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장애인연합 주최로 9월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 여성장애인 관련 사업과 예산 축소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한국여성장애인연합
한국여성장애인연합 주최로 9월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 여성장애인 관련 사업과 예산 축소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한국여성장애인연합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주제 사라마구’가 쓴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었다. 어느 날, 한 남자로부터 시작된 백색실명은 무섭고 빠른 속도로 온 도시에 전파되고, 그로 인해 인간이 얼마나 황폐해지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그 중 크게 공감했던 문장 하나를 소개 하고자 한다.

‘가장 심하게 눈이 먼 사람은 보이는 것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은 위대한 진리에요.’

밑줄을 그으며 ‘보이는 것을 외면하는 것은 죄’라고 중얼거렸다.

여성장애인의 삶은 열악하다. 비장애여성과의 비교는 그만두고, 같은 장애인이지만 장애남성과의 격차는 심각하다. 교육정도의 격차도 그렇고. 월평균 개인수입에서 남성은 128.6만원, 여성은 52.3만원에 불과하다. 대한민국 1인 가구 최저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빈곤상태에서 여성장애인들이 삶을 유지하고 있다.

한 줄의 빛처럼 정부는 여성장애인교육사업(보건복지부)과 어울림센터(여성가족부)를 운영하던 사업은, 2013년부터 폐지와 통합, 예산 삭감이라는 정부 방침이 여성장애인을 흔들었다. 유사중복이라는 언급은, 급기야 2015년 양 부처의 사업을 보건복지부로 통합할 것을 결정했다.

2017년부터 보건복지부는 여성장애인역량강화지원센터를 운영하겠다고 한다. 문제는 예산이다. 예산은 증액되지 않고 센터를 운영하려다 보니 기존 어울림센터의 예산이 대폭 줄고, 종사자 수를 줄여야 한단다.

최저임금에 불과한 처우를 견디며, 일해온 종사자들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 생존권을 위협받는 어울림센터 종사자들을 위한 비상구는 없다. 여성장애인들은 권리를 찾기 위해 맨주먹으로 벽을 두드려 출구를 만들어야 한다.

이 흔들림이 종내는 완전 폐지로 가는 건 아닌지 불안하다. 아니 무섭다. 그래서 우리는 여성장애인관련 사업 예산증액과 여성장애인역량강화지원센터를 제도화할 것을 요구한다.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으려면 여성장애인지원법이 절실히 필요하다.

여성장애인의 삶이 이토록 열악함을 알면서도 평균치만 논하며 보지 않는 것은 횡포다. 정부든 국회든 그 누구이든, 여성장애인의 삶의 문제가 이렇듯 빤히 보이는데 이를 외면하는 것은 힘없는 자를 향해 자행되는 범죄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는 어느 날 갑자기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람들이 백색실명에 접어든다. 평안하고 안전한 삶에 어느 날 갑자기 장애를 만날는지 아무도 모른다. 비장애인으로 살던 내 삶이, 어느 날 류머티스라는 질병을 만나 12번의 수술을 겪으며, 지체 1급 여성장애인이 되어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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