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동수 내각으로
‘성평등 아이콘’ 부상
경제 발전 하드웨어 아닌
인권 감수성에 기반한
‘소수자 배려’ ‘함께 살기’
전 세계의 뜨거운
쥐스탱 트뤼도 열풍
2012년 7월, 몽 트헝블렁 야영장. 이곳은 퀘벡주 몬트리올에서 북쪽으로 3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국립공원이다. 쥐스탱 트뤼도 하원의원이 아내 소피 그레그와르 트뤼도와 친구들, 그리고 소수의 핵심 참모와 함께 이곳에 도착했다.
4년 전 시작한 그의 정치인생에서 또 다른 중요한 결정을 하기 위해서다. 트뤼도는 ‘몽 트헝블렁’ 모임에서 그의 인생 반려자, 그리고 정치 동지들과 ‘Why are you here?’라는 화두를 잡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참석자들이 돌아가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트뤼도 순서가 왔다.
“나는 하퍼의 캐나다보다 더 살기 좋은 캐나다를 믿고 있다. 그것이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라고 답했다. 2008년 퀘벡주 몬트리올의 파피노에서 하원의원으로 당선되고 2011년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한, 아직은 정치 신인인 트뤼도가 전국 정치인으로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이다. 트뤼도 하원의원은 자유당 대표 경선에 출마해 2013년 자유당 대표로 선출된다. 그리고 2015년 42대 캐나다 총선에서 39석에 불과했던 3당 자유당을 184석의 집권당으로 만들며 23대 캐나다 총리가 된다.
트뤼도는 그의 아버지 피에르 트뤼도 전 캐나다 총리 장남의 후광을 부정하지 않는다. 트뤼도 전 총리는 16년(1968년~1979년, 1980년~1984년)을 총리로 재임하며 미국의 속국이라는 캐나다 이미지를 탈피해 독립국가로서 캐나다를 세운 정치인이다. 1971년생인 트뤼도가 태어나 자란 곳도 오타와에 위치한 총리 관저인 리도 홀이었다. 그러나 이것만 갖고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트뤼도 열풍(Trudeaumania)을 해석하기는 뭔가 부족하다. 트뤼도가 갖고 있는 정치적 자산은 무엇일까.
트뤼도는 자신의 삶을 “교사-아버지-변호사-리더십”으로 구분한다. 아이들을 좋아해 교사의 길을 선택했다. 몬트리올에서 대부분 청년 시절을 보냈지만 밴쿠버의 한 학교에서 프랑스와 수학을 가르쳤다. 2003년 다시 몬트리올로 돌아가 그의 삶과 정치 동반자인 소피를 자선 행사장 공동 사회자의 인연으로 만난다. 주관이 뚜렷한 그녀와의 만남은 그의 인생에서 또 다른 큰 전환점이 되었다.
결혼 후 3명의 아이 아버지로서 삶을 산다. 그러나 인권과 환경에 대한 그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시민운동으로 트뤼도를 이끌었고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마침내 트뤼도는 2008년 정치에 입문, 그의 꿈을 하나 하나 실현하고 있다.
남녀동수 내각으로 주목 받은 트뤼도의 정치 이념은 이전 보수당 하퍼 정부와 명확하게 구별된다. 부자 증세 등 경제 정책 변화도 주목 받았다. 그러나 시민으로부터 가장 환호를 받은 것은 난민과 이민자, 그리고 원주민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변환이다. 대부분 지구촌 국가들이 IS 테러 위협에 움츠리며 시리아 난민 수용을 두려워할 때 트뤼도는 선거 공약으로 2만5000명의 난민 수용정책을 발표한다. 당선 이후에는 수용 인원을 5만 명으로 확대했다(이 정책은 캐나다 10개 주의 전폭 지지를 받았다. 그리고 난민자 중 절반은 시민 단체에서 제공하는 주택을 제공받는다).
이민자에 대해 적대적이었던 하퍼의 보수당 정부에 반해 “다양성을 생명으로 하는 캐나다에서 이민자들은 사회 발전의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백인 이주 전, 캐나다에 살고 있었던 원주민에 대한 인권 탄압에 대해 사과하고 지원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특히 원주민 아동 기숙학교 인권탄압을 조사한 ‘진실화해위원회’ 결과를 전폭 수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뤼도 열풍의 핵심은 경제 발전과 같은 하드웨어가 아닌 인권 감수성에 기반한 ‘소수자 배려’와 ‘함께 살기’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트뤼도를 판단할 때 빠져서는 안될 사람, 바로 그의 평생 반려자인 소피 그레그와르 트뤼도(40)다. 언론인 라첼 기에서는 소피와 가진 인터뷰 기사를 ‘샤테라네’(CHATELAINE) 4월호에 올렸다. 인터뷰 장소인 식당에서 기다리던 라첼은 너무나 평범한 식당 분위기에 ‘이것은 수상 내조자로서 일종의 코스프레’라고 짐작한다. 늦게 도착한 소피는 라첼에게 사과하며 2살 막내 하드리엔을 낮잠 재우느라 늦었다고 말한다.
소피는 모유수유의 즐거움과 어려움을 격의없이 이야기했다. 라첼은 캐나다 수상 부인과의 첫 인터뷰 출발이 모유수유에 대한 것이었다고 글에 적고 있다. 라첼은 ‘트뤼도 열풍을 위한 전략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졌다. 소피는 ‘현실은 결코 전략이 될 수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현실’(Being real is not a strategy. The way we are in the world is real)이라고 답한다. 몬트리올에서 증권 브로커를 하던 아버지와 간호사인 어머니의 무남 독녀로 태어난 소피는 청소년기에 식욕이상 항진증(폭식을 하고 토하는 것을 반복하는 증상)을 겪기도 한다. 대학 졸업 후 언론인, 그리고 여성 건강과 교육단체 대변인으로 일하면서 ‘어떤 세상을 우리가 만들지’ 고민한다.
막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 에서 ‘신념 윤리와 책임 윤리의 조화와 균형’을 강조한다. 개인 신념과 정치인이 져야 할 책임의 조화다. 트뤼도는 이것을 잘 조화해 ‘진짜 변화(Real Change)’를 화두로 내세워 총선에서 승리했다. 트뤼도 정부의 투명과 친화(transparency & accessibility) 정책, 그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다양성에 대한 믿음’, 그리고 소피와의 깊은 교감이 트뤼도 열풍을 불러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