 비르지니아 라지 이탈리아 로마시장, 안 이달고 프랑스 파리시장, 뮤리엘 바우저 미국 워싱턴DC시장.

지난 7월 테레사 메이가 영국의 새 총리로 당선됐을 때 유럽 언론들은 메이 총리와 니콜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을 묶어 “남성들이 만든 유럽 정치의 잿더미 속에서 부상한 여성 지도자들”이라며 “새로운 여성민주주의, ‘페모크라티’(Femokratie)가 떠오르고 있다”고 평가했다.

올해만 4명, 최근 3년간 10명 여성 시장 탄생

‘페모크라티’란 여성을 뜻하는 ‘피메일’(Female)과 민주주의를 의미하는 독일어 ‘데모크라티’(Demokratie)의 합성어로 독일의 일간지 디벨트가 “남자들이 어질러 놓은 것을 치우러 온 페모크라티”라고 표현한 데서 시작됐다. 실제로 ‘브렉시트’로 인해 대혼란에 빠진 영국을 이끌 새 총리를 뽑기 위한 보수당 대표 경선 1차 투표에서 1, 2위를 차지한 것은 테레사 메이 전 내무장관과 안드레아 리드섬 전 에너지차관 등 여성들이었다.

여성민주주의는 국가수반에 한정되지 않고 지방정부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지난 7월 31일 도쿄도지사 선거에선 고이케 유리코 전 방위상이 첫 여성 도쿄도지사로 당선됐다. 이에 앞서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 이탈리아 로마와 토리노에서도 최초의 여성 시장이 탄생하는 등 올해만도 총 4명의 여성 시장이 배출됐다.

최근 몇 년 동안 프랑스 파리, 독일 쾰른, 스페인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 체코 프라하, 우루과이 몬테비디오, 이라크 바그다드 등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 새롭게 시장 자리에 오른 여성은 10여명에 이른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는 두 번째 흑인 여성 시장 뮤리엘 바우저가 이끌고 있으며 인도에서는 지난 해 불가촉천민 출신의 성전환 여성 시장이 탄생하기도 했다. 아프리카의 지방정부 여성 리더 네트워크인 REFELA는 창립 5주년을 맞으며 점차 세력을 키워가고 있다.

기존 정치권 불신이 여성 정치인 관심으로

여성 지방자치단체장의 증가는 부패로 얼룩진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다.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는 전임자가 공금유용 스캔들로 사임한 후 보궐선거로 당선됐고 전 로마 시장은 공금 과다 사용뿐 아니라 범죄 조직과의 연루라는 의혹에 휩싸인 바 있다. 유엔개발기금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 리더는 실제로 부패 감소에 영향을 미친다.

여성으로서의 경험은 정책 추진에 있어서도 차이로 나타난다. 아프리카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배출한 라이베리아 페이내시빌의 첫 여성 시장인 시벳트 깁슨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취임 이후 쓰레기와 깨끗한 물, 위생이 시정의 주요 테마가 됐다”면서 “남성은 오늘을 위한 정책 구축에 힘쓰지만 아이들의 안전 확보에 관심이 있는 여성은 내일을 위한 정책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성폭력 문제 또한 여성 시장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다. 우루과이 몬테비디오의 아나 올리베라 시장은 성폭력 희생자들에게 심리 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하지만 세입자 퇴출과 주택융자 회수에 반발하며 중앙정부에 대항하는 급진적인 정책으로 유명한 에이다 콜라우 스페인 바르셀로나 시장처럼 강력한 카리스마를 보이기도 한다. 콜라우 시장은 이달고 프랑스 파리 시장과 함께 이민자 수용을 촉구하는 선언을 발표하기도 했다.

여성시장 한 자리에…“여성 참여가 도시 변화 핵심”

전 세계 여성 시장 숫자에 대한 정확한 통계 자료는 존재하지 않으나 그 비율은 약 5%로 추정된다. 지난 14일 남미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에선 전 세계 주요 도시의 여성 시장들이 모이는 자리가 마련됐다. 12~15일 진행된 제5회 UCLG(세계지방자치단체연합) 세계총회의 일환으로 UCLG 양성평등상임위원회가 주최한 이번 행사에 참여한 여성 시장들은 서로의 경험과 어려움을 공유하고 SDG(지속가능개발목표) 실현을 위한 지속가능한 도시를 위한 ‘새로운 도시 의제’(New Urban Agenda)를 양성평등적 시각에서 실행하기 위한 정책을 논의했다.

안 이달고 파리 시장은 평등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 더 많은 여성들의 정치 진출을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여성은 인류의 절반을 대표하기에 이들을 무시하고선 변화와 건설이 불가능하다”면서 “여성의 참여 없이 도시를 변화시키기는 힘들 것”이라서 지적했다. 또한 “여성의 참여 확대가 남성의 참여를 배제하자는 것은 아니다”라며 여성 정치 참여 확대와 양성평등을 위해 남성과의 파트너십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행사가 열린 콜롬비아를 비롯한 남미 지역은 6억 명의 인구 중 80%가 도시에 거주할 정도로 도시 집중 현상이 심한 곳으로 슬럼 지역의 여성과 어린이가 중요한 과제 중 하나다. 라이사 밴필드 파나마시티 부시장은 “양성평등의 발전은 도시가 여성들에게 기본적인 서비스를 얼마나 제공하느냐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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