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날을 하루 앞둔 지난 5월 14일 부산 동구 부산동여중 교무실에서 이 학교 청소년적십자(RCY) 단원들이 교장을 비롯한 교사들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주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뉴시스·여성신문
스승의날을 하루 앞둔 지난 5월 14일 부산 동구 부산동여중 교무실에서 이 학교 청소년적십자(RCY) 단원들이 교장을 비롯한 교사들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주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뉴시스·여성신문

좀 심하게 말하자면, 한국의 교사들이 할 줄 아는 것은 교과서를 들고 칠판 앞에서 강의하는 일뿐이다. 그나마 초등학교 교사들은 여러 과목을 함께 가르치기 때문에 개별 교과를 넘어선 지식이나 상식에도 관심을 갖지만, 중등학교 교사들은 오로지 자기가 맡은 교과 외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어 때로는 딱할 정도로 일반 상식이 빈약하다. 오죽했으면 아이들과 함께 잡초를 뽑는 활동에서 교사가 멀쩡하게 자라고 있는 콩을 몽땅 뽑았을까(이 일은 우리 학교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이들에게서 배우는 학생들이 얼마나 불완전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될는지는 불 보듯 뻔하다.

교사는 자기가 맡은 교과만 잘 가르치면 된다는 신조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아마도 근원적인 책임은 한국의 교사 양성기관, 정확하게 말하자면 한국의 사범대학과 교육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는 교수들에게 있다. 교대·사대 교육과정을 보면 오로지 전공 지식의 습득에 집중하도록 되어 있고, 교육학을 가르치는 교수들은(지난 칼럼에서 내가 겪은 것처럼) 학생들에게 그렇게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2차적인 책임은 아마도 교사들 자신이 져야 하지 않을까? 교직은 결코 쉽지 않은 직업이라고 할 수 있지만,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매우 쉬운 직업이기도 하다. 특히 학생들이 알아듣든 말든 주어진 수업 시간을 때우는 것으로 교사의 역할을 다한다고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문제는 어떤 심오한 철학을 근거로 하든지 간에(내가 보기엔 한낱 잘못된 편견에 불과하지만) 교사의 본분이 교과를 잘 가르치는 일이라고 하는 말은 교육적 사명감도 없이 형식적으로 시간만 때우는 교사들에게 일종의 면죄부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의 교대·사대 교육과정이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한 결함은 학생들에게 교사란 어떤 존재이며 교사가 되는 일이 얼마나 심각한 자기 결단을 필요로 하는지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교직은 노동을 제공하고 그 대가를 임금으로 지급받는 통상적인 직업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무엇보다도 교사가 하는 일은 끊임없이 다른 사람의 인생에 개입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의식하든 하지 않든 간에 교사의 말과 행동은 학생들에게 심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으며, 그만큼 교사의 삶은 도덕적으로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현재의 교사 양성과정은 이에 관한 심각한 자기진단 기회를 마련하기는커녕 임용고사 대비라는 현실적 고려만을 앞세운다. 이러한 풍토에서 참된 교사가 길러지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나는 시간강사 자격으로 꽤 오랫동안 교육대학원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다. 전공이 교육철학인지라 원론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지만, 만나는 학생들에게 늘 이 점을 강조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찾아 헤매다가 뒤늦게 교직의 길을 가겠다고 왔지만 나는 당신들이 교사로서의 삶이 얼마나 힘들고 괴로운 일인지 아느냐고, 다른 사람의 인생에 개입하는 일이 얼마나 무섭고 어려운 일인지 생각해 보았느냐고 직설적으로 몰아세웠다. 물론 나는 거친 세파를 겪은 그들이 수능 점수 따라서 교대·사대를 선택한 아이들보다 백 배 낫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에게 한 번쯤은 깊이 자신을 진단해 보기를 권했다.

한 가지 덧붙인다면, 우리나라 교사 양성과정은 학생들에게 우리 교육 현실에 관해 직접 경험하고 그 안에 내재된 구조적인 문제를 찾아 해결책을 모색해보도록 하는 일에 너무 인색하다. 하긴 교대·사대 교수님들이 우리 교육의 현실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느끼고 있을까 생각해보면 그런 지적을 하는 내가 차라리 낯부끄럽다.

현행 교대·사대를 전면적으로 바꾸는 일은 정말 불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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