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의 상처 온몸으로

겪은 내가 통합의 적임자“

 

정치 세탁하러 나선

세탁소집 둘째딸

정치 입문 21년만에

당 대표 도전 결실 거둘까

 

당대표 선거에 출마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아들들이 죄다 집을 나갔을 때 꿋꿋이 지키고 돌아오게 만든 인연이 있다”며 “나야말로 호남의 며느리”라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당대표 선거에 출마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아들들이 죄다 집을 나갔을 때 꿋꿋이 지키고 돌아오게 만든 인연이 있다”며 “나야말로 호남의 며느리”라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첫 지역구 여성 5선 의원인 추미애(58) 의원과의 인터뷰는 8월 27일 전당대회 이야기로 시작됐다. 1995년 고 김대중 대통령에게 발탁돼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한 그는 법복을 벗고 정치에 입문한지 21년을 맞은 올해 당권에 도전하면서 정치 인생의 획을 긋겠다며 단단히 벼르고 있다.

‘돼지 엄마’ 추미애 “내가 통합 적임자”

박영선 의원이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로 당선되면서 첫 여성 원내대표 타이틀을 달았지만 ‘당의 얼굴’인 당대표에 여성이 선출될 경우 의미가 남다르다. 현재 당권 경쟁에 공식적으로 뛰어든 인사는 추 의원과 송영길 의원 두 명이다. 문재인 전 대표와 가까운 추 의원은 당의 최대 계파인 친노·친문의 지지를 받을 것이 유력시돼 당대표에 성큼 다가섰다는 평을 듣고 있다.

추 의원은 자신이 대선 과정에서 뛸 때 두 번 모두 대선에서 승리했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김대중 대통령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잔다르크 유세단을 만들어 영남을 돌았고 그때 얻은 별명이 추다르크다. 또 당이 노무현 대통령 후보를 돕지 않을 때 국민참여운동본부를 결성해 ‘희망돼지 저금통’을 들고 전국을 누벼 ‘돼지 엄마’라는 별칭도 얻었다. 

그는 당대표 출마 선언 후 연일 여야를 맹공하고 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여권 대선 후보설에 대해선 “반 총장이 한국에 와서 다닌 곳은 충청도와 경북이니 결국 박 대통령의 친가와 외가 지역을 다닌 것이다. 박 대통령의 외삼촌인가”라고 꼬집었고, 김수민 의원 사건으로 지지율이 바닥에 떨어진 국민의당에 대해 “이 사건을 계기로 새 정치는 공염불이 될 것”이라고 각을 세웠다.

국회 의원회관에서 여성신문과 만난 추 의원은 “민주화의 성지 광주에서 출마를 선언한 것은 광주가 분열과 분당을 지켜본 곳이기 때문”이라며 “분열했을 때 패배했고, 힘을 합쳤을 땐 승리했다. 광주는 그 기억을 가진 우리의 심장부”라며 삼보일배 이야기를 꺼냈다. 추 의원은 2004년 4월 광주 말바우 시장에서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을 두 손바닥과 두 무릎으로 누르며 삼보일배를 했다. 당 대표 출마 선언 당시 고통이 극한에 다다른 순간 같이 눈물을 흘려주고 안타까워해주던 지지자들과 그를 정치의 세계로 이끈 고 김대중 대통령도 떠올랐다는 것이다.

“지지 세력의 분열이 개혁 과제를 이루는 데 힘을 빼는 일이라 절대로 분당은 안 된다는 마음으로 민주당에 남아 있을 때 김 대통령이 많이 불러 위로해주셨다. 통합하라고 당부하셨기 때문에 당대표 출마 선언 때 많이 생각나더라.” 그러면서 “당부의 말씀을 듣고도 아직 통합을 못했다는 게 안타깝다”고 했다.

-고 김대중 대통령은 당시 분당에 어떤 입장이었나.

“김 대통령은 분당한 양쪽을 모두 나무라는 입장이었다. 나가도 좋다, 나갈테면 나가라고 한 민주당의 완고한 세력에 대해선 나를 통해 나무라셨고, 그렇다고 나가서 지지 세력을 쪼갠 쪽도 ‘앞으로 어떻게 하려고 그러느냐’며 허심탄회하게 말씀하셨다. 입각 제의를 김 대통령께 상의를 하진 않았다. 당시 내 마음을 속으로 삭히고 있을 때인데 인내하고 공부 열심히 해서 돌아온 후 통합의 깃발을 높이 들라고 하셨다. 지지 세력을 모아 꼭 통합을 완수할 수 있는 힘을 축적하라고 한 기억이 생생하다.”

추 의원의 정치인생에서 고 노무현 대통령의 존재를 빼놓을 수 없다. 노 전 대통령 이야기를 하면서 그의 눈가가 빨개지더니 눈물이 맺혔다. 노 전 대통령이 “차기 대선 주자”로 평한 그는 ‘대통령 노무현’과 불화했다. 7년 전 노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해 황망히 생을 마감할 때까지도 개인적 사과를 하지 못했던 회한은 깊었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이 6월 12일 광주 동구 금남로공원 야외무대에서 톡 콘서트를 열고 “준비된 정당을 만들어 새로운 10년을 열겠다”며 당대표 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이 6월 12일 광주 동구 금남로공원 야외무대에서 톡 콘서트를 열고 “준비된 정당을 만들어 새로운 10년을 열겠다”며 당대표 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야권의 맏형 더민주가 가야 할 길

더민주 당권 주자들은 호남의 마음을 얻으려고 고군분투 중이다. 전남 고흥 출신인 송 의원은 ‘호남의 아들’을 자처하고 있고, 추 의원 역시 ‘호남의 며느리’론을 내세웠다. “더민주에서 말로만 광주를 호남의 심장부라고 할 게 아니다. 야권의 맏형으로 성찰해야 하고, 큰 그릇임을 보여드려야 한다. 통합을 치유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제가 감히 적임자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송 의원은 ‘호남 대표론’을 내세웠다. 호남 출신이 당권을 잡아 더민주에 등을 돌린 호남 민심을 되돌리고, 정권 교체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논리다.

“송 의원은 훌륭한 분이다. 다만 분열의 상처를 저보다 더 깊이 알고 있을까. 통합을 하려면 역지사지할줄 알아야 한다. 분열과 분당의 상처를 궁극적으로 치유하려면 역지사지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역지사지는 체험해보지 않으면 할 수 없다. 체험하지 않는 고통은 고통이 아니다.”

추 의원은 “나 역시 호남의 며느리다(남편 서성환 변호사가 정읍 출신). 아들들이 죄다 집을 나갔을 때 꿋꿋이 지키고 돌아오게 만들었다”며 “호남은 호남 출신을 바란다기보다 호남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고 깊은 상처를 어루만져줄 수 있는 당대표를 원한다”고 강조했다.

당대표는 내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당을 관장하는 역할을 맡는다. 추 의원은 “준비된 정당을 만들어 새로운 10년을 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구체적인 해법으로 통신강정을 제시했다. 분열을 치유하고 통합을 꾀하고(‘통’), 대선 후보를 흔들지 않고 신뢰 관계를 맺고(‘신’), 왜 정권교체를 해야 하는지 국민의 주목을 받고 대선 후보를 흔드는 세력으로부터 그를 확고하게 지켜낼 강단이 있으며(‘강’), 국민이 믿고 표를 줄 수 있도록 정책 비전을 가진 당대표(‘정’)가 되겠다는 것이다. 분열과 치유, 통합을 통해 준비된 정당을 이끄는 당대표가 되겠다는 다짐이다.

대권 주자들에 대한 그의 평가도 궁금했다. 그는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해 “역대급 후보 중 가장 결함 없는 후보”라고 극찬했다. “이명박의 BBK도, 박근혜의 정수장학회도 없다. 가장 흠결 없는 후보다. 언론에서 여러 차례 펀치를 맞고도 꿋꿋이 1위를 해내는 후보다. 기존 정치에서 볼 수 없는 순수성을 견지하고 있다. 정치판에 들어오면 쉰밥처럼 혼탁해지고 탁해지는데 그런 부분이 대단한 장점이다.”

안희정 충남도지사에 대해선 “깊이도 있고 도정을 통해 도민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래서 차기 대선 후보군에 언론이 안 지사를 포함시킨 것 아니냐”며 “우리 무대에 여러 명이 컬러풀하게 등장해 다양한 의견과 비전을 밝히면서 국민의 시선을 끌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 노무현 대통령 이야기를 하면서 추 의원의 눈가가 빨개지더니 눈물이 맺혔다. 노 전 대통령이 “차기 대선 주자”로 평한 그는 ‘대통령 노무현’과 불화했다. 7년 전 노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해 황망히 생을 마감할 때까지도 개인적 사과를 하지 못했던 회한은 깊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고 노무현 대통령 이야기를 하면서 추 의원의 눈가가 빨개지더니 눈물이 맺혔다. 노 전 대통령이 “차기 대선 주자”로 평한 그는 ‘대통령 노무현’과 불화했다. 7년 전 노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해 황망히 생을 마감할 때까지도 개인적 사과를 하지 못했던 회한은 깊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내년 대선에서 어떤 역량을 가진 지도자가 선택될까.

“20년 전처럼 구조조정이 시작된 것 같고 앞으로 거대한 소용돌이에 휘말릴 것으로 보인다. 경제가 어려우면 민생 불안이 닥친다. 저도 수년 전 중산층 붕괴를 예고하는 『중산층 빅뱅』을 썼다. 우리 국민이 대선 후보가 민생을 구할 수 있을지 그 어느 때보다 정밀하게 검증할 것이다.”

-더민주가 수권정당이 될 능력이 있나.

“4·13 총선 민의를 읽어야 한다. 총선에서 원석을 많이 캐내주셨다. 지역구 초선 당선자들이 그들이다. 대표적인 인물로 표창원, 박주민, 문미옥, 정춘숙, 이재정 의원을 꼽을 수 있다. 제가 20년 전 의정활동을 통해 두각을 나타내 대중에게 알려지면서 대선 후보의 힘이 돼드렸다. 더민주 초선 의원들을 보니 그때 생각이 떠오르더라. 이 원석을 보석으로 가꿔야 한다. 이들이 의정활동을 잘 해내서 국민께 인지도를 높이고, 그 힘이 대선 후보에게 자연스럽게 연결돼 ‘이 당에 정권을 맡길만하다’는 신뢰가 생겨야 한다.”

-대선을 앞두고 국민의당과 통합하게 될까.

“통합이라는 건 지지 세력의 통합이다. 당장 당의 통합을 이야긴하기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흩어졌을 땐 패배했고 힘을 합쳤을 땐 승리했다. 그런 경험 때문에 지지자들이 통합을 간절히 원한다. 더민주가 총선 때 호남에서 참패한 것도 국민의당을 선택했다기보다 국민의당이란 회초리를 들고 더민주에게 ‘야당, 똑바로 하라’ ‘이대로는 정권 못 잡는다’는 큰 깨우침을 준 것 아닌가. 호남 민심의 본질을 제대로 직시해야 한다. 정치 지도자는 민심을 외면할 수 없다. 국민의 요구에 순응해야 한다. 외면하는 순간 다 자빠진다.”

정치에 법의 양심 심겠다

추 의원은 대구에서 세탁소집 둘째 딸로 태어나 판사 출신의 최초 여성 국회의원이 됐다. 어린 시절 세탁소에 도둑이 들어 세탁물을 몽땅 잃어버려 신용을 중시하던 부모님이 손님들의 옷값을 전부 배상해주면서 가난의 나락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언니가 갑자기 눈병을 얻어 치료를 해야 했고 막내 남동생까지 태어났다. 버거워진 살림 탓에 부모님은 세 살 배기인 그를 외가집으로 보냈는데 부모님과 떨어져 살면서도 기가 죽거나 주눅이 들었던 기억은 없었다고 한다.

“학창시절을 돌이켜 보면 선생님에 대한 좋은 추억도 있는 반면 기성회비를 내지 못한다며 수업을 못 받게 하는 등 납득할 수 없는 행동을 한 선생님 탓에 어린 마음에 상처가 된 아픈 기억도 있다. 한 번은 촌지를 유난히 밝히는 선생님을 ‘와이로쟁이’라며 흉을 본 제 친구가 사정없이 따귀를 맞은 적이 있다. 그때 나라도 선생님이 잘못했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싶어 책가방을 챙겨 바로 교실을 나왔다. 1등을 하던 모범생의 행동에 모두들 놀랐다. 부조리한 세상의 일면에 대항하기만 했지, 변화시킬 수는 없었던 어린 학생이었지만 다짐했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부정부패에 맞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을 소명으로 삼겠다고.”

법대로 진학한 것도 그런 다짐이 이어진 결과였다. 법대 장학생이 된 그는 ‘나의 공부는 사유물이 아니다. 사회에 보탬이 돼야 하며 사회를 위해 쓰여야 한다’는 믿음을 품었다. 이후 판사로 일한 그가 고 김대중 대통령의 권유로 정치에 입문한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호남 사람인 제가 대구 며느리를 얻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정치에 법의 양심을 심어보겠습니다.” 그는 당시 야당 총재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같은 대화를 나눴다고 회상했다.

김 전 대통령 부부를 2시간 동안 만난 후 법의 이면에 버티고 선 정치에 도전할 용기를 냈고 야당 출신 여성 부대변인 1호가 됐다. 15대 총선 때 서울 광진구에 출마해 당선된 그는 16대 총선에서 재선했지만 17대 때는 낙선한다. 그는 “온갖 번뇌 속에서 스스로를 부정하며 보낸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추 의원은 17대를 제외하곤 이 지역구에서만 내리 5선을 했다. 그의 새로운 도전이 성공할지 주목된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여성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여성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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