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과 젠더 이슈가 연일 사회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여성신문은 2030 젊은 남성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사회적 쟁점에 관한 논의의 폭을 넓히고자 ‘나는 남성 페미니스트입니다’ 기획 기고를 싣습니다.

 

“‘임산부 배려석’? ‘질내사정 인증석’이네.” 며칠 전 올라탄 지하철에서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 발화자와 그 친구들로 추정되는 20대 남성들이 키득거렸다. 마침 지하철 출입문이 열리며 한 임신부가 들어오자 남성들의 웃음소리는 더 커졌다.

어떻게 백주대낮에 공공장소에서 그런 대화를 나눌 수 있었을까?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임신과 출산의 문제, 성 문제를 ‘농담’으로만 소비하고 있다. 여성에 대한 명백한 성폭력이나 언어폭력조차도 ‘남성의 본능(뒷담화)’이라고 포장하거나, ‘농담도 못하냐, 왜 선비질이냐’라며 자신들의 행위를 합리화한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속한 물건이 아니라는 것은 초등교육을 받은 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많은 한국 남성들은 여성을 소유물처럼 여기도록 사회화된다. 교과서나 과학이 아닌, 음담패설을 통해 자신만의 성 관념을 형성한다. 여성혐오와 결합한 음담패설은 본질적으로 여성을 무시하고 착취하는 서사다. 남성들은 이러한 내용을 소라넷에서, 밴드에서, 카톡방에서, 실제 대화에서 일상적으로 공유하고 즐기고 다른 남성들에게도 동조할 것을 요구한다. ‘사랑’을 핑계로 남성의 쾌락에 초점을 맞춘 섹스를 강요하거나, ‘성관계의 질’ ‘진정성’을 운운하며 콘돔 착용을 거부하는 남성이 꾸준히 늘어나는 이유다. 이런 남성들에게 여성의 몸과 건강과 감정은 중요하게 고려할 대상이 아니다. '남성의 본능이니 이해해 달라'고 요구하는 이기적인 남성들도 적지 않다. 바로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이런 사회에서 여성의 신체적 자기결정권은 너무나도 쉽게 무시당한다. 여성이라서, 자신의 몸과 성에 관해 자유로이 목소리를 낼 권리를 존중받지 못한다. 남성의 반성이나 자아비판은 요원하다. 남성이기 때문에 손쉽게 누릴 수 있는 권위와 쾌락을 쉽게 포기할 남성이 많을 리 없다. 몰카나 ‘리벤지 포르노’를 즐겨 보는 남성들은 범죄의 피해자인 여성들을 보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여성은 남성의 쾌락을 위해 봉사하기 위해 그곳에 있는 존재이니까. 

여성혐오와 성차별을 ‘재미있는 농담’으로 받아들이는 사회 분위기도 문제다. 최근 모 천연비누 기업은 “안 빼고... 넣은 채로 싸게 하려 했는데...”라는 카피로 비누 제품 광고를 제작해 뭇매를 맞았다. 그랬는데도 사과문엔 “해당 광고를 보고 웃고, 관심 가져주고 구매해 주신 분들도 많아서 애매하다”라고 썼다. 여성혐오적 언행은 넘쳐나는데, 그게 왜 잘못됐고 왜 사회적 문제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세상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적어도 남성들은 ‘설치고, 떠들고, 말하고, 생각하는’ 여성의 존재를 이전보다는 더 확실히 의식하게 됐다. 페미니즘에 관한 대중의 관심도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페미니즘에 눈을 뜬 여성들은 하나둘씩 힘을 합쳐 견고한 불평등과 폭력의 사슬을 끊기 위해 싸우고 있다. 이들을 응원하거나, 이들과 함께하지 못하겠다면, 적어도 ‘힘없고 차별당하는 불쌍한 남자들을 더는 공격하지 말아달라’며 징징거리는 일은 그만두자. 페미니즘은 ‘역차별 조장’이 아니다. 인간과 삶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일이며, 지금 꼭 필요한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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