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하 세종대 교수의 저서 『제국의 위안부』 가 정신적 고통을 줬다며 박 교수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위안부 할머니 9명에게 1000만원씩 9000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이 내려진 13일 서울 광진구 동부지법에서 열린 법원을 찾은 이옥선 위안부 할머니가 판결에 대한 기자회견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사진은 이옥선, 박옥선, 강일출 할머니(오른쪽부터). ⓒ뉴시스·여성신문
박유하 세종대 교수의 저서 『제국의 위안부』 가 정신적 고통을 줬다며 박 교수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위안부 할머니 9명에게 1000만원씩 9000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이 내려진 13일 서울 광진구 동부지법에서 열린 법원을 찾은 이옥선 위안부 할머니가 판결에 대한 기자회견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사진은 이옥선, 박옥선, 강일출 할머니(오른쪽부터). ⓒ뉴시스·여성신문

『제국의 위안부』의 일부 내용이 위안부 할머니들의 인격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최근 저자 박유하 교수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명하는 제1심 판결이 선고됐다. 이 판결로 학문의 자유, 표현의 자유에도 일정한 한계가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

사실 이 판결이 선고되기 전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 사건에서 문제가 되는 일부 표현을 삭제해야 한다는 취지의 결정이 있었기 때문에 1심 판결의 결론은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다. 상급심에서도 이런 결론이 바뀔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이제 남은 궁금증은 박 교수에게 형사적으로도 명예훼손죄가 성립하는가 하는 것이다. 과실만 인정돼도 불법 행위가 성립돼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되는 민사재판과 달리 형사재판에서는 고의 또는 비방의 목적이 없으면 명예훼손죄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 민사 재판과 같은 결론이 나올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일부 지식인들은 『제국의 위안부』 저자의 관점이 학문의 자유 보장 차원에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견해를 표명했다. 그들이 의식했든 의식하지 못했든 간에 이런 견해 표명은 검찰이 박 교수를 명예훼손죄로 기소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한도에서만 설득력이 있었다.

형사재판에서 어떤 결론이 나든 재판 결과는 존중받아야겠지만 그 전에 함께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 학문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는 어느 선까지 용인돼야 일반인의 상식에 부합할까. 예컨대 누구든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분노감을 느끼게 하는 내용의 허위 주장이 학문의 자유,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 아래 공공연히 개진되는 것을 참을 수 있을까.

학문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돼야 마땅하지만 어떤 사람에 대한 인격살인이 행해진다면 그것은 심각한 문제다. 칼만 사람을 죽이는 도구가 아니다. 말과 글도 경우에 따라서는 칼 못지않은 위험한 도구가 될 때가 있다.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학문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의 한계로서 형법이나 민법 규범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는 상식에도 부합한다.

어떤 이들은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형법상 명예훼손죄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 정책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을 억압하기 위한 도구로 명예훼손죄가 남용되는 현실이 이러한 주장에 힘을 실어준 면이 있다. 그러나 사형 제도가 과거에 정치적으로 남용됐다고 해서 곧바로 사형 제도가 폐지돼야 한다는 결론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듯 명예훼손죄가 정치적으로 남용되고 있다고 해서 곧바로 명예훼손죄가 폐지돼야 한다는 결론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돈도 없고 힘도 없는 평범한 서민 입장에서는 억울하게 인격살인을 당했을 때 가장 손쉬운 대처 방법이 명예훼손죄로 형사고소하는 것이다. 민사 재판을 걸어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것은 돈도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드는 데다 인정되는 위자료 액수도 얼마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 형사고소를 하면 수사기관이 공짜로 사건 해결을 위해 도와주는 데다 그 과정에서 빠른 시간 내에 합의금을 받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까지 감안해 제도의 폐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학문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에는 책임이 따라야 한다. 특히 현존해 있는 특정 인물의 인격권을 심각하게 해치는 자유를 무한정 누릴 권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주어져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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