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아이스너(Michael Eisner)라는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세계 최대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기업 월트디즈니

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이스너가 바로 1984년부터 월트디즈

니사를 이끌어 온 CEO(최고경영자)이다. 그는 지난 15년간 월트디즈니

의 자산가치를 30억 달러에서 7백억 달러로 끌어올렸다. '라이온 킹', '토

이 스토리', '뮬란' 등 만화영화의 부활을 이룩했고, 테마파크산업의 새

경지를 개척하고 여기에 테마파크 호텔사업을 추가했다. CATV 망을 사

들였고 인터넷에도 뛰어드는가 하면 가장 아날로그적인 잡지와 출판사업

도 확장했다. 그리고 이 모든 매체의 시너지 효과를 모아 수백개의 디즈

니 점포들을 만들었다. '미녀와 야수', '라이온 킹'은 애니메이션으로부터

뮤지컬로 발전시켜 브로드웨이 무대에서도 대성공을 성취했다.

최근 그에게 한 인터뷰어가 물었다. “당신의 경쟁자는 누구라고 생각

하십니까?” 아이스너의 대답은 이러했다. “영화회사일 수도, 음반회사

일 수도 있겠지요. 방송사나 인터넷 기업일 수도 있고 소프트웨어 업계

에 진출하려는 하드웨어기업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경쟁 상대는

여가시간입니다. 지금 모든 산업은 여가시간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

고 있습니다.”

과연 그답게 간결하고 명쾌하게 이 변화의 시대를 요약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디지털 시스템의 혁명은 지금 사람들의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있다. 이 ‘사람들의 일하는 시간 줄이기’에 가장 모델이 되는 당사자

는 금융업이다. 은행들은 지금 연간 1백90억 건의 수표가 온라인시스템

에 의해 완전히 사라질 날이 눈앞에 와 있다고 믿는다.

미국은행에는 은행고객 1억 세대에서 98년 3백30만 세대, 99년 7백만

세대가 온라인을 통해 은행거래를 시작했는데, 2002년에 2천만 세대로

증가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 단계가 되면 은행거래의 포털사이트 기

반이 충족되고, 그러면 은행업무의 거의 대부분에 은행원이 직접 앉아있

을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아날로그 시대의 은행종사자 중 20%만 일

해도 시간적 여유가 있을 수 있는 시스템이 되는 것이다.

이런 전망에 대응하여 일 나누어하기 발상법이 전개되고 있고 그래서

앞으로 10년 내 연 1천 시간 노동제가 나타날 뿐 아니라 그것도 시간직

근무제가 될 것이라고 보는 급진적 예견도 나오고 있다. 일하지 않는 시

간은 이제 드디어 정치경제적 과제로 떠오르는 것이다.

아이스너에게는 이것이 여가시간이라고 표현되는 셈인데, 과연 그것을

그간의 통념대로 여가시간이라고 불러야 할 것인지부터 다시 따져야 할

일이다.

현재 나와 있는 대안은 있는가. 세상은 지금 대안을 찾기보다 이 여가

시간에서 어떤 사업으로 장사를 할 것인가에 집중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의 여가시간은 지금 어디쯤에 있는가. 근로자들이 주5일근무제를

제도화하기 위해서 뛰고 있다. 기업이 시스템의 개혁을 하지 않은 상태

에서 단지 일하는 시간만을 줄이는 것은 어떤 효과를 의미하는 것인지에

대한 설명문은 찾을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학교교육도 주5일

수업이라는 접근을 하고 있다. 학교교육이 없는 날은 어떻게 할 지 대책

은 물론 막연하다.

여가시간이 늘어나는 것은 사람이 사는데 여가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생

각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테크놀로지 혁명에 의한 것이고,

사람이 사는 방법과 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을 요구하고 있

을 뿐이다.

여가시간은 노는 시간이 아니라 새로운 경쟁조건이다. 휴일이 늘어난다

고 룸싸롱에 앉아 폭탄주나 마실 때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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