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호미 삼아 돌산을 농원으로 일궜다.
사람 살리고 지역 일으킨 매실
매실이 익는 초여름이 되면 집집마다 매실청을 담고 매실액을 만들어먹는다. 청매실농원 중심에 있는 2500개 장독에서도 매실 농축액부터 장아찌, 절임, 된장, 고추장이 익어가고 있다. 홍씨는 매년 실한 매실들을 골라 하나하나 꼭지를 따서 설탕과 함께 켜켜이 담아서 시간에게 맡긴다. 그는 수십 년째 농약 대신 유기농법을 고집하고 있다. 그는 몸소 매실의 효능을 경험하면서 매실에 대한 확신이 깊어졌다. 30대 중반에 찾아온 류머티스 관절염을 매실액으로 이겨냈기 때문이다.
“손가락이 굽어지지 않아 밥을 떠먹을 수도 없고, 혼자선 머리를 못 감을 정도로 통증이 심했지. 대형병원에서 약도 지어 먹었지만 효과는 없었다. 그러다가 한의원의 소개로 반신반의로 매실 발효액을 먹기 시작했는데 2년 반 만에 류머티스 관절염이 싹 나았어.”
그는 큰 병을 겪으면서 “흙이 밥인 줄 알았고, 산천초목이 반찬인 줄 알았고 산에 흐르는 물이 숭늉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가 농약 대신 유기농법을 고집하는 것도 이러한 지론때문이다. 그는 그때부터 매실을 더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실제로 음식에 매실을 넣으면 식중독이나 배탈을 예방한다. 장 안에 나쁜 균의 번식을 억제해 장의 염증을 막고 소화도 돕는다.
홍씨는 “매실을 약으로만 사용할 게 아니라, 어떻게든 밥상에 올려야겠다”는 생각에 매실장아찌부터 매실고추장, 매실된장, 매실절임, 매실젤리, 매실초콜릿까지 30종이 넘는 매실식품을 개발했다. 그 이후 매실로는 최초로 ‘전통식품 지정’을 받았고 제조법 특허도 냈다.
사람을 살린 매실은 지역 경제도 일으켰다. 청매실농원은 연 평균 4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2008년엔 100만불 수출의 탑을 수상했다. 매실 농사는 매실산업특구로 지정된 광양을 중심으로 강 건너 하동과 구례까지 파급됐다. 특히 광양 지역은 3300여 농가에서 연간 1만1000여톤의 매실을 생산하고 있다. 이 뿐만 아니다. 1995년 홍씨가 처음 시작한 광양매화축제는 이제는 한 해 120만명이 방문하는 대표적인 봄 축제로 성장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그는 일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아들이 못나가게 말려도 “일 못하면 내가 죽는다”며 어김없이 밭으로 향한다. “출근, 퇴근도 정년퇴직도 새벽도 밤중도 없는 이런 직장이 어딨어. 이 나이에 어디서 이렇게 일할 수 있겠어. 너무 행복하지.” 그는 “흙을 만지며 내가 쏟아내는 보석 같은 땀으로 도시민의 밥상을 약상으로 만들겠다”며 “머리에 서리꽃이 피든 얼굴에 주름이 지든 일할 수 있는 힘만 있다면 흙에서 살고 싶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