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연합학력평가가 실시된 17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개포동 경기여자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 1교시 국어영역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뉴시스ㆍ여성신문
전국연합학력평가가 실시된 17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개포동 경기여자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 1교시 국어영역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뉴시스ㆍ여성신문

미국의 경제학자 로버트 프랭크와 필립 쿡이 쓴 『승자독식 사회』라는 책에는 “(미국인들은) 소득이 높아야 고급 승용차를 살 수 있다는 사실은 받아들일 수 있어도 소득이 높아야 좋은 학교에 다닐 수 있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대목이 있는데, 우리나라 국민 정서에도 얼추 맞는 주장이 아닐까 싶다.

지난 2013년 영훈국제중 입시 부정 사건이 터졌을 때 영훈국제중을 폐지(국제중 지정 취소)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던 데에도 이와 같은 정서가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법의 잣대를 들이대고 보니 당시의 법으로는 곧바로 국제중을 폐지하는 것이 무리라는 주장이 만만치 않은 설득력을 갖고 있어 서울시교육청은 학교법인의 이사진을 해임하고 관선 임시이사를 파견하는 조치에 머물렀다. 대신 정부는 앞으로는 입시 부정이 있을 경우 곧바로 국제중이나 자사고, 특목고를 폐지할 수 있도록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이렇게 경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하나고에서 입시 부정 사건이 터졌다. 아직 서울시교육청의 발표만으로는 하나고에서의 입시 부정이 영훈국제중 입시 부정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만 있었는지 그 후에도 있었는지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만약 그 후에도 있었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다. 국가의 경고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하나고는 2014년 있었던 서울시교육청의 자립형사립고 평가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아 어떤 의미에서는 서울시 자사고의 상징적 존재가 됐다고도 볼 수 있는 학교다. 그런데 서울시교육청의 평가 과정에서 하나고가 학생 선발 과정에서 부정한 방법을 사용해 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면 어떤 평가가 내려졌을까. 결국 하나고 이사진은 국가기관의 정상적인 평가 업무를 방해해 자사고 제도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가중시킨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교육기관이 학생 선발의 자율권을 비교육적 방식으로 남용하는 것에 관대한 사회는 기본이 되지 않은 사회다. 입시 부정으로 피해를 본 학생들이 느끼는 분노와 억울함, 사회에 대한 불신은 어떻게 해소해줄 것이며, 그로 인해 부당한 이익을 본 학생들이 느낄지도 모르는 뒤틀린 우월감 내지 안도감에 대해서는 어떤 처방을 할 것인가. 발각되지만 않으면 된다는 전제하에 행해지는 입시 부정에 대해서는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한다. 이번에도 유화적인 조치가 취해지면 비슷한 사태가 또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차제에 자사고에 학생 선발 자율권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에 관한 제도적 정비도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언제부턴가 공정사회 담론이 강하게 표출되더니 요즈음은 청년 세대에서 흙수저, 금수저 계급론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이들이 주어진 환경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나약하고 지나치게 비관적인 세계관을 갖고 있다고 탓하기 전에 이들에게 우리 사회는 소득이 높다는 이유로 좋은 학교에 다닐 수 있는 사회가 아니라는 확신을 심어주는 단호한 조치를 할 의무가 기성세대에 있다. 교육이 사회적 계층 이동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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