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12시간 보육료 지원기준은 해외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어린이집 원장들, 수입 줄어 경영난 심화와 근무환경 악화돼 보육의 질 떨어져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가 13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맞춤형보육 제도개선 및 시행연기 촉구 2차 결의대회’를 열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가 13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맞춤형보육 제도개선 및 시행연기 촉구 2차 결의대회’를 열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7월 맞춤형보육 전면시행을 앞두고 정부와 어린이집 관계자들의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맞춤형보육제도란 전업주부의 0~2세 영아의 어린이집 보육시간을 6시간(맞춤반 오전 9시~오후 3시)으로 제한하는 정책이다. 12시간 종일반 보육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대상이 맞벌이 가정을 비롯해 구직 중이거나 임신 중, 다자녀(3명 이상), 조손·한부모, 가족 중 질병·장애가 있는 경우, 저소득층으로 한정된다. 정부는 맞춤반 보육료를 종일반의 80%로 책정했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맞춤형보육 시행에 맞춰 어린이집에 지원하는 총보육료 예산을 6% 인상해 지난해보다 오히려 1083억원이 늘었다고 밝혔다. 또 보육교사 처우 개선을 위한 예산도 지난해보다 720억 늘어나 임금이 삭감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와 함께 0∼2세 영아 모두가 어린이집에서 12시간 보육을 받는 보육료 지원기준은 해외사례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고 설명한다.

정부의 강경책에 다수의 어린이집 관계자들은 맞춤형보육제도를 개선하거나, 시행을 연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맞춤형보육제도가 시행되면 수입이 줄어들어 경영난이 심화되고 보육 교사들의 근무환경도 악화돼 보육의 질이 떨어진다고 주장한다. 정부 발표대로 예산이 늘었다면 어린이집 종사자들이 환영해야 할 상황인데 왜 반대하겠냐며 반박한다. 맞춤반 아이들 비중이 큰 가정 어린이집 등 소규모 민간 시설의 폐업이 속출해 보육시설 종사자는 물론 부모와 아이에게 피해가 발생한다고 보고있다. 예산이 늘어나더라도 균등하게 쓰여지기 힘들다고 보는 것이다. 또 영아보육의 특성과 현재의 어린이집 운영 체계를 존중하지 않은 채 지금 당장 강행해서는 혼란과 문제를 피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서울 노원구에서 가정형 월계키즈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이경희 원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서울 노원구에서 가정형 월계키즈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이경희 원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서울 노원구에서 17년째 어린이집을 운영해온 월계키즈어린이집 이경희 원장은 “맞춤형보육제도가 시행되면 내년에 문을 닫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월계키즈의 경우 가정어린이집 형태로 운영하고 있으며 20명 정원에 11명이 다니고 있다. 이들 중 3명만 종일반이고 8명은 맞춤형이다.

이 원장은 “작년부터 양육수당이 지급되면서 어린이집 원아 수가 절반 가까이 줄어 교사 3명 과 조리사 1명 급여를 주면 원장 인건비가 남지 않는 상황”이라며 “이제 맞춤형보육까지 시행돼 종일반 아이들이 더 줄어들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며 “당장 어린이집의 폐업도 문제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보육철학이 결여된 정책 때문에 영유아교육 수준이 퇴보한다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그는 “맞춤반 아이들이 3시에 집에 가면 교사들도 3시에 퇴근하라는 식의 정책에는 교사들이 수업 준비를 하는 시간이 고려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어린이집이 과거의 탁아소나 놀이방처럼 교육이 후퇴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경기도 고양시에서 동심어린이집을 운영하는 한연현 원장은 부모와의 애착관계 형성을 위해 어린이집 보육 시간을 줄인다는 정부의 설명에 대해 반박했다. “교사와의 애착에 대해서는 고려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 원장은 맞춤반 아이들이 오후 3시에 하원해서 담당 교사들도 그에 맞춰 퇴근할 경우, 남아있는 그 반의 영아들은 다른 교사가 맡아야 하는데 아기들이 엄마처럼 따르던 교사가 자꾸 바뀌는 것이 애착 형성과 정서발달에 나쁜 영향을 준다고 설명했다. 또 중간중간 엄마들이 와서 데려가면 남겨진 영아들은 불안감과 소외감을 느낀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된다고 덧붙였다.

또 그는 “아이를 맡기는 전업주부들도 아르바이트나 구직활동, 공부 등 각자 사정이 있는데 당장 일괄적으로 아이를 3시에 데리고 가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아이를 맡겨야 하는 상황이 된다. 정서적 안정이 중요한 시기에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면서 정서적으로 불안감과 상처를 갖게 된다”고 지적했다.

어린이집 운영 계획과 관련해서는 “제도가 시행되면 영아반 유지가 절대 불가능해져 없앨까 생각하고도 있다. 나는 더 큰 손해 피하기 위해 없앤다지만, 그렇게 되면 부모들은 아이를 어떡해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천안의 한 지역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다는 원장은 맞춤형보육 제도가 영아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정책이라며 일단은 교사를 줄이지 않고 버티겠다고 말했다. 교사가 담당하는 아이가 한명이라도 종일반일 경우 그 아이를 다른 교사에게 맡기고 퇴근하는 방식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영아가 8개월부터 낯가림을 하는데 교사를 엄마라고 부르면서 잠시만 못 봐도 불안해하기 때문에 무턱대고 교사를 바꾸고 혼합반을 운영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한편 정부가 제도를 개선하거나 시행을 연기하지 않을 경우 민간어린이집연합회는 6월 2324일,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는 7월 4~6일 집단 휴원을 한다고 예고했으며, 이에 정부는 집단 휴원 강행 시 엄중대처하겠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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