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총선에 도전하는 여성들 / 서울 은평구 고연호

여성 경제인에서 정치인으로 변신

12년간 새정치 은평을 지역위원장 수행

은평구만의 사업 모델 구상

유통과 쇼핑, 수송 중심 지역 강조

 

고연호 새정치민주연합 서울시 은평을 지역위원장은 활발한 사업을 펼치다가 2004년 열린우리당에 입당하면서 정치가로 변신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고연호 새정치민주연합 서울시 은평을 지역위원장은 활발한 사업을 펼치다가 2004년 열린우리당에 입당하면서 정치가로 변신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는 항상 열심히 일했지만,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하도록 등록금 한 번을 제때 못 받았다. 부모님처럼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잘살면 좋겠다. 그게 정치하는 이유다. 반칙하고 사기 치는 사람들이 더 잘사는 게 문제다.”

고연호(52) 새정치민주연합 서울시 은평구(을) 지역위원장은 차분한 음성으로 정치에 입문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경기여자고등학교를 나와 이화여자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그는 한때 크고 작은 중장비 20여 대를 보유하고 업계 3위를 달리며 시설물 축조 관리 분야를 누비는 열혈 경영자였다.

20대부터 대일 무역과 건설업 등 꾸준히 사업을 펼친 고 위원장은 17년간 직원들의 임금 체불은 물론 부도 한 번 내지 않은 견실한 사업가로 통했다. “30대 처녀 사장이 직원들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일은 약속을 잘 지키는 것”이라며 “순수한 열정과 월급을 제때 지급하는 급여의 힘 말고는 없었다”고 말했다.

고 위원장은 2004년 열린우리당에 입당하면서 사업을 접었다. “사업은 원래 목적이 아니었다”는 그는 “열심히 돈을 벌다보니 입버릇처럼 되뇌던 꿈을 실현하려면 정치가 똑바로 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어김없는 386세대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운동에만 정신 팔려 있다”는 질책깨나 들으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사업가로 이름을 떨치던 그가 정치에 입문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가족 부양을 좀 해놓고 민주화운동을 하겠다는 생각이었다”는 설명이다.

정치를 시작한 그에게는 많은 시련이 따랐다. 고 위원장은 “정치인들에게는 공천 문제가 늘 뒤따른다. 2010년 재·보선 때는 장상 후보가 은평 지역에 전략공천으로 왔다가 실패했고, 2012년 선거에는 야권연대라는 이유로 밀려났다”며 “어떤 선거든 원칙이 바로 서야 한다. 전략공천이 없어야 하고, 모바일 선거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20대에 뿌리를 내린 은평구에서 두꺼운 지지층을 확보한 고연호 위원장은 “전략공천이 없어야 하고, 모바일선거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0대에 뿌리를 내린 은평구에서 두꺼운 지지층을 확보한 고연호 위원장은 “전략공천이 없어야 하고, 모바일선거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해당 지역에서 주민들과 밀착해 부대끼며 인정받고, 검증받은 후보들이 제대로 된 경선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 그의 일관된 주장이다. 20대에 뿌리를 내린 은평구에서 두꺼운 지지층을 확보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는 “은평구의 인구는 이제 곧 50만에 육박한다”며 은평구 개발의 여러 청사진을 제시했다.

“은평구가 풍족하게 살 길은 무엇일까. 은평구만의 사업 모델을 구상해 빠르게 성공시키는 일이다. 실현 가능한 계획을 많이 생각해내어 실행에 옮겨야 일자리가 늘어날 수 있다. 환경이 쾌적하면서도 좋은 일자리가 많은 지역은 주민이 풍족하고 사람이 중심이 되는 행복한 도시가 된다.”

사업가 출신답게 경제분야에 관심이 많은 그는 구체적인 지역개발 사업을 구상했다. “수색역을 중심으로 유통과 쇼핑, 수송의 중심이 되는 지역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고 위원장은 “또 유소년과 청소년, 젊은이와 어르신들이 어울릴 수 있는 서울혁신파크를 조성해야 한다”며 “뉴타운 첨단의료관광단지 등을 조성해 지역경제를 안정시켜 은평이 치유와 힐링의 허브가 되도록 역량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고 위원장은 싱글맘이다. “나의 삶은 장발장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는 그는 소설 장발장을 읽고 감동한 나머지 장발장처럼 결혼하지 않고 돈을 열심히 벌어서 불쌍한 사람들을 도우며 살겠다고 결심했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50까지 독신으로 살다가 두 딸을 입양해 키우고 있다.

“아들이든 딸이든 가리지 말고 자식을 입양해 키워보라”는 어머니의 권유에서 시작됐다. 지역 경선과 총선, 대선 등 바쁜 정당생활로 지연된 입양은 고 위원장이 나이 제한에 걸리기 바로 직전인 2013년에 성사됐다. 고 위원장은 “임진왜란 때 의병대장인 고경명 장군의 18대 자손”이라며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이 나라의 힘없는 어린이들을 위해서라면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한 용감한 의병장처럼 살겠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경제학과 △우진무역개발㈜ 대표이사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이사 △한국여성경제연합회 전문위원회 부위원장 △열린우리당 서울시 윤리위원회 윤리위원 △민주당 서울시당 은평을 지역위원장 △현 새정치민주연합 조직본부 부본부장 △현 새정치민주연합 서울시당 공직선거후보자 검증위원회 위원장 △현 새정치민주연합 서울시 은평을 지역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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