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가 알려줄게”… 국내외에 만연한 남성들의 ‘지적질’

“여성은 열등” 사회 인식이 원인… 남성 우대 조직 관행 바꿔야

 

2013년 ‘나사 우주인 그룹 21’의 일원으로 선발된 제시카 메이어는 지난 9일 트위터에 “6만3000피트 첫 도전, 우주등가구역, 물이 저절로 끓는 곳! 적응됐음!”이란 메시지를 남겼다가 “‘저절로’가 아니지. 공간 내 압력이 상온의 증기압보다 낮아져서 그런 거지. 열역학 기초잖아”라고 끼어드는 남성의 답변을 받았다. 하지만 하버드의대 마취통증의학과 조교수 출신의 메이어가 기초과학을 모를 리가 없다.

이보다 한 달 전에는 천체물리학자 캐서린 맥이 트위터에 기후변화로 인한 영향에 대해 걱정하는 글을 남겼다가 “진짜 과학을 좀 배워야 할 듯, 그리고 기후온난화라는 사기를 밀어붙이는 범죄자들 말은 듣지 말라”며 한 남성의 지적을 받았다. 이에 맥은 “이미 알고 있어, 천체물리학 박사학위가 있거든. 지나칠 정도로 알고 있을 듯”이라며 재치 있게 쏘아붙였다. 

‘여성을 가르치려는 남성’, 이른바 ‘맨스플레인’(Mansplain)이 최근 미국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뜨거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맨스플레인이란 남자 ‘맨(man)’과 ‘설명하다’는 ‘익스플레인(explain)’을 합성한 신조어다. 어느 분야에 대해 여성들은 잘 모를 것이라는 기본 전제를 가진 남성들이 무턱대고 아는 척 설명하려고 하는 행동을 가리킨다.

특히 여성이 취약하다는 고정관념이 있는 이공 계열이나 IT 관련 지식에서 맨스플레인 현상이 두드러진다. 그 대상은 나사 우주인이나 전문 과학자 등 지식과 자격을 갖춘 사람도 가리지 않는다. 상대가 진짜 전문가라는 사실을 안 후에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대다수에 동조와 비판의 의견이 더해지면 SNS는 순식간에 싸움터가 돼 버린다.

맨스플레인은 한국 사회 곳곳에도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20대 여성 박보영에게 “오빠가 알려줄게”라고 나서는 자동차보험 광고, 남성들만으로 구성된 고정 패널이 여성 게스트를 상대로 ‘드립’을 날리는 ‘아는 형님’류의 방송 프로그램, 사과문을 올린 날에도 지코와 데이트를 했다며 설현을 다그치는 언론, 각종 커뮤니티와 온라인 뉴스의 댓글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국내에서 맨스플레인이란 단어가 화두가 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5월 ‘무뇌아적 페미니즘은 IS보다 위험하다’라는 팝칼럼니스트 김태훈과 ‘엠마 왓슨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형식으로 페미니즘 운동과 성차별에 대해 훈계하려 했던 작가 고종석의 칼럼이 논란을 빚으면서부터다. 때맞춰 언론들이 맨스플레인의 대표 서적인 레베카 솔닛의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를 앞다퉈 소개하기 시작했다.

이에 더해 강남역 살인사건과 메갈리아 사태를 겪으면서 일련의 여성혐오 발언과 메갈리아는 페미니즘이 아니라며 페미니즘을 가르치려 드는 남성들이 등장하면서 맨스플레인이 이슈로 떠올랐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란 뜻의 신조어 ‘*알못’도 맨스플레인의 또 다른 파생으로 볼 수 있다.

해외에선 맨스플레인으로 망신을 당한 남성들도 있다.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는 지난 7일 ‘최고사령관 포럼’에서 “매일 20명의 제대군인이 자살하는 상황을 멈추기 위한 방안을 알려 달라”는 해병대 출신 여성의 질문에 “20명이 아니라 22명”이라고 답변했다가 관련 통계가 지난 7월 20명으로 업데이트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난을 받았다. 캐나다의 로빈 캠프 판사는 성폭행 재판 중 피해자인 19세 소녀에게 “섹스는 때로 고통스러운 법”이라거나 “그러게 왜 무릎을 오므리지 않은 거야?”라며 따져 물었다가 판사직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레베카 솔닛은 타인에게 하는 ‘훈계’는 자신만 발언할 수 있는 ‘주체’이며 상대방은 수동적인 대상이라는 일종의 ‘권력관계’ 때문이라며 이런 권력관계가 여성에 대한 강간, 폭력, 살인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또 영국의 여성단체 ‘에브리데이 섹시즘 프로젝트’의 창설자인 로라 베이츠는 “‘지적이거나 전문적인 분야에서 여성이 열등할 것’이라는 빤히 보이는 사회적 인식이 맨스플레인의 진짜 문제점”이며 “이런 고정관념이 그 분야의 여성 고용이나 승진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이를 바로잡으려면 여성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베이츠는 “여성들이 잘못해서가 아니라 남성들이 잘못된 가르침을 받고 자라 잘못된 인식이 몸에 밴 체 행동하기 때문”이라며 “남성을 먼저 승진시키고 남성에게 여성을 훈련시키게 하는 관행부터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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