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총선 젠더 논란 ④] ‘여성혐오’엔 섬세하지 못한 정당들

정의당-중식이밴드 협약으로 점화된 여성혐오 논란

“한국 진보 정당, 여성주의 치열하게 성찰할 때”

정의당과 ‘중식이 밴드’의 총선 테마송 협약 이후 불거진 여성혐오 논란은 20대 총선에서 가장 뜨거웠던 젠더 논란 중 하나였다. 

정의당은 지난달 29일 인디 밴드인 중식이 밴드와 손잡고 총선 테마송을 발표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정의당이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는 청년의 정당임을 보다 분명하게 알릴 수 있어 기쁘다”고 밝혔다. 

그러나 중식이 밴드는 일부 자작곡 속 여성혐오적 가사로 인해 논란에 휩싸인 상태였다. 고달픈 남성 청년의 삶을 노래하면서, 여성을 단순히 “아기를 갖고 싶어 하는” 철부지(아기를 낳고 싶다니)로 묘사하거나, “빚까지 내서 성형”하거나 “빚 갚으러 몸 파는 소녀들”(Sunday Seoul), “말이 통하게 명품을 줘도 쉬운 여자 아니라 말”하는 ‘된장녀’(좀 더 서쪽으로)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리벤지 포르노(헤어진 여자친구에게 복수하기 위해 온라인에 불법적으로 유포한 성관계 사진·영상)’를 다룬 노래(야동을 보다가)도 논란이 됐다. “정의당이 여성을 소외시키는 노래를 만드는 밴드를 ‘청년의 목소리’로 소개하고 유세에 동원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여성신문의 보도로 이 문제가 공론화되면서 정의당을 향한 비판도 거세졌다.(▶[단독] “여성혐오 밴드가 ‘청년의 목소리’?” 정의당 공식 테마송 논란)  지난 1일 중식이 밴드의 리더이자 해당 노래의 작사가인 정중식 씨가 자신의 블로그에 해명 글을 올리며 논란은 더 커졌다. 정의당 여성위원회는 다음날 공식 입장을 내고 중식이 밴드의 자작곡 일부가 “성차별적”임을 인정했다. 또 “놓친 문제에 대해서는 비판을 수용하고, 비판을 토대로 더욱 성평등한 감수성, 소수자의 감수성을 높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며 당 차원의 책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협약 내용을 사전에 인지하지도 못한 여성위의 해명으론 논란을 잠재울 수 없었다. 중앙당이 침묵하는 동안 정의당 내부에선 격한 논쟁이 이어졌다. 일부 당원들은 이번 논란을 사소한 문제로 치부하면서 여성위와 페미니즘, 여성 일반을 향해 적대적 발언을 쏟아냈다. “정의당은 페미니즘 정당이 아니다”라는 주장마저 나왔다. 정의당 강령은 ‘성평등한 사회’를 명시하고 있다. 

이에 노동당과 녹색당 여성위원회는 5일 “한국사회 진보정당들의 치열한 여성주의적 성찰을 촉구한다”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정의당의 침묵을 비판하며 “정의당이 이번 일을 시작점 삼아, 한국사회 내 만연한 여성혐오에 대해 성찰하기를 바란다. 중앙당 차원의 책임 있는 사과와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정의당 ‘중식이 밴드’ 협약 논란] “한국 진보정당들, 여성주의 성찰하길”)

정의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는 7일 이번 사태에 대한 사과문을 발표(바로가기)했다. 선대위는 “당의 총선광고가 성인지적 관점에 대한 예기치 않은 우려와 논란을 불러 온 데 대해, 당원, 지지자, 유권자 여러분께 정중하게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선대위는 “중식이 밴드가 청년세대의 현실을 노래하는 대표적 인디밴드라는 보편적 평판과 광고에 활용된 동 밴드의 노래(‘여기 사람있어요’)가 청년의 현실을 호소력 있게 표현하고 있다는 판단”으로 협약을 맺었고, 이를 통해 “청년 문제를 해결하려는 당의 의지를 강조하고자 했다”고 해명했다.

또 “앞으로 정의당은 일상의 성인지 감수성을 강화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며 “인간의 평등과 성평등은 서로 대립하거나 선후 문제가 아니기에 정의당은 여성인권을 옹호하는 것은 모든 인간 공동체가 함께 사는 길이라 믿는다”고 밝혔다. 

이번 논란으로 한국 진보 정당들이 성평등 가치와 소수자 인권을 존중하고 대표하기 위해 진정 노력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페미니즘이 중요한 정치적 화두로 떠오른 시기에, 진보 정당의 적극적인 자기반성과 전략 재정립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정의당 여성 당원 A씨는 “당내 갈등을 지켜보면서 ‘총선이 코앞인데 겨우 여성혐오를 문제 삼느냐’는 시각이 많이 눈에 띄었다”고 말했다. 그는 “진보적 가치를 표방한다는 정당이 여성혐오 논란에 제대로 대처하지 않고, 긴 시간 침묵으로 일관했다. 유권자들이 정당의 정체성과 가능성을 의심하고 비난을 할 만했다”며 “정의당이 늦게나마 사과하고 수습에 나서서 다행이지만, 앞으로의 행보를 유심히 지켜볼 것”이라고 덧붙였다.

“페미니스트 비전을 품으라”는 제언도 나왔다. 이진옥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는 여성신문 기고를 통해 “여성혐오 정당으로 낙인찍”거나 “페미니스트 정당으로 거듭나라는 급진적 요청”이 아닌, “다양성의 존중과 모두를 위한 인권 보장을 위해 점진적으로 개선의 노력을 해나가는 ‘태도’를 갖출 것”을 정의당에 촉구했다. 

이 대표는 “페미니즘은 2016년 현재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정치적 화두가 되었다”며 “정의당은 더 많은 여성들에게 매력적인 정당으로 다가가고 싶지 않은가? 페미니스트 비전을 품을 때에만 정의당의 추구하는 가치들이 더욱 온전하게 성취될 수 있을 것”이라고 썼다. 

또 “정의당 내 발군의 페미니스트들을 이제라도 선거운동 전략팀의 핵심에 배치하라. 그보다 더 나아가서 정의당이 페미니스트 정당이 되고 싶다면, 대표자와 당직자의 모든 수준에서 남녀동수를 솔선하라. 20대 총선 이후 정의당의 미래는 페미니스트 비전에서 출발한다”고 강조했다. (▶ 정의당, 미래를 점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페미니스트 비전을 품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