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해군 재직 시절의 수전 안 커디(한국명 안수산) ⓒ여성신문DB
미 해군 재직 시절의 수전 안 커디(한국명 안수산) ⓒ여성신문DB

도산 안창호 선생의 장녀인 고 수전 안 커디(한국명 안수산) 여사가 타임지가 선정한 ‘이름 없는 여성 영웅(Unsung Women)’으로 뽑혔다.

1915년 로스앤젤레스(LA)에서 태어난 안수산 여사는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미 해군에 입대했다. 해군 역사상 첫 여성장교로 복무하기도 했다. 타임지는 그가 “신뢰할 수 있는 용감한 장교이자, 늘 인종차별을 겪었음에도 미국을 위해 봉사한 아시아계 미국인의 한 세대를 대표한” 인물이었다고 평가했다. 

당시 미국 사회에서 ‘비백인’, 특히 아시아계 이주민은 사회적 차별 탓에 변변한 일자리조차 얻기 힘든 시절이었다. 안 여사 역시 처음 해군에 입대했을 땐 아시아계 미국인이라는 이유로 탈락하기도 했다. 

그래도 재도전한 까닭은, 미국이 일본에 승리해 한국이 독립국가가 되기를 염원했기 때문이었다. 타임지는 안 여사가 어린 시절부터 한인 이민 1세대의 독립운동을 지켜봤고, “미국인으로서의 애국심과 함께 (아버지 안창호 선생 등 독립운동에 헌신한 가족들의 영향으로) 강한 반일 정서를 지니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입대한 안 여사는 여성 최초로 포격술 장교 자리에 올랐다. ‘키 작은 아시아 여성’이라는 편견에 늘 부딪혀야 했다. 자신이 아시아계 여성이라는 이유로 명령을 듣지 않던 백인 파일럿 부하를 훈육한 에피소드를 자서전에 남기기도 했다. 인종차별 탓에 6개월 동안 암호해독 업무에서 배제되기도 했으나, 결국 능력을 인정받아 암호해독가로 활약했다. 

1945년 종전 후에는 해군을 퇴직하고 국가안보국(NSA) 비밀정보 분석 요원으로 변신했다. 300명 이상의 요원을 거느린 씽크탱크를 진두지휘하기도 했다.

1947년 안 여사는 해군 정보장교로 재직할 때 사귄 아일랜드계 미국인 프랜시스 커디와 결혼했다. 어머니가 반대했고, 당시 거주지인 버지니아 주에는 ‘인종 간 결혼 금지법(anti-miscegenation laws)'이 있었음에도 그는 꿋꿋했다. 

타임지는 은퇴 후 한인사회를 위해 헌신한 모습도 높게 샀다.

앞서 2006년 안 여사는 한국인 최초로 미국 아시안 아메리칸 저스티스 센터에서 주는 ‘제10회 미국 용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6월25일 100세 일기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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