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여성사박물관을 찾아서/수전 B 앤서니 박물관]

1966년 로체스터 지역서 최초로 미국역사기념물 지정

철저한 고증과 자료 조사 10년간 차근차근 복원 사업

5000점 유물 보관, 관리… 박물관장 “아직도 유물 수집”

 

수전 B 앤서니
수전 B 앤서니

수전 B 앤서니 가족이 지금은 박물관이 된 메디슨가 17번지로 이사온 것은 1865년이다. 수전은 이곳에서 정치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던 1866년부터 1906년 사망 때까지 살았다. 또 여성참정권 획득을 위해 전국을 동분서주하거나 유럽으로 여행을 가지 않을 땐 글을 쓰고, 계획을 세우고, 조직을 했다.

로체스터 여성클럽이 자택 매입

그러나 수전이 1906년 사망하고 같이 살았던 그의 여동생 메리마저 1907년 세상을 떠나자 상속자들은 집을 팔기로 결정하고 가구와 작은 물건들을 나눠가졌다. 이후 여러 차례 집주인이 바뀌었고, 40년간 개인의 수중에 있다가 로체스터 여성클럽이 수전 B 앤서니와 메리 앤서니를 기념하는 곳으로 바꾸기 위한 모금 운동을 시작해 자택을 매입하면서 1945년 박물관으로 바뀌었다.

1948년 뉴욕주는 유적지 표지판을 집 앞에 세웠고, 1966년 수전 B 앤서니 자택은 로체스터 지역에서 최초로 미국역사기념물로 지정됐다. 바로 이런 이유로 국립이 아니라 국가가 지정한 유적지라는 의미의 ‘내셔널(National)’이라는 단어가 수전 B 앤서니의 자택에 붙었다. 자택 근처에 1830년부터 조성돼 있던 공원은 1971년 앤서니 공원으로 개명됐다. 공원 중앙에는 오랜 친구였던 프레더릭 더글러스와 수전이 차를 마시는 실제 인물 크기의 동상이 세워졌다.

1977년 수전 B 앤서니의 자택 주변 9개의 블록이 보존지역으로 지정됐다. 이 지역은 19세기 모습이 그대로 잘 유지돼 있어서 국가 사적지로 승격됐다. 1991년 국립공원관리청의 특별자원 평가를 받게 되면서 46년간 모금과 기부로 관리되던 수전 B 앤서니의 집은 1992년을 기점으로 전문 박물관으로 탈바꿈했다. 2000년 국립공원관리청이 연방기금을 지원해 자택 복원 지침을 만들었고, 2004년부터 시작된 복원 사업은 2014년에 마무리됐다.

이러한 복원 작업은 철저한 고증과 자료 조사를 기반으로 진행됐다. 복원 사업에 필요한 자금도 여러 재단의 지원과 개인과 단체 기부, 모금을 통해 마련해 거북이걸음으로 서서히 그러나 차곡차곡 진행됐다. 데보라 휴즈 수전 B 앤서니 박물관장은 “1945년부터 시작된 유물 수집은 아직도 진행 중”이라며 “5000점에 이르는 유물은 박물관에서 보관,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전 B 앤서니가 살았던 자택(왼쪽 건물)과 방문자센터.
수전 B 앤서니가 살았던 자택(왼쪽 건물)과 방문자센터.

 

방문자센터 내 전시 판넬. 아래쪽 여성이 수전 B 앤서니다.
방문자센터 내 전시 판넬. 아래쪽 여성이 수전 B 앤서니다.

 

수전 B 앤서니의 묘비.
수전 B 앤서니의 묘비.

“조직하고, 선동하고, 교육시켜라”

필자는 자원봉사자인 도슨트의 안내로 수전의 자택을 둘러봤다. 사진 촬영이 금지돼 유물과 가구, 방을 사진에 담아올 수 없었지만 도슨트의 설명으로 가구가 갖는 의미와 각 방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들었다. 수전 B 앤서니의 집은 3층이다. 1층에 두 개의 거실이 있다. 한 곳은 식당으로 쓰였고, 부엌이 있다. 2층에는 서재가 있고 손님방, 메리의 침실과 수전의 침실과 욕실이 있다. 3층은 1890년대에 증축됐으며 전국여성참정권협회 본부이자 수전의 전기와 여권운동사를 집필하는 작업실이 있다.

1층 거실로 우리를 안내한 도슨트는 바로 이곳이 1872년 수전 B 앤서니가 선거에서 투표를 했다는 이유로 보안관에게 체포된 곳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여성은 투표할 수 없는 데도 수전은 당시 통과된 수정조항 14조와 15조에 따라 시민인 여성은 법적으로 투표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지역 여성 14명과 함께 1872년 대통령 선거에서 투표를 했고, 그 일로 체포돼 재판까지 받았다.

또 식당으로 쓰이는 방을 설명하면서 수전은 자신의 집에 온 손님들을 위해 직접 요리하고 접대하면서 무척 행복해 했다는 설명을 해줬다. 2층 손님방으로 우리를 안내하면서 도슨트는 이 집에서 가장 밝고 환한 방이 손님방이었다고 전했다. 

손님방 옆에 있는 수전의 동생 메리의 방을 소개하면서, 도슨트는 메리 역시 수전 못지않은 여권투쟁가였음을 보여주는 일화를 들려줬다. 메리는 로체스터학교에서 교장직 제의를 받았지만 남성 교장과 동일한 월급을 달라고 요구해 거절당했다. 이후 적임자를 찾지 못한 학교측이 메리의 제안을 받아들여 남성과 동일한 월급을 주며 교장으로 고용했다는 것이다. 메리는 투표권도 없이 세금을 내야 하는 것을 대표 없는 과세라고 부당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편지 말미에 “Yours Sincerely” 대신에 “Yours for Equal Rights”라고 썼다고 한다.

그 다음이 수전의 방이었는데, 방안에는 유리장에 곱게 모셔놓은 검정색 옷이 걸려 있었다. 유타 여성들이 투표권을 획득하는데 성공하도록 도와준 데 대한 감사의 뜻으로 옷감을 줬다는 설명이다. 도슨트는 3층 작업실로 안내하면서 수전이 전국여성참정권협회 회장이 된 후 협회 본부로 쓰였으며, 그의 전기와 여성참정권 역사를 집필한 곳이라고 전했다. 

수전 B 앤서니 박물관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프로그램 중 걸스카우트 교육이 눈에 띄었다. 걸스카우트들에게 수전 B 앤서니 역할을 해보는 역할 놀이를 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다. 단순히 업적을 배우는 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세상을 나은 곳으로 만들고자 한 수전 B 앤서니의 정신을 배우고 공동체를 위해 무엇을 할지 고민하는 시간을 갖는다. 또 실천 프로젝트를 만들어 아이디어와 전략을 짜고 각 과정의 성취도에 따른 증명서를 준다. 훌륭한 지도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각자의 삶에서 모범이 되는 사람을 선택하도록 해서 그들의 삶을 배우고 지도자의 자질과 소통 전략도 익힐 수 있다.

수전 B 앤서니 박물관은 “조직하고, 선동하고, 교육시켜라”라는 그들의 운영 방침에 따라 단순히 보여주는 박물관에서 교육시키고 학습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앞으로 지어질 국립여성사박물관도 여성의 역할을 보여주는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왜 그리고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사회를 바꾸고 개조할지 의문을 갖게 하는 학습 공간이 돼야 한다. 남녀가 공존하는 사회에서 남녀의 조화와 협조 없이 가능한 일은 없다는 당위성을 인식하고 이 일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의문을 갖고 박물관 문을 나서도록 해야 한다. 또 국립여성사박물관은 여성의 가치와 그들의 업적을 인정해 주고 갈등을 줄여 소통을 하는 공간이 돼야 한다. 무엇보다도 여성이 그 동안 해왔던 일, 사소한 듯 보여서 무시된 일의 진정한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 첫걸음이 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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