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이 8월 25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3차 저출산 기본계획 중점대책 브리핑에 참석해 저출산 위기 극복을 위한 호소문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이 8월 25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3차 저출산 기본계획 중점대책 브리핑에 참석해 저출산 위기 극복을 위한 호소문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보건복지부가 8월 25일 “출산율 회복을 위한 보완대책: ‘출생아 2만+α’ 대책”을 긴급히(!) 내놓았다. 올해부터 시행하기 시작한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의 보완대책이다. 문건에 따르면 ‘최근 다소 지속된 출산율 상승세가 3차 기본계획 첫 해 둔화될 우려가 있어,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왜 ‘긴급히’일까? 장관이 직접 브리핑을 했다. 청년수당 등 이슈가 등장할 때마다 국장 등 관료만 내세우고 보이지 않던 장관이 직접 브리핑하는 모습을 보였다. 공개된 관련문서 작성 주체도 보건복지부가 아니라 ‘보건복지부 장관 정진엽’이다. 아마도 누군가 지지부진한 출산율에 진노하셨던 모양이다. 

무엇보다 이미 발표된 3차 기본계획과 크게 차이 없는 내용을 난임부부에 대한 ‘전폭적 지원’을 첨가해 차원이 다른 보완대책인 양 떠들썩하게 내놓은 것을 보면 뭐가 급해도 단단히 급했나보다. 게다가 ‘+α’라는 불분명한 정책 목표까지 있다. 난임·안심출산지원으로 최대 1만2000명, 일·가정양립 정착으로 8000명, 둘째·셋째 출산 지원으로 2000명, 그리고 전사회적 출산 붐 조성으로 +α명이다. 1만2000, 8000, 2000 숫자 도출 근거도 납득하기 어려운데 몇 명이 태어날지 모를 정도로(+α) 사람들이 신이 나서 아이를 낳게 하겠다는 것이다. 

내가 복지부 관료라도 스스로 씁쓸할 것 같다. 누가 시켜서 이런 대책을 만들어야 했나?

고통받는 당사자 입장을 생각하면 난임 시술 지원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큰 흐름에서 볼 때 2만명+α, ‘언 발에 오줌누기 식’ 정책으로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이 분야에서 수십년 일한 복지부 관료가 모를 리 없다. 1년 낙태아 수를 30~40만 명 추정할 수 있는 사회다. 낙태 문제를 건드리고 비혼 출산을 이야기하면서 이 땅의 무수한 꼰대들이 가치관의 혼란을 겪는 파격적 전환이 일어나지 않으면 저출산 문제 해결은 시작도 할 수 없다. 게다가 이제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은 더이상 운명이 아니라 선택이다. 남자는 가족 부양이 부담스럽고 여자는 독박 육아를 원하지 않는데 자녀 출산을 선택하겠는가? 저출산은 아이를 낳고 기르는 과정과 비용에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다. 

대학 졸업을 시키려면 자녀 1명당 들어간다는 3억원도 문제겠지만, 자녀출산과 동시에 부모들 머릿속에 떠오르는 커다란 근심 중 하나는 자신의 미래, 자신의 노후다. 결국 소득 보장, 의료 보장, 취업 지원, 주거 보장, 사회 서비스라는 복지국가의 기본 토대를 구축하고 ‘자녀 출생부터 부모 자신의 노후’에 대한 근심·걱정을 최소화해야 출산을 선택하게 된다. 그런데 그래봤자 두 자녀다. 

이른바 출산지원정책이 성공적이라는 스웨덴, 프랑스 등을 보더라도 이제 2명 이상은 낳지 않는다. 2007년 이후 양성평등적 가족정책으로의 전환을 통해 저출산 현상을 극복하려는 독일이 이제 출산율 1.5 수준을 오락가락하고 있다. 

그런데 부모 세대의 불안한 삶, 조부모 세대의 빈곤한 삶을 똑똑히 목격하고 있는 청년 세대 입장에서 보자. 제 손으로 아이 기저귀 한번 갈아준 경험이 없을 것 같은 사회원로, 전문가, 경제5단체 대표, 고위공무원 등이 모여 저출산 극복 전국사회연대회의를 하고 ‘일·가정양립 민관협의회를 구성하면 감동을 받을까? 손자녀에게 금수저를 물려줄 준비가 확실히 된 것 같은 국무총리가 저출산 극복 의지를 얼마나 단호하게 표명해야 공감할 수 있을까?

더 이상 다자녀 지원 범위를 셋째로 할 수 없다고 인식했고 그래서 첫째 자녀 갖기에도 지원을 확대하기 시작했다면 정책의 모든 흐름이 그렇게 변해야 한다. 그런데 ‘아빠의 달’ 급여 확대 대상은 둘째 자녀부터다. 가족친화적이지 않고 대체 인력을 구하지 않아도 경영이 가능한 기업이 여전히 많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윗선에서 체크하는 실적 수준에 맞추기 위한 고용지원금 투입을 여전히 하고 있다. 

저출산 위기 극복 거버넌스를 강화한다면서 지자체 출산율 평가체계 구축을 제시하고 있다.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는 지역사회 환경 조성이 중요하지, 평가체계 구축이 뭐 그리 중요한가? 중앙정부가 지자체를 통제하는 또 하나의 틀을 만드는 것 외에 어떤 결과가 나올까? 청년내일채움공제, 고용디딤돌사업, 청년전세임대, 제왕절개 본인부담 인하, 난임시술 지원, 국공립·공공형·직장어린이집 신설 2016년 목표 초과 달성, 남성육아휴직 확대 등등 청와대 체크리스트에는 파란불을 계속 켜게 하는 정책 성과를 보완대책은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보완대책 문건의 행간에서 “이제 1년 정도만 버티면 된다”는 뜻이 읽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 이것이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대응이었구나! 복지부 대책에 실망하기보다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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