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량 따라 최대 11배

누진제 완화 요구 봇물

정치권도 요금개편 추진

산자부 “저소득층 위해 필요”

 

서울 시내 한 건물에 가득한 에어컨 실외기에서 더운 바람이 뿜어져 나오는 모습. 주택용 전기요금에만 적용되는 누진제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서울 시내 한 건물에 가득한 에어컨 실외기에서 더운 바람이 뿜어져 나오는 모습. 주택용 전기요금에만 적용되는 누진제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계속된 폭염에도 가정에선 전기요금 부담 때문에 에어컨 한 번 마음껏 켜기가 힘들다. 주택용 전기요금에만 적용되는 누진제 때문이다. 에어컨 보급 등이 일반화 된 상황에서 40년 넘게 유지되고 있는 전기요금 누진제 체계에 불만이 폭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전기요금 누진제 구간을 합리적으로 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행 주택용 전기요금은 많이 쓸수록 단가가 올라가는 6단계 구성된 누진제 요금이 적용된다. 1단계 구간에선 ㎾h당 60.7원이지만, 사용량 500㎾h를 초과하는 6단계로 가면 ㎾h당 709.5원에 달한다. 사용량에 따라 점점 요금이 늘어서 최대 11.7배까지 많아진다.

예를 들어, 평소 342㎾h를 사용하고 월 6만350원 가량의 전기요금을 내던 가구가 한 달간 여름철 하루에 3시간(162㎾h)씩 에어컨을 틀면 전기 사용량이 500㎾h를 넘는다. 전기요금으로는 월 13만9900원까지 치솟는다. 에어컨을 하루 6시간(324㎾h) 튼다면 누진제가 적용돼 월 27만590원(666㎾h)을 내야 한다.

이 때문에 일반 가정에서는 찜통더위에도 선뜻 에어컨 틀기를 망설이는 상황이 계속 이어진고 있다. 반면, 반면, 자영업자에게 적용되는 일반용(㎾h당 105.7원)과 산업계에 적용되는 산업용(㎾h당 81원) 요금은 누진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핵심 전력 경향’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전체 전력소비에서 산업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53.3%(2014년 기준)에 달했지만, 가정 부문의 비중은 12.9%에 불구하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산업용 전력소비 비중이 가정용의 4배 이상인 것이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일반적인 전력소비 행태와는 다른 모습이다. 전체 OECD 전력소비 경향을 보면 산업용 소비 비중이 32.0%, 가정용이 31.3%로 엇비슷했다. 더욱이 산업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1974년 48.8%에서 2014년 32.0%로 점점 줄어든 반면, 가정용과 상업 및 공공 부문을 합한 비중은 같은 기간 48.4%에서 62.9%로 증가했다. 이번 보고서에서 전력소비와 관련해 특정 국가가 언급된 것은 OECD 국가 중 한국이 유일하다.

 

연일 이어지는 폭염으로 인한 전기 사용량의 증가로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이 요구되고 있는 10일 서울 중구 주택가에서 한국전력 검침원이 전기 계량기를 검침하고 있다. ⓒ뉴시스
연일 이어지는 폭염으로 인한 전기 사용량의 증가로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이 요구되고 있는 10일 서울 중구 주택가에서 한국전력 검침원이 전기 계량기를 검침하고 있다. ⓒ뉴시스

현행 전기요금 누진제는 1974년 오일쇼크 때 만들어졌다. 부족한 전기를 아껴서 산업용으로 돌려 경제 발전에 기여하자는 취지였다. 저소득층이 전기를 적게 쓰고, 고소득층은 전기를 많이 쓴다는 인식 아래 누진제가 소득 재분배 효과도 클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폭염이 계속되고 에어컨 사용이 일반화되면서 40년 전 만든 요금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누진제를 통한 소득 재분배 효과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성진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과 박광수 선임 연구위원은 ‘주택용 전력수요의 계절별 가격탄력성 추정을 통한 누진 요금제 효과 검증 연구’ 논문에서 “가구당 평균 전력소비가 증가함에 따라 저소득층의 비용부담 경감 효과는 지속적으로 축소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현재와 같은 누진요금이 지속되는 경우 오히려 소득이 높은 1인 가구가 누진요금에 의한 비용혜택을 가장 많이 받는 계층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장애인 가구처럼 구조적으로 전력소비가 많을 수밖에 없는 가구는 복지할인요금이 적용된다고 하더라도 누진제로 인해 원가 이상의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논문은 누진 단계를 3단계 이하로 줄이고 누진율을 모두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누진요금을 적용하는 국가 대부분이 누진 단계는 3단계 내외이고, 누진배율도 2배 이내다. 누진 구간도 가구당 전력 사용량에 맞춰 조정하고 있다. 국내 누진 요금 체계는 6단계인데다, 누진율이 11.7배로 매우 과도한 측면이 있다는 뜻이다.

가정용에만 적용되는 전기요금 누진제에 대한 불만이 쏟아지면서 한국전력이 부과한 전기요금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한국전력공사를 상대로 한 ‘전기요금 부당이득 반환 청구’ 소송을 대리하는 법무법인 인강에는 최근 사람들이 몰리면서 3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소송 의사를 밝혔다.

누진제 완화에 대한 요구가 쏟아지면서 정치권에서도 전기요금 체계를 바꾸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더민주 우상호 원내대표는 9일 오전에 열린 더민주 원내대책회의에서 “가정용 전기에 적용되는 누진제, 이로 인한 산업용 전기요금과 가정용 전기요금의 불균형에 대해 국민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손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더민주 박주민 의원은 누진 단계를 3단계로 줄이고 배율도 2배까지 낮추는 내용의 ‘전기사업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국민의당도 누진제 구간을 4단계로 줄여 가계 부담을 완화하고, 대신 전기를 많이 쓰는 기업에 요금을 더 물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하지만 정부는 누진제 폐지가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이미 주택용 전기요금은 원가 이하이고 저소득층 배려를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다. 채희봉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자원실장은 9일 “주택용 전기요금 원가율은 95%수준으로 대부분의 가구가 원가 이하로 전기를 소비하고 있다”며 “전기요금 누진제를 개편할 경우, 전기소비량이 적은 가구의 부담만 늘리는 효과를 발생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채 실장은 주택용 전기요금을 더 받아서 산업용 전기요금을 낮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최근 10년 동안 산업용 전기요금이 76% 올라가는 동안 주택용 전기요금은 11% 오르는 수준에 그쳤다”고 반박했다.

한편, 전기요금이 얼마인지 궁금하다면 한국전력공사 홈페이지(cyber.kepco.co.kr)의 ‘조회·납부-요금계산·비교’ 메뉴로 접속하거나 네이버에서 ‘전기요금 계산기’를 검색하면 쉽게 전기요금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