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 로봇심리전문가 지은숙 박사
로봇 심리·로봇 융합 권위자
인간-로봇 상호작용 연구
“장르 융합으로 로봇 산업 활성화”
뮤지컬 무대 기술 내수화
작곡·심리·로봇 등 다양한 분야 섭렵
로봇 산업과 문화‚ 동반성장 이끌어
“지금까지의 대한민국이 제조업 중심의 가공무역을 통해 경제 발전을 이뤘다면 미래의 경제 발전은 기술과 문화가 융합한 문화 산업이 주도할 것이다. 로봇 기술을 문화와 융합해 상업화를 시도한다면 새로운 문화 창조가 가능하다.”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산업정책과 문화기술 PD 지은숙 박사는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로봇융합 분야를 알린 로봇심리전문가 1호다. 2000년대 초 대한민국 정부가 로봇 분야에 본격적인 투자를 시작하며 원천기술 연구에 매진할 무렵 그의 활동도 시작됐다. “당시 로봇 융합은 생소한 개념이라 어딜 가나 혼자였다”는 그는 10여 년이 지난 지금, 로봇과 문화 융합의 권위자로 독보적인 위치에 올랐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기계공학과 연구조교수,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비상임 이사 등을 역임한 지 박사는 현재 한국로봇산업협회 전문위원, 한국뮤지컬협회 이사/융합분과 위원장을 맡고 있다. 로봇 기술과 문화, 예술 융합의 탁월한 연구 업적을 인정받아 세계 3대 인명사전인 ‘마르퀴즈 후즈후 인 더 월드’ 2013년 판에 등재됐으며, 국내 최초로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국내 로봇기술을 융합한 성과를 인정받아 ‘2014 대한민국로봇대상’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지 박사는 “문화적인 관점에서 로봇 기술을 활용하고 융합할 좋은 시기라는 생각에 문화부 PD를 지원하게 됐다”며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이 기술을 사용해 예술의 다양성을 추구하고 완성도를 높인 것처럼 앞으로 문화 쪽에서 기술을 융합하는 시장은 무한대로 커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계와 사람 잇는 로봇심리 전문가
작곡을 전공한 그는 임상심리학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일본 호세이 대학에서 아트&테크놀로지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로봇 전문가치고는 이색적인 이력이다. “다양한 전공이긴 하지만, 사실은 하나로 연결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피아노, 작곡, 심리, 로봇, 아트와 테크놀로지 등을 다양하게 공부하면서 로봇과 인간, 기술과 문화, 예술 등의 매개(인터페이스)에 관심이 많아졌고, 자연스럽게 문화와 기술의 융합을 연구하는 기초가 됐다. 로봇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공학과 인문학, 테크놀로지와 문화가 만난 융합의 결정체다. 기술과 문화의 인터페이스로 이뤄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로봇의 움직임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움직임에 대한 심리학적인 고민과 기계공학적인 접근이 동시에 이뤄져야 하고, 연구자는 두 개의 학문을 아우르는 매개자가 돼야 한다.”
‘음악이 언어를 대신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심리학적으로 접근한 음악을 로봇에 적용해본 것이 로봇연구의 시작점이 됐다. 설명만 듣자니 조금 어렵다. 로봇의 감정이 담긴 로봇 사운드, 즉 로봇 언어가 무엇인지 묻는 기자에게 “애니메이션 ‘월-E’와 영화 ‘스타워즈’를 생각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음악의 볼륨 피치 템포를 매개로 사운드를 활용해 의사전달과 의사표현을 해봤다. 이 연구가 활용된 분야로는 언어를 대신해서 아이들을 격려하고 가르치는 영어교사 로봇이 있다.”
지 박사는 지난해 12월 『로봇, 뮤지컬을 만나다』를 펴냈다. 그는 책에서 ‘융합’이 주요한 화두로 떠오른 이 시대에 로봇 산업과 뮤지컬 산업의 만남을 조명하고, 로봇과 뮤지컬이 동반 성장할 내일을 예측했다. 로봇 기술 융합이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올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한 것이다.
공연무대 기술, 새로운 수출 산업
책에는 모두 15편의 뮤지컬이 소개된다. 우리에게 익숙한 ‘오페라의 유령’과 ‘캣츠’부터 ‘마틸다’ ‘타잔’ 등 뮤지컬 이야기가 펼쳐진다. 로봇의 두뇌는 무대 위의 촛불이 되어 오페라하우스 지하를 밝혔고(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로봇의 근육은 킹콩의 심장을 뛰게 했으며(뮤지컬 ‘킹콩’), 로봇의 팔은 마법의 양탄자를 하늘 높이 날게 했다(뮤지컬 ‘알라딘’).
“국내 뮤지컬 산업은 문화 산업 시장의 성장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사례다. 기술 도입 추세와 신시장 개척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볼 때 뮤지컬 시장이 가장 유력하다. ‘태양의 서커스’ ‘스파이더맨’ ‘위키드’와 같은 뮤지컬에는 와이어 플라잉, 무대 자동 제어, 홀로그램 등의 기술이 접목돼 있다. 우리나라의 강점인 IT 기술과 로봇 기술, 문화 예술적 경쟁력을 융합해 지속적 부가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 차세대 문화 산업 장르로 하이터치 뮤지컬을 제안한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에서 객석을 향해 떨어지는 샹들리에는 단순히 1막의 끝을 알리는 이정표가 아닌, 여주인공 ‘크리스틴’에 대한 ‘팬텀’의 뒤틀어진 사랑의 감정, 그리고 그 감정의 절망적인 낙하를 표현한다. 공연장에 따라 샹들리에가 떨어지는 방향, 위치, 속도 등은 조금씩 다르다. 라스베이거스에서 2006년부터 2012년 사이에 이뤄진 공연에서 사용된 샹들리에는 영국의 공연 기술 전문회사 TAIT에서 제작을 담당했다. 초속 6m로 떨어지는 드라마틱한 효과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샹들리에 전체 무게의 4배를 견딜 수 있는 윈치를 제작해야 한다.
“뮤지컬은 음악과 영상, 안무, 시나리오 등 종합 무대 예술이다. 한류 문화를 잇는 차세대 문화산업의 주역으로 매년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인다. 그런데 뮤지컬 무대 기술의 대부분은 해외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우리나라 연구·개발(R&D) 기술을 잘 활용하면 새로운 수출 산업으로 자리 잡을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이다. 공연무대 기술을 우리나라의 로봇 기술로 대체하는 방법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게 됐다.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로봇 R&D에 참여했기 때문에 여러 분야와의 네트워크와 인프라 형성이 가능했다.”
지 박사는 향후 로봇 기술과 산업의 흐름을 전망하기 위해서 “먼저 인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로봇은 자동인형에서 시작해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는 ‘하인’의 개념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정보화 사회를 거치며 대상과의 친밀함을 원하는 친구이자 보호자로 변신했고, 다양한 테크놀로지 시대인 지금은 예술적 경험과 자아실현을 꿈꾸며 내면적 능력을 발현하는 인간의 분신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로봇심리 전문가인 지 박사는 인간과 예술 그리고 기술의 경계에서 감성의 융합기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인간과 기술, 문화의 융합
“로봇은 사회의 변화와 더불어 그 역할과 활용 범위가 달라졌다. 산업사회에서는 공장의 자동화 수단으로 활용됐던 로봇이 정보 사회에서는 군사나 의료, 교육 등 인간에게 직접적인 편의를 제공하게 됐다. 지금의 로봇은 인간과 감정적인 상호작용을 하며 영화나 공연, 전시 등 문화 영역에서 활용되며, 인간의 내적 가치와 욕구를 실현하는 인터페이스로서 활약하고 있다. 이제는 로봇 기술의 수직적 발전보다 수평적이고 융합적인 발전에 대해 논의해봄 직한 시점이다.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IT와 컴퓨터 기술과는 달리 로봇 기술은 다양한 분야의 협력과 융합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지 박사는 “서로 다른 문화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새로운 산업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고 말했다. “수입에 의존하는 기술에 대해 내수화하는 일에 일익을 담당하고 싶은 꿈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인간과 기술, 문화가 융합해 로봇산업과 문화의 동반성장을 끌어내기 위해 필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로봇의 요소 기술을 분리해서 필요한 문화 분야에 분양하고 기술이 문화 안에서 새롭게 독립하도록 도와야 한다. 이것이 문화기술 융합의 완성이다. 이제 가두리 양식에서 벗어나 바다양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래야 자생적인 창조적 시장이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술의 재발견과 문화의 재구성을 통한 문화 기술융합을 기획하고, 그 융합 기획의 관리 실행 시스템을 재창조해서 문화기술 융합 생태계가 지속 가능하도록 도울 수 있다.”
그는 문화가 필요로 하는 기술의 재발견과 거기에 맞는 문화의 재창조를 위해서 범부처 협력형 문화 기술 추진체계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기술의 관점에서 예술에 대한 요구를 적절히 반영해 음악과 심리학, 심리학과 기술, 사람과 사람, 예술과 기술 등을 더하면 서로의 강점이 만나 시너지가 생기고, 서로의 약점은 상대방의 강점이 도와줄 수 있기 때문이다.”
지 박사는 문화와 기술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생기는 새로운 문화 창조에 대한 꿈을 현실화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 R&D 기술과 콘텐츠가 한류문화와 더불어 세계시장에서의 경쟁력이 될 수 있는 발판이 됐으면 좋겠다”는 각오를 전했다. “문화 또한 새로운 전략과 무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행복한 사회, 행복한 사람을 위해 어떤 기술을 가치 있게 조합할 것인가가 이 시대의 이슈라고 생각한다. 바로 이것이 창조경제의 핵심 콘텐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