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용준 메이크위드 대표

3D프린터·레이저커터·CNC

있으면 누구나 ‘프로슈머’

협력과 공유가 메이커 철학

섬세·공감능력 있는 여성 유리

스타트업 키우는 토양 되기도

 

형용준 메이크위드 대표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형용준 메이크위드 대표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나 생산자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의 ‘메이커 운동(Maker movement)’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옷이나 장난감, 가구, 화장품을 직접 만드는 DIY(Do It Yourself)를 넘어 이젠 로봇과 드론, 스마트워치, 인공위성까지 전문가가 아니어도 누구나 원하는 것을 직접 만드는 메이커(Maker)의 시대다. 3D프린터같은 디지털 기술과 도구의 대중화, 만드는 방법을 공유하는 오픈소스 문화 덕분이다.

국내에선 ‘싸이월드 창업자’로 잘 알려진 형용준(48) 메이크위드 공동대표가 메이커 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카이스트에서 경영과학 학부와 경영공학 대학원을 마친 그는 1999년 싸이월드 창업 이후 세이큐피드, 쿠쿠박스, 스토리블렌더 등을 창업하며 꾸준히 혁신을 꾀하고 있다. 스토리블렌더의 비디오 위키 기술은 미국 최대 스타트업 행사 ‘테크크런치 40(Techcrunch40)’에서 미래서비스로 선발되기도 했다. IT 산업을 선도해온 그가 현재 주력하는 분야가 메이커 운동이다. 메이크위드는 디자인하우스 자회사로 메이커 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그가 만든 D.I.Y 정보 웹 플랫폼이다.

형 대표는 메이커 운동에 대해 소비자와 생산자의 경계를 허문 프로슈머(prosumer)의 탄생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사람들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직접 만들 엄두를 못냈어요. 시제품을 만드려면 공장에 가야했고, 대량생산만 하는 공장에선 문전박대를 당해야 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3D 프린터, 레이저커터, CNC라는 디지털 기술과 도구가 확산되면서 직접 제품을 만들 수 있게 된 거죠. 소비만 하던 사람들이 제작에 뛰어들면서 새로운 ‘프로슈머’가 탄생한거에요.”

메이커 운동은 미국의 정보통신(IT) 전문 출판사 오라일리가 2005년 ‘메이크(MAKE:)’라는 잡지를 창간하면서 오라일리 부사장 데일 도허티가 주창한 개념이다. 이듬해부터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에서 박람회인 ‘메이크 페어’를 개최하면서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중국에서도 5년 전부터 메이커 운동 붐이 일었고, 일본에선 로봇과 전자 분야에 특화된 메이커 운동이 각광받고 있다. 메이커 운동은 실업과 불황이 지속되는 현재의 경제 구조속에서, 지속가능 경제와 지속가능 교육의 대안으로써도 주목받는다. 대량 독점 생산과 경쟁에 매몰된 사회에서 벗어나 스스로 필요한 것을 만들고 소비하며 고쳐쓰는 스마트 자급자족를 열 수 있다는 것이다.

 

형용준 메이크위드 대표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형용준 메이크위드 대표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한국의 메이커 운동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상태다. 메이커 운동이라고 하면, 어느 나라 메이커냐고 묻거나, ‘나이키’같은 메이커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게 현실이다. 특히 풀뿌리에서 시작해 자생한 미국이나 중국과는 달리 민간 영역과 정부가 거의 동시에 뛰어들었다는 점도 특이점이다. 특히 정부는 지난해 말부터 예산을 투입해 메이커 운동의 인프라 조성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미국은 어릴 때부터 차고(garage)에서 장난감을 조립하고 고치고 부수고 다시 만드는 일이 흔해요.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구글도 모두 차고에서 시작됐잖아요. 차고 문화가 메이커 운동과 결합하면서 미국의 메이커 운동은 자연스레 확산된거죠. 디지털 도구를 저렴한 가격에 사용할 수 있는 메이커 스페이스, 즉 디지털 공방이 수만개에 이르고, 한달에 수십만원을 내고 그곳에서 자신만의 제품을 만드는 메이커들이 줄을 설 정도에요. 그런 토양이 만들어지면서 유망한 스타트업이 탄생했어요. 그런데 우리는 이런 문화가 아직 무르익지 않은 상태에서 메이커 스페이스만 갑자기 늘어나는 상황이에요. 메이커들이 활동할 수 있는 생태계가 함께 마련돼야죠.”

미국에서 누구나 저렴한 가격에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되자 수제 자동차 회사 로컬모터스(localmotors), 스마트워치 페블(pebble), 한국인이 만들어 6조원 가치까지 간 핏빗(fitbit) 등 제조업 스타트업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오늘의 DIY가 내일의 메이드 인 아메리카가 된다”며 공립 초등학교에까지 2000여개에 메이커 스페이스 설립을 지원하고 있다.

형 대표도 “메이커 운동이 4차 산업혁명의 풀뿌리 진원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크라우드 펀딩 업체인 킥스타터에서 쏟아지는 혁신 스마트 제품들은 대다수가 개인 메이커나 몇 명의 팀에 의해 창안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프로토타입 제품 한 개가 아이디어가 좋고 대중의 니즈를 충족시켜주는 혁신적인 물건이면, 한 달만에 200억까지 선구매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투자를 받아 제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일단 시제품을 만들면 그걸 보고 돈이 모이는 거죠.”

가장 큰 매력은 초등학생부터 일반 직장인, 경력단절 여성, 베이비부머까지 누구나 메이커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협력과 공유라는 메이커의 철학이 밑바탕에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품 설계도와 만드는 방법은 ‘구글링’만 하면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고, 자기가 만든 것을 플랫폼에 올리면 다른 사람이 의견을 보태는 집단지성의 힘으로 더 좋은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 메이커 커뮤니티가 형성되면서 디지털 기술에 대해 배우고 가르쳐주면서 쉽게 시제품을 제작할 수도 있다. 새로운 공동체가 형성되는 것이다. 취미로 시작한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는다면 투자를 받아 창업을 할 수도 있다. 특히 형 대표는 “이미 섬세하고 공감능력이 뛰어난 많은 여성들이 메이커로 활약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참여자간 아이디어 토론을 통해 창업의 해법을 찾는 참여형 교육인 디자인 씽킹 창업을 진행해보니 여성들이 만들어내는 시제품의 수준이 대학생들을 뛰어 넘더라”며 “생활 속 불편함에서 아이디어를 발견하고 새로운 도전을 하겠다는 열정과 섬세함, 공감능력을 가진 여성들에게 메이커 운동이 적합하다”고 말했다.

형 대표는 오는 9월 27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 1층 그랜드볼룸에서 열리는 ‘제2회 아태W 위기경영포럼’에서 메이커 운동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강연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디지털제조업의 생태계적 기반, 메이커 운동’을 주제로 현재의 경제 구조 속에서 지속가능한 경제, 지속가능한 교육의 대안이자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탐색할 방안으로 메이커운동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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