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체감형 양성평등 정책 시행하는 원희룡 제주도지사

여성 경제활동참가율 전국 1위, 출산율 전국 2위

맞춤형 보육 서비스… ‘수눌음’ 돌봄공동체도 복원

“양성평등, OECD 선진국 수준으로 확 끌어올리겠다”

 

정보통신기업 임원실 같은 제주도청 집무실에서 20일 오후 여성신문과 만난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는 “제주도정에서 양성평등을 우선순위에 두겠다”고 말했다.
정보통신기업 임원실 같은 제주도청 집무실에서 20일 오후 여성신문과 만난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는 “제주도정에서 양성평등을 우선순위에 두겠다”고 말했다.

“내년부터 제주도 여성들의 피부에 실제 와 닿는 생활체감형 정책을 본격화하겠다. 또 여성 공직자들을 중심으로 여성 리더 역량을 키워나가겠다. 투 트랙 전략으로 펼칠 ‘제주처럼’ 프로젝트를 통해 전국 최고 수준, 더 나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진국 수준으로 양성평등을 끌어올리겠다.”

11월 20일 오후 제주도청 집무실에서 만난 원희룡(51) 제주특별자치도지사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여성신문과의 인터뷰 직전에 원 지사는 ‘여성리더스클럽 교육과정’ 수료식에서 6급 이상 여성 공직자 28명을 만나 “작지만 의미 있는 첫걸음을 뗀 것”이라며 “제주도정에서 양성평등을 우선순위에 두겠다”고 약속했다.

서귀포 시장에 여성 임명 ‘눈길’

서귀포시장에 여성인 현을생 시장을 임명한 원 지사는 “현 시장이 업무를 장악하는 능력이 뛰어나 만족스럽다”며 “2018년까지 5급 이상 여성 관리직을 15%까지 늘리겠다. 앞으로 도청 내 인사, 예산, 총무 등 주요 보직 책임자에 여성을 한 명 이상 발탁하는 룰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원 지사의 집무실은 마치 정보통신기업의 임원실 같았다. 스탠딩 테이블부터 Y자형 책상, 다양성을 표현한 다른 색깔의 의자 8개까지 눈을 사로잡았다. 집무실 면적을 줄이면서 디자인도 소통과 평등의 공간으로 바꿨다는 설명이다.

원 지사는 “취임 후 여성을 주요 보직에 앉히려고 했으나 마구잡이로 할 수는 없지 않느냐. (배석한 이은희 보건복지여성국장을 가리키며) 개방형 공모로 여성 국장을 모셔온 이유다. 앞으로 허리 라인의 여성 중간 관리직을 키울 것”이라고 했다.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위치에 있으면 리더십이 키워진다. 대신 여자라고 봐주는 건 없다. 훨씬 더 혹독할 거다. 남성들끼리도 얼마나 치열한 경쟁을 하나. 전쟁터에 던져졌다는 걸 느껴야 한다.”

-양성평등 정책 프로젝트명이 ‘제주처럼’이다.

“아이 낳고 키우기 좋은 제주도, 여성이 일하기 좋고 가족 모두 행복한 제주가 되겠다는 선언이다. 추상적인 정책은 지양하자는 뜻으로 생활체감형이란 이름을 붙였다. 여성정책이 정부 시책 중심으로 시행되면서 지역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체감도가 낮다. 도민들의 욕구가 반영된 제주형 여성정책을 발굴했다고 자부한다.”

-‘아래로부터의 정책’을 펴기 위해 어떻게 준비했나.

“여성학자 오한숙희씨 등 정착 인사와 전문가 등 민간그룹 2개 지원팀과 공무원 주니어보드를 구성해 그룹별로 열띤 브레인스토밍과 토론, 워크숍을 다녀왔다. 제주에는 한 달에 1000명씩 육지에서 이주를 온다. 이 중 10명을 끌어들인 것이다. 도청 내에 태스크포스(TF) 사무실도 꾸렸다. 이런 정성 끝에 발굴한 정책 과제라 여성들의 마음에 쏙 들 것으로 자신한다. 20세 이상 64세 이하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의견 수렴도 했고, 도민 공청회도 거쳤다. 이 과정을 거쳐 4대 핵심 과제, 22개 사업이 나왔다.(제주도는 ‘제주처럼’ 프로젝트 예산으로 30억원을 편성했다)”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20일 도청에서 열린 ‘여성리더스클럽 교육과정’ 수료식에서 6급 이상 여성 공무원들과 함께 환히 웃고 있다. 제주도는 여성 중간관리직의 역량 강화를 위해 5개월 코스의 교육과정을 마련했다.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20일 도청에서 열린 ‘여성리더스클럽 교육과정’ 수료식에서 6급 이상 여성 공무원들과 함께 환히 웃고 있다. 제주도는 여성 중간관리직의 역량 강화를 위해 5개월 코스의 교육과정을 마련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언제, 어디서나 불편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수요자 맞춤형 보육서비스와 국가와 개인 돌봄의 사각지대를 해소할 사회적 돌봄 공동체, 가족친화 일터 환경을 만드는 데 온 힘을 쏟겠다. 제주형 공동육아 나눔터 ‘수눌음 키즈 카페’를 2018년까지 43개 읍·면·동에 설치하고 마을 돌봄 공동체, 품앗이 육아, 조부모 육아 품앗이 등 다양한 ‘사회적 돌봄 공동체’를 2018년까지 50곳 발굴할 계획이다. 제주일·가정양립지원센터가 일‧가정 양립 정책 개발과 컨설팅, 네트워크 구축 등을 맡아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것이다.”

-‘수눌음’이란 제주도 말이 특이하다.

“제주도에는 예전에 수눌음 정신이 있었다. 감귤 농사를 지을 때도 주민들끼리 서로 일을 도와줬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는데 돌봄 육아를 위해 공동체를 복원하자는 의미다.”

-‘바로 보육 어린이집’ 운영도 눈에 띈다.

“시간제 보육시설은 미리 예약해야 하고 접근성도 어려워 부모들이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긴급·단시간 보육을 원하는 부모를 위해 ‘바로 보육’ 서비스를 시행한다. 내년 100곳을 시작으로 2017년 110곳, 2018년 120곳으로 늘릴 예정이다.”

-제주도 출산율은 전국 2위, 셋째아 출산은 전국 1위다.

“합계출산율이 전국 평균보다 높은 1.48명이다. 산후 조리용 한약도 10만원 할인 지원하고, 출산‧육아용품 대여 사업도 시행 중이다. 신혼부부와 자녀 출산 가정에 주택전세자금 대출 이자를 연간 최대 70만원까지 지원하고, 다자녀 가정에 양육수당도 준다. 양육수당은 지난해 둘째 자녀로 확대됐다.”

-제주 해녀로 상징되듯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이 높다. 지난 10월 기준 전국 평균이 52.4%인데 제주도는 63.1%로 전국 1위다.

“제주 여성들의 강인한 정신력과 억척스러운 생활력은 유명하다. 청‧장년 여성 일자리를 많이 만들 것이다. 중‧고령 여성들은 시간제 일자리를 원하더라. 맞춤형 직업훈련을 지원할 계획이다. 여성 창업 인큐베이팅 지원, 농‧어촌 여성 새로일하기지원센터 설치에도 힘쓰겠다. 특히 제주에 정착하고픈 이주민을 위해 여성 이주 전문가를 활용한 컨설팅에 주력하겠다.”

두 딸 둔 원 지사 “여성 지위 향상돼야”

이 대목에서 원 지사에게 “딸이 둘이니 성평등에 더 관심이 높지 않으냐”고 물었다. 그는 “당연하다. 우리 가족의 미래는 여성의 지위 향상과 연결돼 있다”며 가벼운 웃음을 터뜨렸다. 원 지사는 부인 강윤형씨와 사이에 서정, 소영씨를 두고 있다.

부인 강씨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소아정신과 전문의다. 서울대 82학번인 부부는 열아홉 살에 처음 만났다. 학교에서 열린 제주향우회에서 만나 연애를 시작한 이른바 ‘CC(캠퍼스 커플)’였다.

제주도에서 태어난 원 지사는 똑똑하기로 소문난 수재였다. 어려운 환경에서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고 서울법대도 수석으로 입학했다. 사법시험 역시 수석으로 패스해 사시계에선 ‘전설’로 통하는 인물이다. 대학 시절 그는 경찰에 쫓기던 운동권이었다. 학생운동을 했고 노동운동을 하기 위해 인천 공장에 취직하기도 했다.

강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당시 남편은 굉장히 안정적이고 승승장구하는 삶이 보장된 상태에서 기득권을 포기했다. 그때는 정말 고문받다 죽은 후배도 있었고 살벌하던 시절이다. 그때 목숨 걸고 학생운동을 했다”며 “자신이 누릴 수 있는 모든 혜택을 접을 수 있고 내려놓을 수 있다는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런 순수함에 반했다”고 결혼 과정을 전했다.

원 지사는 두 딸이 사춘기일 때 ‘아버지 학교’를 졸업했다. 딸들에게 멋진 아빠가 되고 싶어서다. 여성 문제에 관심이 높은 것은 이런 가정사도 한몫했을 것이다.

“해녀, 조선시대 거상 김만덕 등 제주의 역사‧문화만 봐도 여성을 빼놓곤 얘기가 안 된다. 바람, 돌, 여자가 많아 삼다도로 불리지 않나? 제주는 또 평화의 섬이다. 이념, 인종, 성별에 따른 칸막이나 차별, 적대적인 분위기를 녹이고 부드러움과 소통을 지향하는 것이다. 선진국으로 가려면 인적자본인 여성을 적극 활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원 지사는 “한국 사회가 많이 발전했는데도 여전히 뒤처진 부분이 많다”고 꼬집었다. 과거 육체노동에 기반을 둔 가부장 사회와 달리 지금은 소프트파워 시대로 감성이나 창조능력이 더 중요하고 여성 역할도 예전보다 훨씬 커진 문명사적 대전환기라는 것이다.

-원 지사가 먼저 성인지 교육을 받겠다고 요청했다고 들었다.

“2005년 성별영향분석평가, 2013년 성인지예산제를 도입했지만 아직 관심은 낮은 수준이다. 도정의 양성평등을 실현하려면 공무원 성인지력 향상과 함께 관리직 공무원, 부서장부터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그래서 나부터 성인지 교육을 받겠다고 했다. 5급 이상 간부 공무원 200여 명과 함께 성인지교육을 받았다. 양성평등이 제주 사회로 번져가려면 공직자부터 먼저 달라져야 한다. 그래야 도민 사회로 파급돼 나갈 수 있다. 도지사 결재를 받는 사업계획을 세우거나 변경할 때 미리 성인지 검토 제도를 도입하고 공무원 성인지 교육 의무화를 추진하고, 2018년까지 위원회 여성 위원 참여율을 45%까지 끌어올리겠다”

-여성 중간 관리자 육성에 관심이 남다르다.

“지난해 말 현재 도 공무원 중 여성 비율은 28.8%이며 5급 이상 여성 관리직은 11.6%로 전국 평균 수준이다. 2018년까지 5급 이상 여성 관리직 비율을 15%까지 늘려나갈 것이다. 여성 공무원의 역량 강화를 위해 6급 이상 여성 공무원을 대상으로 특화된 여성 중견간부 양성과정인 ‘리더스 클럽’을 운영했고 여성 공무원에 대한 보직관리 지원, 근평제도 개선 등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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