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넷페미사] ‘메갈리아’ 이전에 ‘영페미니스트’가 있었다
[대한민국 넷페미사] ‘메갈리아’ 이전에 ‘영페미니스트’가 있었다
  • 이하나 기자
  • 승인 2016.10.13 14:07
  • 수정 2016-10-13 18: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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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김현영 ‘영페미니스트, 넷페미의 새로운 도전’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중반

나우누리 미즈부터 마이클럽까지

 

여성학 연구자 권김현영 ⓒ이정실 사진기자
여성학 연구자 권김현영 ⓒ이정실 사진기자

“너무 과격하고 극단적이며 위아래가 없고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

‘여혐혐’(여성혐오를 혐오한다) 웹사이트 ‘메갈리아’로 대표되는 최근의 온라인 기반 페미니즘 운동을 향한 비판이다. 과격한 언어로 여성혐오를 공격한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러나 여성학 연구자 권김현영씨는 비교적 온건한 방식으로 여성운동을 해왔다고 여겨지는 선배 페미니스트들도 똑같이 “과격하고 극단적”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았다고 했다. 비판의 중심엔 PC통신이 등장한 1990년대부터 닷컴 시대가 열린 2000년대 중반 활발히 활동한 ‘영페미니스트’(이하 영페미)가 있다. 이들은 메갈리아가 탄생하기 20여년 전 이미 웹을 무대로 다양한 문화활동을 펼치며 가부장제를 강력히 비판했다.

권김씨 역시 PC통신 나우누리의 여성학 동호회 ‘미즈’의 시삽(운영자)으로 활동한 영페미이자 원조 ‘넷페미’(넷페미니스트)다. 그는 “당시 영페미들은 정치적으로 올바르진 않았지만 비교적 환영받았다는 기억은 있다. 영페미의 활동은 발칙, 발랄하다는 말로 표현됐다”고 소개했다. 영페미 활동은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등 PC통신의 등장과 발달로 더욱 활발해진다. 권김씨는 “기존 위계 질서가 인터넷에서 적용되지 않으리라는 기대와 함께 동등한 개인들의 자유로운 교류라는 가치를 지닌 PC통신 시대는 논쟁의 시대였다”며 “몇몇 지식인들이 주도했던 기존 한국사회의 논쟁 구도는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PC통신이 등장으로 달라졌다”고 했다.

 

여성학 연구자 권김현영씨가 10월 8일 서울 서대문구 벙커1에서 ‘대한민국 넷페미사’ 라운드 테이블에서 강연하고 있다. ⓒ이정실 사진기자
여성학 연구자 권김현영씨가 10월 8일 서울 서대문구 벙커1에서 ‘대한민국 넷페미사’ 라운드 테이블에서 강연하고 있다. ⓒ이정실 사진기자

학생운동의 한 분과로 취급받던 대학 내 여성운동은 PC통신을 만나면서 기존의 오프라인 기반 운동 방식에서 벗어나 여성운동의 거점을 온라인으로 옮겨 활동했다. 하이텔의 ‘페미니스트의 천국’, 천리안 ‘여성학 동호회’, 나우누리 ‘미즈’가 대표적이다.

수많은 여성 논객이 탄생하며 다양한 젠더 논쟁이 이어졌지만 사이버 공간 내에서 벌어지는 논쟁과 소통 과정 은 여전히 성차별적이었다. ‘노출 단속에 유방 시위로 맞서자’고 제안한 신정모라씨가 징계를 받은 사건이 대표적이다. 그가 천리안 ‘여성학 동호회’ 내에서 작성한 글이 모두 삭제되면서 사이버 공간에서의 표현의 자유가 화두에 올랐다. 권김씨는 “순정, BL(Boy's Love), 팬픽 문화 등 여성 중심 하위 문화가 호응을 얻고 활발해지면서 신정모라씨를 비롯해 동성애 사이트가 검열 대상이 되자, 검열에 반대하는 ‘노컷운동’이 펼쳐졌다”며 “이처럼 노컷운동은 인터넷 상 기본 윤리였으나 최근 넥슨 티셔츠 사태에서 웹툰 규제를 강화하자는 ‘예스컷운동’이 벌어진 것에 엄청난 격세지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또 여성들은 익명성이 보장된 공간에서도 쉽게 언어폭력에 노출됐다. 1998년 천리안에서 ‘화냥년’이라는 ID를 사용하던 여성 회원에게 수십건의 욕설과 성희롱적인 메시지가 담긴 쪽지가 쏟아졌다. 성적인 요구와 지독한 스토킹이 지속되자, 해당 회원이 천리안 측에 신고했으나, 되려 천리안 측은 화냥년이라는 ID를 삭제했다. 권김씨는 “변강쇠나 정력왕 같은 남성들의 ID는 놔둔 채 오히려 피해자인 화냥년이라는 아이디를 삭제한 것은 검열에도 이중잣대가 발동하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3대 PC통신사 페미니즘 동호회 시삽들이 모여 온라인 성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규정을 만들 것을 업체 측에 요구했다. 이 요구가 받아들여지면서 여성 전용 대화방과 온라인 성폭력 지침이 만들어졌다.

PC통신 게시판을 벗어난 다양한 커뮤니티와 사이트가 등장했다. ‘달나라딸세포’ ‘언니네’ 등 여성주의 웹진이 탄생했고, 여성주의 언론 ‘일다’가 탄생했고, 사이버 마초 근절을 위한 사이버 페미니스트 연대 ‘시스터본드’(sisterbond.jinbo.net)가 문을 열었다.

 

여성학 연구자 권김현영 ⓒ이정실 사진기자
여성학 연구자 권김현영 ⓒ이정실 사진기자

사이버 젠더 전쟁의 서막을 연 사건도 이 시기 등장한다. 권김씨는 “1999년 12월 23일 헌법재판소가 군복무 가산점제에 위헌 판결을 내린 직후 모든 여성단체 사이트는 남성들로부터 전방위적인 공격을 받았다”며 “달나라딸세포는 해킹 당했고, 나우누리 미즈에 대한 폐지 청원운동이 벌어졌으며, 군복무 가산점제 폐지 청원을 한 이화여대 재학생과 졸업생의 신상정보가 온라인에 퍼졌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온라인 환경에서 여성들끼리 모여 얘기를 나누고 싶어하는 욕망은 대기업의 마케팅 대상이 됐다. 온라인 공간의 주체였던 여성들을 소비자의 위치로 돌려놓거나 아예 콘텐츠로 이용했다. 마이클럽, 여자와닷컴, 팟찌닷컴 등 상업화된 여성 전용 사이트가 속속 탄생했고, 수익을 내지 못하던 닷컴기업들은 성인인터넷방송과 불법 포르노 유통으로 여성을 콘텐츠화했다.

권김씨는 “1920~30년대 우리나라에선 신여성이, 유럽에선 머리카락을 자르고 바지를 입고 공부를 하겠다고 외치는 여성들이 등장했다. 90년대 중반에도 전 세계적으로 사이버 페미니스트라는 새로운 페미니스트 그룹이 나타났다”면서 “역사적으로 새로운 여성(운동)은 매우 강력한 동시대성을 띄면서 등장한다는 공통점을 지녔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그는 “중요한 점은 기존 질서가 효용을 다한 순간 새로운 페미니스트가 등장한다는 점”이라면서 “메갈리아의 등장 역시 기존 질서가 힘을 잃고 있다는 신호이며, 이 신호를 사회를 바꿀 신호로 받아들이고 우리 사회가 어디로 향해야 할 지 주의깊게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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