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100일 앞둔 9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에서 열린 ‘제5회 대학 합격기원 타종행사’에 참가한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합격기원 소원지를 ‘희망의 끈’에 묶고 있다. ⓒ이정실 사진기자
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100일 앞둔 9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에서 열린 ‘제5회 대학 합격기원 타종행사’에 참가한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합격기원 소원지를 ‘희망의 끈’에 묶고 있다. ⓒ이정실 사진기자

아마도 지난 칼럼을 진지하게 읽어본 분들이라면 대안교육이 매우 고차원적이고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을 것 같다. 현실의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보다는 근대교육의 근본적인 결함이나 인류 문명의 시대적 변화에서 대안교육의 근거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정말 대안교육이 그렇게 어렵고 고차원적이기만 할까? 현실에서 대안교육을 실천한다면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가장 시급한 것은 부모나 학교가 아이들에게 더 이상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부모나 학교(교사)는 아이들에게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받아야 좋은 직장에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가르친다.

이 만고불변의 말씀은 적어도 두 가지 점에서 진실되지 못하다. 첫째, 좋은 성적과 행복한 삶은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사례는 예전의 산업사회에서도 쉽게 관찰됐지만, 특히 개성과 창의성을 중시하는 지식기반사회에서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지식을 앵무새처럼 되뇌는 아이를 환영하지 않는다.

둘째, 설혹 상위의 성적을 받은 학생들 소수가 상대적으로 높은 성공률을 보였다고 해도 나머지 다수의 성적 중하위자들을 위한 행복한 삶은 어떻게 찾도록 해 줄 것인가? 이에 대해 학교는 아무런 답도 제시하지 못한다.

학교 성적은 결코 아이들의 능력에 대한 객관적 지표가 아니다. 그것은 단지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얼마나 잘 암기했는가를 나타내는 지표일 뿐이다. 좋은 성적은 그 아이의 성실성을 보여줄 수는 있다. 그러나 대신 그 아이는 교사가 가르치지 않은 지식이나 경험에 대해서는 숙맥일 수도 있다는 약점을 지닌다. 요약하자면, 성적의 노이로제에서 부모와 교사가 먼저 해방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서민들의 삶을 옥죄는 사교육비의 고통이 저절로 사라질 것이다.

다음으로 시급한 것은 우리 아이들에게 자기주도성을 갖도록 하는 일이다. 소위 명문대에 입학한 아이들도 자기 생각을 말해보라고 하면 잘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어려서부터 늘 배운 대로 답하도록 훈련을 받았기 때문이다.

수험생들은 수능시험에서 중요한 것은 자기 생각이 아니라 출제자의 의도라는 점을 귀가 아프도록 듣는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남들이 다 틀렸다고 해도 자신의 고유한 경험과 판단을 바탕으로 고집스럽게 자신의 길을 갈 수도 있어야 한다. 정답이 없는 세상에서는 스스로 정답을 만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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