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그거해’ ‘그날이야’ ‘마법에 걸린다’

남성 주도권 쥔 사회, 생리는 부끄러운 일로 인식

 

딸에게 초경 파티 해주는 아빠 늘어나 “반가운 일”

학교서 초경 파티 정례화를 “생리는 형벌 아냐”

 

지난번에 쓴 ‘몽정으로 생리에 들이대는 남자들’에 대해 다음과 같은 댓글이 달렸다.

“생리가 임신할 자격을 갖췄다고 축하받을 일은 아님. 임신할 자격을 스스로 포기해서 생리 안하는 게 나음. 반평생 고통과 귀찮음, 임신할지도 모르는 공포에 시달리는 게 저주에 가깝지 축복받을 일은 아님. 여자를 포궁으로 보니 생리가 축복이라 하는 거지.”

생리는 왜 볼드모트가 됐나

이 댓글을 읽으니 지인의 말이 떠올랐다. 그녀는 군대와 생리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면 기꺼이 군에 가겠다고 했다. 이렇게 말하면 황금기 2년을 군대에서 보낸 수많은 남성들이 분노할 테고, 그녀가 진짜 군대를 다녀온 뒤에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한 달의 4분의 1을 생리를 하며 보내는 삶도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다.

게다가 성관계가 쾌락과 동일시되는 남자와 달리 여성은 원치 않는 임신의 가능성 때문에 고민해야 한다. 또 생리를 하면 냄새가 날까봐 걱정하는 여성도 많다. 이런저런 불편함을 따져봤을 때 댓글을 쓴 분의 말처럼 생리가 정말 축복받을 일인지 한번 생각할 일이다. 게다가 생리는 혈액이 외부로 나가는 것, 피는 대부분 부정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예컨대 스티븐 킹의 소설이자 나중에 영화로 만들어져 크게 흥행한 『캐리』에서도 생리는 부정적인 뉘앙스로 그려진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주인공 캐리는 샤워를 하던 중 초경을 경험한다. 다른 아이들에 비하면 다소 늦은 생리였는데, 같은 반 아이들은 그런 캐리를 비웃고, 그녀에게 물건을 마구 집어던지기까지 한다. 캐리가 자신의 염력을 발휘해 아이들에게 복수를 하는 것도 짓궂은 아이들로 인해 온몸에 돼지피를 뒤집어썼기 때문이며, 이는 영화 초반부의 생리 장면과 연결된다. 이런 영화를 본 기억이 있다면 생리를 그리 자랑스러운 것으로 인식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그렇다고 해서 생리를 감춰야 할 부끄러운 일로 볼 수는 없다. 본인이 원해서 시작된 게 아니라 해도 어차피 일정 나이가 되면 다 하는 것이라면, 숨기려 해봤자 그게 무슨 소용인가? 아주 오랫동안 생리는 ‘나, 그거해’ ‘나, 그날이야’ 등으로 불렸다. 조금 완화된 표현이 CF에서 화제가 됐던 ‘마법에 걸린다’였는데, 과거 남성들이 여성을 비하할 때 “쟤 왜 저래? 생리하나?” 같은 망발을 일삼은 데는 생리 자체를 금기시한 여성들의 태도가 한몫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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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

여성 스스로 부끄러워하니 남성들이 옳다구나, 하고 놀렸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여성운동이 생리를 축복하려고 한 건 이 때문이다. 페미니스트로 유명한 글로리아 스타이넘 (Gloria Steinem)은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이란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남자가 생리를 한다면 분명 생리가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자랑거리가 될 것이다. (중략) 처음으로 생리를 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 선물과 종교 의식, 가족들의 축하 행사, 파티들이 마련될 것이다. 지체 높은 정치가들의 생리통으로 인한 손실을 막기 위해 의회는 국립월경불순연구소에 연구비를 지원하고, 의사들은 심장마비보다는 생리통에 대해 더 많이 연구할 것이다.”(30∼31쪽)

스타이넘은 생리량이 누가 더 많은지를 가지고 우열을 겨루는 모습도 볼 수 있을 거라는 얘기도 하는데, 소변량을 가지고 우열을 겨루는 남성들을 떠올리면 이게 괜한 생각은 아니다.

스타이넘의 발칙한 상상은 우리나라 여성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맞아, 생리는 부끄러운 게 아닌데 왜 우리나라 여성들은 그동안 생리가 없는 것처럼 살아온 걸까?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듯이, 이왕 하는 것이라면 대놓고 자랑하는 것도 생리를 받아들이는 한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해서 1999년 ‘월경페스티벌’이 시작됐다. 그로부터 2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이 축제가 얼마나 많은 여성에게 자부심을 심어줬는지 모르겠다. 세상의 절반이 여성이고, 생리하는 여성은 그 중 절반이 넘음에도, 생리축제가 해를 거듭할수록 발전했다, 뭐 이런 건 아닌 모양이다.

남성들에게 “생리도 못하는 것들’이라고 욕하는 여성은 본 적이 없는 것은 고사하고, 생리라는 단어를 공공장소에서 듣는 건 매우 드문 일이니 말이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리 사회가 아직도 남성이 주도권을 쥔 사회라는 게 큰 이유일 듯하다.

학교 다닐 때 생리는 개인적인 일이며 되도록 드러내지 말자는 생각을 갖고 살았는데, 갑자기 ‘생리 축제’라는 말을 듣는다고 “아, 생리는 축하할 일이구나!”라며 좋아 날뛸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게다가 생리축제를 주최하는 곳이 여성단체이다보니, 페미니스트로 낙인찍히면 사회생활이 피곤해진다고 생각한 여성들이 참여할 마음을 갖지 못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초경의 날’, 생리 축하해주길 

다행히 생리 파티가 조금씩 확산되고 있는 모양이다. 블로그를 보면 초경을 한 딸을 위해 파티를 열어줬다는 글이 꽤 많이 있다. 맛있는 저녁과 함께 선물을 받는다면 생리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 게 가능할 수도 있겠다. 생리파티 때 부모로부터 축하카드와 함께 장미꽃 100송이를 받은 기억은 그녀가 생리로 인해 겪는 불편을 감수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고, 누나에게 “축하한다”며 카드를 보낸 7살 남동생은 그 당시는 초경이 어떤 의미인지는 잘 몰랐겠지만, 어른이 된 뒤 여성과 다툼이 생겼을 때 “쟤, 생리하나?” 같은 비하적인 말을 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

그런 면에서 생리파티의 확산은 매우 반가운 일이지만, 이왕 하는 거 학교에서도 이런 비슷한 일이 정례화되면 좋겠다. 한 여학생이 손을 들고 “선생님, 저 초경해요”라고 말하는 순간 박수갈채가 터져 나오고, 같은 반 아이들이 돈을 걷어 선물을 마련하고, 아직 초경을 못한 여학생들과 초경이 불가능한 남학생들이 부러움에 찬 시선을 보낸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이 어른이 된다면 생리 때문에 회사를 하루 쉬겠다는데 몽정을 들이대며 남자도 쉬게 해달라는 사람도 없어질 테고, 생리하는 여성이 그에 따른 합당한 대우를 받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생리가 왜 축하받을 일인지 모르겠다.” “생리하느니 군대 가겠다” 같은 말도 덜 하지 않겠는가?

매년 10월 20일은 초경의 날이란다. 산부인과 의사회가 정했다는데, 혹시 다른 일로 바빠서 자기 딸에게 초경 파티를 해주지 못했다면 이날 카드와 선물을 준비해 축하를 해주길 빈다. 당신의 딸이 생리를 형벌로만 여기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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