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여가위, 법안 공방에 파행

야당‧여성단체 강력 반발

“피해 생존자 47명뿐…

기림일 제정 신속히 합의해야”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유승희 여성가족위원장과 야당 의원들이 위안부 피해자 기림일 지정에 미온적인 정부 여당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유승희 여성가족위원장과 야당 의원들이 위안부 피해자 기림일 지정에 미온적인 정부 여당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 제정이 난항에 빠졌다. 여야의 견해 차가 워낙 커서 위안부 기림일 제정은 ‘산 넘어 산’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야당과 여성단체들은 “위안부 기림일 제정까지 왜 일본 정부의 눈치를 봐야 하느냐”며 강력히 반발했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법안소위원회는 17일 전체회의를 열었지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일을 지정하는 법안의 상정 여부를 놓고 여야가 공방을 벌이면서 시작 1시간 만에 파행했다.

이날 야당 위원들은 위안부 피해자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의 참상을 처음 공개 진술한 8월 14일을 기림일로 지정하는 내용의 ‘일제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생활안정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정부·여당의 반대로 법안심사소위에 상정되지 못하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유승희 여성가족위원장 역시 “정부에서 너무 소극적으로 나오니 여당에서 제대로 입장을 밝히지 못하는 것 아니냐”라고 목소리를 높였고,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은 “위원장이 중립적이지 못하고 왜 이렇게 편파적으로 진행하느냐”며 불만을 피력했다.

특히 김 장관은 정회 도중 마이크가 꺼진 상황에서 “무슨 위원장이 장관한테 발언 기회도 주지 않나” “여야 협의를 통해 법안 상정이 안 된 걸 가지고 왜 야당 간사는 장관한테 따지느냐”며 고성을 이어갔다. 정회가 선포된 뒤 여당 의원들이 회의장에 돌아오지 않아 결국 산회됐다.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은 1991년 8월 14일 고 김학순 할머니가 최초로 공개증언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용기 있게 고발한 날을 기려 역사를 기억하고 다시는 이 같은 범죄가 재발되지 않도록 세계가 함께 노력하자는 결의를 담아 제11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에서 선포됐다. 이후 매년 아시아 각국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연대행동을 통해 다양한 캠페인과 행사를 벌이며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을 알려나가고 있다.

야당은 광복 70주년을 앞둔 6월 임시국회에서 이 법안을 통과시키려 했지만 여당이 한일 정상 간 협의 중 외교적 마찰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반대해 보류된 바 있다. 야당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이 법안을 처리하려고 했으나 여야 협의에서 여당이 올해 말까지 박근혜 대통령의 협상결과를 지켜보자며 또 다시 법안 보류 의견을 밝혀 지난 16일 법안소위에 이 법안이 상정되지 못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일본군 위안부 범죄의 최대 피해국인 우리나라 국회에서 기림일을 제정하는 데 앞장서지는 못할망정 고성까지 오가며 회의가 파행됐다니 웃지 못할 소극 아니냐”고 반발했다. 한국염 공동대표는 “일본군 위안부 역사와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활동을 기리는 기림일 제정이 왜 일본의 눈치를 봐야 하는 일인지 궁금하다”며 “한일정상회담을 통해 아베 총리가 여전히 위안부 문제에 대해 국가적, 법적 책임을 이행할 의지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는데도 기림일 제정을 미루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남인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2014년 여가위 일본군 위안부 문제 대책소위원회에서 여성가족부는 ‘8월 14일을 위안부의 날로 지정하자’고 제안했는데 왜 이제 와서, 무엇이 두렵고 누구 눈치를 보고 있기에 여당은 안건 상정조차 거부하느냐”며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238명 중 47명만 생존해 있다. 국내 법정 기념일을 지정하는데 왜 외교관계를 고려해야 하느냐. 그렇다면 일본 정부 차원의 사과와 법적 배상은 어떻게 주장할지 정부의 이중적인 태도가 우려스럽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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