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대학생-대한민국 어르신

한국어로 대화하며 문화교류·세대공감

 

용산노인종합복지관 사회복무요원 조용민씨는 유학생 경험을 살려 어르신들과 외국인 학생들이 한국어로 대화하는 ‘세이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용산노인종합복지관 사회복무요원 조용민씨는 유학생 경험을 살려 어르신들과 외국인 학생들이 한국어로 대화하는 ‘세이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서울 용산구 한남동 용산노인종합복지관에서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30분씩 미국 명문대 대학생과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대화하는 어르신들을 볼 수 있다. 영어 공부 시간이 아니다. 한국어만 사용할 수 있는 한국어 공부 시간이다.

국적과 나이를 뛰어넘은 이 이색적인 만남은 2014년 9월에 시작된 ‘세이(SAY·Seniors and Youth) 프로그램’으로, 프린스턴대와 예일대에서 교양수업으로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다. 외국인 학생들은 대한민국 어르신들과 대화하며 한글을 익히고, 전통문화를 배운다.

 

세이 프로그램 운영자인 조용민(왼쪽)씨와 시니어 매니저 김혜원씨는 “세대 간 교류와 공감, 소통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세이 프로그램 운영자인 조용민(왼쪽)씨와 시니어 매니저 김혜원씨는 “세대 간 교류와 공감, 소통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어르신들과 학생들의 만남을 주선한 주인공은 스물네 살 청년 조용민씨다. 프린스턴대에서 국제정책을 공부하는 그는 현재 용산노인종합복지관에서 군 복무 중인 사회복무 요원이다. 주방에서 설거지하는 것이 주요 업무였던 그는 많은 어르신을 자연스럽게 만나게 됐고, ‘공익으로서 여기서 무얼 더 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됐다.

“재능이 많고 현명한 어르신들을 뵙고, 이분들이 좀 더 의미 있는 일을 하며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미국인 대학생들이 많다. 그 학생들과 은퇴하신 어르신들을 이어주면 어르신들에게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값진 경험과 기회를 제공하고, 학생들에게는 언어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될 거라 생각했다.”

 

김혜원(왼쪽)씨와 조용민씨가 의견을 나누고 있다. 휴학 중인 “김씨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 세이 프로그램 인턴 신청을 했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김혜원(왼쪽)씨와 조용민씨가 의견을 나누고 있다. 휴학 중인 “김씨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 세이 프로그램 인턴 신청을 했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조씨는 아이디어를 곧 실행에 옮겼다. 제일 먼저 프린스턴대 동아시아학과의 한국어 전문 교수님에게 연락해 상의하고 승낙을 받았다. 그 후에 복지관에 기획 의도를 전하고 논의한 후 프린스턴대와 복지관의 기관 대 기관 사업으로 진행하게 됐다. 프린스턴대와의 좋은 출발은 예일대로 이어졌다.

“세이가 추구하는 원칙이 몇 가지 있다. 무조건 한국어를 써야 하고, 상대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오류 수정보다는 소통을 우선시한다. 어르신들이 문법적인 오류 수정 때문에 대화를 멈추고 틀린 것을 지적하기보다는 의미 전달과 서로의 소통 그리고 자신감을 주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또 되도록 학생이 연습을 많이 할 수 있게 유도하고, 세대 간 공감할 수 있는 대화가 중요하다.”

세이 프로그램 인턴으로 활동 중인 김혜원(24)씨도 시니어 매니저로서 어르신들의 영상통화를 돕고 있다. 프린스턴대에서 분자생물학을 전공하는 그는 현재 휴학 중이다. “주로 실험실에서 공부해왔고, 앞으로 실험실에서 졸업논문을 준비해야 한다”는 김씨는 “사람과 소통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색다른 경험을 하고 싶어서 시작하게 됐는데 어르신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위로가 됐고, (미국으로) 돌아가서도 이번 경험을 떠올리며 공부도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용산노인종합복지관에서 세이 프로그램 참여 어르신이 외국인 학생과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세이
용산노인종합복지관에서 세이 프로그램 참여 어르신이 외국인 학생과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세이

대학별로 8명씩 16명의 학생과 어르신 16명이 1 대 1로 만나 한 학기 동안 대화를 이어간다. 어르신들은 2 대 1의 지원자 경쟁률을 뚫고 개별 면접에 합격한 분들이다. 학생들은 중급 이상의 한국어를 구사하는 수준이다. 조씨는 “예를 들어 이번 학기에 텍사스 주에서 온 백인 여학생과 대화를 나누었다면 다음 학기에는 미국 동부에서 자란 동포 2세 남학생과 연결한다”며 “미국은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라는 걸 어르신들이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12월 군 복무를 마치는 조씨가 미국으로 돌아가도 SAY 프로그램은 계속된다. “더 많은 학교와 더 많은 어르신이 세이 프로그램에 참여했으면 좋겠다”는 조씨는 프로그램 관리 주체로서 복지관과 계속 협력할 생각이다. 국제적인 비즈니스맨이 되는 게 꿈이라는 조씨는 ‘세대 공감 서비스’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문화 교류를 지향하고 세대 간 교류, 공감, 소통을 지향하는 그런 단체를 만들고 싶다. 세이 프로그램을 통해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는 좀 더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해서 세대 공감을 이루는 신세대 단체가 됐으면 좋겠다. 신세대와 어르신들을 위한 비영리 단체를 만들고 싶다. 어르신들이 외국에 있는 학생들과 교류할 기회 혹은 의미 있는 젊은이들과 함께할 기회를 제공하는 단체로 성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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