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1호’ 제주지검 수사 총지휘 조희진 지검장

아동학대, 성폭력 수사에 만전

엄정한 처벌, 재범 방지에 주력

“전문수사자문위원제도 안착”

 

‘검찰 맏언니’ 수식어 다소 부담

“사실 난 엉뚱한 사람인데…”

 

“타인과의 소모적 경쟁 대신

자신과의 싸움에 집중하길”

 

검찰 67년 역사상 최초의 여성 지검장인 조희진 제주지검장은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매달 1000여 명, 1년에 1만 명 이상 외지인이 이주해 오는 제주에서 투명하고 예측 가능한 법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온 힘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검찰 67년 역사상 최초의 여성 지검장인 조희진 제주지검장은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매달 1000여 명, 1년에 1만 명 이상 외지인이 이주해 오는 제주에서 투명하고 예측 가능한 법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온 힘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제주도는 전국에서 거의 유일하게 인구가 늘어나는 지역이죠. 매달 1000여 명, 1년에 1만 명 이상 외지인이 이주해 오는 핫 플레이스에 부임했으니 책임감이 막중해요.”

검찰 67년 역사상 최초의 여성 지검장으로 제주지검 수사를 총지휘하고 있는 조희진(53·사법연수원 19기) 지검장은 올 한 해를 누구 못잖게 바쁘게 보냈다. 제주가 천혜의 자연환경에 힘입어 힐링 공간으로 급성장하는 시기에 검찰청 기관장의 중책을 맡은 만큼 투명하고 예측 가능한 법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온 힘을 쏟았기 때문이다.

지난달 말 제주 현지에서 조 지검장을 만났다. 첫 여성 지검장으로 검찰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그는 부드러운 인상에 현안을 조근조근 설명하며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줬다. “카리스마가 넘칠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제주 부임에 대한 소회를 묻자 그는 “제주도 탄생신화 주인공은 한라산 ‘설문대할망’이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추진 중인 제주 해녀가 상징하듯 여성들의 역할이 큰 지역이어선지 여성 검사장을 더 반갑게 맞아주더라”며 “제주가 급격히 도시화되면서 생긴 사회문제로 역할이 더 커져서 책임감이 크다”며 말을 이어갔다.

검찰부터 미래에 대비하자는 의미로 모든 검사들이 전담별로 지역 특성과 범죄의 상관관계, 향후 대응방안 등을 연구하고 『범죄 현황과 대응방안』이라는 책자도 냈다. 소프트웨어도 정비했다. 법조인, 정신과 의사부터 NGO, 공공기관 관계자까지 한자리에 모여 가정폭력과 아동학대를 주제로 집중 세미나를 열고 전문수사자문위원제도도 안착시켰다. 정신과 의사와 전문 상담원 3명을 검찰청 전문수사자문위원으로 위촉해 가정폭력 가해자는 물론 피해자도 사건 처리 과정에서 상담을 받도록 하고, 상담 결과를 토대로 양형에 반영하도록 제도를 개선했다.

“정부가 경제 활성화를 위해 지급한 보조금에 대해 허위로 요건을 만들어서 부당하게 챙기는 사건이 있어요. 세금만 낭비하고 제주도에 전혀 도움 안 되는 부패 사건들이죠. 부패 사건이나 개발 인허가 비리는 엄중한 법 집행을 해야 한다는 게 우리 업무 목표지요.”

제주특별자치도는 이혼율이 전국 1위를 기록하고, 가정폭력도 2010년 대비 5년 새 2300% 이상 급증했다. 범죄 체감도는 낮아도 도둑, 거지, 대문이 없던 ‘3무’의 평화로운 전통사회에서 최첨단 산업사회로 바뀌는 과정에서 겪는 충격파가 크다. 성폭력, 가정폭력이 살인 등 강력범죄로 발전하는 사건도 꽤 있다. 엄정한 처벌과 동시에 재범 방지에 역점을 뒀다.

“제주도는 혈연과 지연으로 결속된 ‘괸당 문화’로 범죄 정보 수집이나 범죄 수사, 증거 확보 등에 어려움이 있어요. 지역 주민들의 정서를 알고 사건 처리에 임하도록 업무처리 방식을 개선했지요.” 조 지검장은 “따뜻한 법치 실현을 위해 가정폭력, 성폭력, 아동학대, 학교폭력에 업무를 집중해 성과를 냈다”며 “대검찰청에서 분기별로 제주지검과 비슷한 규모의 지방검찰청끼리 평가할 때 최우수 청으로 내부 포상도 받았다”고 전했다.

 

‘검사의 꽃’이라는 지검장 직에 오른 조희진 제주지검장은 “여성 1호라는 부담감이 상당하더라”며 “그냥 검사직이 좋아서 택했는데 직업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줄은 꿈도 꾸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검사의 꽃’이라는 지검장 직에 오른 조희진 제주지검장은 “여성 1호라는 부담감이 상당하더라”며 “그냥 검사직이 좋아서 택했는데 직업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줄은 꿈도 꾸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그는 검찰 내 여풍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1990년 2월 서울지검에 유일한 여검사로 임관한 후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공판2부장·형사7부장), 고양지청 차장, 천안지청장 등을 거치며 ‘여성 1호’ 타이틀을 이어갔다. 김수남 검찰총장이 지난 2일 부임하면서 그의 뒤를 이을 2호 여성 지검장이 탄생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재 22기 검사장 승진 대상자 중 여성은 박계현 춘천지검 원주지청장, 김진숙 전주지검 차장검사, 이영주 춘천지검 차장검사 등 3명이다. 그는 후배 검사들에 대해 “다들 능력이 뛰어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검사의 꽃’이라는 지검장 직에 오른 그는 “1호라는 부담감이 상당하더라”며 속내를 내비쳤다. 그냥 순수하게 검사직이 좋았고 잘 맞겠다고 여겨 택했는데 직업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줄은 꿈도 꾸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실 집에선 막내인데 ‘검찰의 맏언니’라는 수식어가 붙으니 책임감이 들더군요(웃음). 엉뚱한 면도 많고 우리 집 남매 중에선 모험을 많이 하는 편인데 ‘1호 여성’이라 행동에 제약이 따를 때가 있어요. 또 남성과 견줘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데 ‘여성’ ‘1호’로 주목받으니 힘든 적도 있어요.”

검사 인생 내내 승승장구한 것은 아니다. 여자 고소인이 여검사 앞에서 얘기하는 걸 마음 상해 하는 것쯤이야 웃어넘겼지만 남자 검사와 달리 공판 검사로 발령내지 않을 땐 자존심이 상했다. “검사 출신 변호사인 조배숙 선배도 그렇고 당시 저를 포함한 여검사 둘을 처음엔 공판에 안 보냈어요. 공개된 법정에서 갑작스런 일이 터지거나 봉변을 당할까봐, 여검사가 실수할까봐 그랬죠. 선배가 공판 검사로 나갔다가 미국 연수를 가면서 제가 후임으로 갔어요. 근데 선배가 일을 산더미처럼 남겨놓아서 좀 힘들었죠(웃음).”

외아들을 둔 그는 출산 후 몸무게가 30㎏대로 떨어질 만큼 1년여 심하게 앓았다. 그는 “건강을 회복한 후부터 다른 사람들과의 쓸데 없는 경쟁에 집착하지 않고 내 할 일에 더 집중했다”며 “삶에선 자신과의 경쟁이 가장 중요하더라. 자신이 일하는 분야에서 정성을 다해 완성을 이루겠다는 삶의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특히 “여성으로 소명의식을 갖고 후배들의 앞길을 터주는 선배가 되겠다”고 했다.

“여성신문이 지난 9월 주최한 아태 W 위기경영포럼 연사인 신시아 엠리치 카탈리스트 부회장이 ‘성과를 드러내라’는 말을 했지요. 웬만큼 뻔뻔한 여성이 아니면 낯뜨겁다면서 성과를 잘 알리지 않아요. 하지만 바깥세상은 그걸 몰라요. 자신이 이룬 성취는 확실히 주변에 드러내는 전략이 필요해요. 여성 스스로 성공에 한계를 지우는 내면의 유리천장을 깨는 것이 중요합니다.”

조 지검장의 남편은 송수근 문화체육관광부 기획조정실장이다. 고려대 영문학과 78학번으로, 고려대 법대를 나온 조 지검장의 3년 선배다. 남편과 그는 요즘 주말부부로 지내고 있다.

 

조희진 제주지검장은 “여성 스스로 성공에 한계를 지우는 내면의 유리천장을 깨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희진 제주지검장은 “여성 스스로 성공에 한계를 지우는 내면의 유리천장을 깨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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