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활동 등 실태조사 미미
남한과 북한 가족 생계 떠맡아
유흥업소·성매매 쉽게 노출
“성인지적 시각, 맞춤형 지원 시급”
# 탈북여성인 김모(42)씨는 탈북을 도와준 브로커에게 줄 돈을 벌기 위해 노래방 도우미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자격증을 따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외래어가 너무 많아서 공부하기가 힘들었다”는 김씨는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던 중 지인의 소개로 노래방 도우미를 알게 됐다. 브로커에게 남은 비용 280여 만원을 다 갚으면 본격적으로 북에 두고 온 가족들의 탈북자금을 모을 계획이다.
# 음식점 종업원으로 일하는 탈북여성 이모(54)씨는 입국 10년 차다. 북한에 엄마와 언니를 두고 중국으로 건너간 그는 강제 북송을 피하려고 어쩔 수 없이 중국 남성과 결혼했고, 남한에서는 탈북남성과 결혼했다. 북한과 남한의 가족을 모두 돌봐야 하는 이씨는 “북에 있는 가족에게 1년에 1000만원씩 보내고 있어 힘들다”며 “탈북여성들은 나처럼 가족관계가 복잡한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북한이탈주민 여성 입국자(이하 탈북여성) 대부분은 남한 사회 진입과 적응 과정에서 경제적, 사회적, 심리적 어려움을 겪지만 정부 차원의 실태조사와 연구는 미미한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탈북여성 지원정책 수립에 있어 성인지적 시각을 고려해 맞춤형 지원을 시행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북한이탈주민 입국자는 2015년 12월 현재 2만8795명으로 지난해 입국한 탈북자의 경우 남성 251명, 여성 1025명으로 여성 비율이 80%에 달한다. 대부분 중국을 거쳐 남한으로 입국하는 여성들은 탈북 과정에서 중국인이나 조선족과의 매매혼을 비롯해 성폭력, 성매매 등 남성들보다 훨씬 많은 폭력에 노출된다.
목숨을 건 탈북과정을 견딘 여성들은 남한사회에서 또 한 번의 고통을 겪는다. 남성들과 똑같이 겪는 정착과정에서의 공통적인 어려움 외에 임신과 출산, 육아 등 여성만의 특수한 상황이 발생하면서 이중, 삼중의 어려움을 껴안게 되는 것이다. 가정폭력과 성폭행 피해를 보거나 홀로 자녀를 키우는 한부모 가정도 많아 남성과 다른 여성들만의 정책지원이 필요한 실정이다.
통일부를 비롯해 여성가족부, 보건복지부, 노동부 등 여러 부처는 북한이탈주민 정착을 위해 다양한 지원정책을 전개하고 있다. 초기정착과 취약계층 생활안정지원, 취업·고용촉진, 심리치료와 상담 등이 그것이다. 탈북여성을 위한 정책으로는 여성쉼터 운영, 의류 리폼과 바리스타 등 탈북여성 맞춤형 일자리 제공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탈북여성의 경제생활 실태는 취약하다. 노래방 도우미, 티켓다방 등 유흥업소에서 일하거나 성매매로 돈을 버는 사례가 속출해 사회적인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탈북여성 대부분은 북한 친구 등 이웃의 소개, 전단, 직업알선기관 등에서 일자리 정보를 얻고 공공기관 소개는 10% 미만이다.
앞으로 탈북여성의 숫자가 더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성인지적 시각에서 탈북여성 지원 정책을 다시 디자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책 마련은 더디기만 하다.
여성가족부 권익지원과 관계자는 “탈북여성 통계는 따로 없다”며 “통일부 산하 남북하나재단에서 매년 북한이탈주민 통계를 내고 있다. 그쪽으로 문의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산부인과 연계 치료 등은 통일부 쪽에서 의료지원이 있는 거로 알고 있다”며 “여성가족부는 여성들만이 겪는 상담이나 심리 쪽으로 초점을 맞춰 지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통일부 통일정책실 정착지원과 관계자는 “여성 담당 부서는 따로 없다”며 “그분(여성)들이 소수가 아니라서 전체적으로 탈북자를 위한 정책으로 보면 될 거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2년마다 시행하는 탈북자 실태조사는 남북하나재단이 담당하고 있어서 거기서 자료를 얻을 수 있다”며 “탈북여성을 위한 정책은 여성 쉼터 정도로만 논의되고 있다”고 답변했다.
최규빈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탈북자 정책은 애초에 기획될 때 젠더 관점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고 전체적인 측면에서 만들어졌다”며 “탈북자에 대한 정책이 좀 더 맞춤화되지 못하고 장기적인 관점이 부족해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도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했다.
최 선임연구원은 “탈북자들의 취업 형태를 보면 정규직 혹은 계약직, 일용직을 제외한 비경제 인구가 굉장히 많다. 2015년 기준 69.9%가 비경제 활동 인구”라며 “탈북자들이 남한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취업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이 부분에서 충분히 지원받지 못한다고 생각된다면 다른 부분이 다 어려워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영수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탈북여성들을 위한 정책부서도 없고, 여성 인력을 사후에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정책도 없다”며 “여성 위주로 사후관리가 안 되니 대부분 노래방이나 유흥업소로 빠진다. 그건 각자의 삶인데 왜 정부가 관여하냐 하는 방생식으로 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탈북여성들이 일할 곳도 없지만 정식으로 직장에 가면 최저 생계비를 박탈당하니까 최저생계비 수급 대상으로 남아서 알바를 뛰는 것”이라며 “아이 둘 가진 엄마는 최저 생계비로 120만원 정도를 받는다. 그러나 취직하면 40~50만원으로 떨어지면서 4대 보험도 안 된다. 법의 허점이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여성가족부는 굉장히 사치스러운 정책을 하는 것”이라며 “심리치료에 초점을 맞췄다고 말하는 자체가 적극적으로 끼어들지 않겠다는 얘기”라고 꼬집었다. “환경이 안 좋은 사람에게 마음을 치료해봤자 한계가 있다. 여성을 위한 생애 맞춤 주기형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