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것은 과거를 망각하지 않고 기억하기 때문이 아닐까? 기억을 통해 인간은 과거 사건의 의미를 현재화한다. 단순 기억의 재생이 아니라 현 시점에서 과거를 되풀이 하지 않을 더 나은 방안을 묻고 찾아가는 능력에 진정한 인간다움이 있다고 생각한다.
박근혜 정부 3년 동안 여성노동자의 현실을 알려면 우리는 세 가지의 사건과 죽음을 기억해야 한다. 첫 번째는 ‘송파 세모녀’ 사건이다. 2014년 2월 지하 셋방에서 살던 세 모녀는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이들은 질병을 앓고 있고 수입도 없는 상태였는데 왜 이들이 일을 할 수 없었는지 기억해보자. 엄마는 식당에서 일하다 다쳤지만 산재보험이나 살업수당을 받지 못했다. 둘째딸은 아르바이트로 전전하며 일자리다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장애를 앓고 있는 언니의 치료비를 더는 감당할 수 없었다. 엄마와 동생 모두 일을 했지만 생활임금, 4대 사회보험 적용과는 거리가 먼 일자리였던 것이다.
다음은 2014년 10월 중소기업중앙회 계약직으로 일하던 25세 여성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이다. 유서에 따르면 성희롱을 당하면서도 정규직화시켜주겠다는 약속을 믿고 2년을 기다렸는데 입사 2년을 이틀 앞두고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 무려 7차례의 ‘쪼개기 계약’에 시달려온 이 여성노동자는 “노력하면 다 될거라 생각해 최선을 다했다. 아주 24개월 꽉 채워지고 버려졌다”는 유서를 남겼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2015년 12월 29세 언어재활사로 일하던 한 여성노동자의 고독사 사건이다. 43만원의 고시원 월세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이 여성노동자는 15일 만에 주검이 발견되어 충격을 주었다.
이렇게 여성노동자들의 죽음은 비정규직, 최저임금, 불안정한 일자리, 4대 사회보험 미적용, 성희롱, 높은 주거비 문제가 개인의 노력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제도의 문제임을 일깨워준다. 정책은 이미 다 나와 있다. 문제는 각 정당의 실천 의지다. 더 늦기 전에 20대 여성노동자들의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최저임금, 비정규직 공약과 실천 의지를 갖춘 정당은 어디인지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최저임금 인상 공약을 살펴보자. 여성노동자는 약 148만명이 최저임금 미달자일 정도로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다. 누구라도 무슨 일을 하든 최저임금 시급 1만원, 월 209만원이 보장되도록 최저임금법이 개정돼야 한다. 그런데 새누리당과 국민의당은 최저임금 인상 공약이 없다. 더불어민주당은 2020년까지 시급 1만원으로 인상하겠다고 공약했으나 구체적 로드맵은 없다. 정의당은 3년 이내로 시급 1만원으로 인상하고 공기업·대기업 임원 임금을 최저임금과 연동하도록 하는 임금상한제법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다음으로 비정규직 축소를 위한 공약을 살펴보면 새누리당은 비정규직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겠다는 평생비정규직 대책을 발표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비정규직 사용 부담금제를 도입하고 정규직 전환지원금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정의당은 비정규직을 1년으로 제한하겠다고 했다. 국민의 당은 비정규직 축소보다는 비정규직 사회보험 지원을 2배로 늘리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마지막으로 약 80만명이 종사하는 가사·돌봄노동자 처우개선 공약을 살펴보면 새누리당과 국민의 당은 관련 공약이 없다. 더불어민주당은 가사노동자 노동자성 인정을 위해 법을 제·개정하고 준공무원 수준으로 처우를 개선한다고 했으나 구체적 계획은 부족하다. 정의당은 돌봄노동자의 임금을 인상하고 교통비, 야간휴일서비스 할증 단가 적용 및 수당제 현실화 공약을 내세워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요약하면 새누리당은 여성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아픔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 같다. 잘못된 진단과 잘못된 처방만이 있을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진단과 처방은 정확하지만 어떻게 실현할지 방법의 구체성이 떨어진다. 국민의 당은 진단과 처방이 단편적이다. 정의당은 진단과 처방이 정확하고 구체성도 있지만 실현할 실력을 갖추는 게 관건이다.
이제 선택은 여성에게 달려 있다. 여성은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심판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