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과정 예산 갈등 심화

“교육청 여력 있다” vs “정부가 책임져라”

정부-시도교육청 줄다리기에 보육 대란 현실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가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보육대란을 막기 위한 즉각적인 누리과정 예산편성 촉구’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가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보육대란을 막기 위한 즉각적인 누리과정 예산편성 촉구’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누리과정은 우리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이들을 볼모로 잡고 사실을 왜곡하면서 정치적 공격수단으로 삼고 있어 참으로 안타깝다.”

박근혜 대통령의 누리과정 예산 편성에 관한 견해 표명과 함께 이를 둘러싼 관계기관의 갈등이 더욱 심화되는 양상이다. 박 대통령은 13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국민담화 이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는 교육청을 향해 “정치적이고 비교육적인 행동”이라고 비판하고 “교육감들이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예산을 편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은 시도교육청의 입장은 이와 첨예하게 대립한다. 교육부에서 제시한 목적예비비는 현재 교부되지도 않았을뿐더러 만일 교부된다 하더라도 그 예산만으로 어린이집 누리과정 전체를 편성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주장이다. 또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은 중앙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정책 시행 주체인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과 시도교육청이 예산을 편성하고 먼저 행동을 취해야 한다는 주장이 충돌하는 사이 보육 대란은 점점 현실화되고 있다. ‘네 탓 공방’을 지켜보며 속만 태우던 학부모들은 당장 이달부터 최대 29만원을 추가로 부담하게 생겼다. 유치원은 매달 20~25일 교육청으로부터 지원금을 직접 받기 때문에 예산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이달부터 문제가 생긴다. 어린이집은 매달 15일 학부모가 아이사랑카드로 보육비를 결제하면 다음 달 20일 시도가 교육청에서 받은 돈으로 카드사와 정산한다.

누리과정 예산을 둘러싼 정부와 시도교육청 간 갈등이 평행선을 달리며 접점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또다시 국민에게만 피해가 돌아가는 형국이다. 매년 반복되는 누리과정 예산 문제에 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경기도 안산에 거주하며 3살, 5살 두 자녀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강일우(40)씨는 “설마 했는데 여기까지 왔다. 인내심을 가지고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형, 누나 교육비를 빼서 동생 보육비에 대라는 정부는 중·고등학교 학부모들과 어린이집 학부모들 간 갈등도 부추기는 것 아니냐”며 “1월, 2월은 예비비를 사용해 급한 불을 끄고 이후로는 추경 편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씨는 “어차피 국민 세금을 사용하면서 누구 주머니에서 나갈지 싸우는 모습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가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보육대란을 막기 위한 즉각적인 누리과정 예산편성 촉구’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가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보육대란을 막기 위한 즉각적인 누리과정 예산편성 촉구’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장진환 한국민간어린이집연합회 회장은 “지난 대선 때 무상보육을 큰소리로 공약한 대통령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며 “지금까지 그 공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해 보육 현장의 차별과 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 회장은 “지난 대선 때 아이를 낳기만 하면 나라에서 알아서 키워주겠다는 말은 도대체 누구한테 했던 말이냐”고 되물었다. 이어 “보육 대란을 막기 위해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직접 나서서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백선희 서울신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누가 재정을 부담하든지 간에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쌍방의 소통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며 “현안 분석을 통한 합리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 교수는 “보육정책은 단순한 어린이집 정책이 아니다. 기재부와 교육부, 복지부, 노동부, 여가부 차관 등 정부 대표와 민간 위원들이 참여하는 보육정책조정위원회의를 적극 가동해 제도 개선을 논의해야 한다”며 “지금이야말로 범부처 기구가 제 역할을 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최은순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회장은 “3년째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으로 진행했기 때문에 문제가 반복되는 것”이라며 “유치원, 어린이집 원장이 앞장설 문제가 아니고, 학부모들이 나서서 해결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없는 예산을 쪼개서 몇 개월 지원한다고 해도 그 이후에는 또 어떻게 할 거냐”며 “묵묵히 지켜보기만 할 게 아니라 학부모 총회를 열어서 근본적인 해결책에 대한 의견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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