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를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하느냐가 그 나라 민주주의의 질 결정

방향이 옳아도 방법이 서투르면 합리적으로 문제 해결할 수 없어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12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브리핑룸에서 중고교 한국사를 국정교과서로 결정한 배경과 추진 계획 등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12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브리핑룸에서 중고교 한국사를 국정교과서로 결정한 배경과 추진 계획 등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역사 교과서를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이 뜨겁다. 발단은 정부가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방침을 밝혔기 때문이다.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지난 12일 “지금의 역사 교과서들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오류와 이념적 편향성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내용이 많아 학생들에게 역사 인식에 대한 혼란을 주고 있다. 나아가 국론분열과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면서 기존의 검정체제를 개편한다는 정부의 입장을 밝혔다. 이로써 한국사 교과서는 7년 만에 다시 국정 체제로 돌아가게 됐다.

야당은 “역사 쿠데타”라면서 반발했다. 황우여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도 국회에 제출했다. 해임건의안에서 “하나의 교과서를 강요하는 건 국정교과서의 내용에 관계없이 사회 전반에 전체주의적·획일주의적 발상을 확산할 뿐이고, 민주주의가 필요로 하는 다양한 세계관, 다양한 사상의 형성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재인 대표는 “역사 통제를 통한 영구 집권 야욕은 오히려 국가와 정권을 패망시켰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야당은 “좋은 대통령은 역사를 만들고, 나쁜 대통령은 역사책을 바꾼다”는 현수막도 내걸었다. 이에 대해 여당은 “이념 편향의 역사를 국민 통합의 역사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자라나는 미래 세대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부심을 느끼게 하고, 나아가 진정한 국민 통합을 위해서는 균형 잡힌 올바른 역사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싼 민심도 양분되고 있다. 지난 10월 2일 리얼미터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검정 교과서’를 선호하는 응답이 43.1%로, ‘국정 교과서’를 선호하는 응답(42.8%)과 비교해 오차범위 내에서 팽팽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성향별로는 보수층에서는 국정 62.2% 대 검정 25.0%, 진보층에서는 그 비율이 17.4% 대 68.0%로 조사됐다. 그런데 중도층에서는 국정 46.6% 대 검정 46.1%로 오차범위 내에서 두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이런 조사 결과는 국정 교과서 이슈가 보수 결집만이 아니라 진보 결집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기존의 ‘25% 진보, 35% 중도, 40% 보수’의 ‘기울어진 운동장’이 ‘40% 진보, 20% 중도, 40% 보수’의 ‘편편한 운동장’으로 바뀔 수 있다.

정치권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쟁을 지켜보면서 몇 가지 문제를 제기한다. 첫째, 정부 주장대로 기존의 검정 교과서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훼손하고 좌편향됐다면 그동안 정부는 무엇을 했단 말인가. 검정 교과서를 승인한 주체가 교육부인데 이제 와서 교과서가 잘못됐고 올바른 역사관 확립을 위한 교과서를 만들겠다는 것은 그동안 직무 유기를 했다는 것 아닌가.

또한 교육부는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해야 하는 근거로 “사관은 다양해도 하나의 역사를 배워야 한다” 논리를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논리는 세계 모든 나라가 국정 교과서 체제로 돌아가지 않는 추세를 설명하지 못한다. 둘째,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은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야당의 논리는 과연 타당한가.

국정 교과서가 다양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단점은 있다. 하지만 국정 교과서가 만들어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결과를 예단할 수 있는가. 더욱이 아무리 교과서 문제가 중요해도 야당이 예산 및 각종 법안과 연계하는 것은 잘못된 발상이다. 야당 스스로 패배하는 길을 가는 것이다.

셋째,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설명은 충분한가. 박 대통령은 미국 방문 전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역사 교육은 정쟁이나 이념 대립으로 국민을 가르고 학생들을 나눠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더 나아가 “정치권이 불필요한 논란으로 국론 분열을 일으키기보다 올바른 역사교육 정상화를 이뤄 국민 통합의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했다.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역사 교과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왜 꼭 국정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어떤 나라든 문제는 발생한다. 그런데 문제를 대화와 타협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을 통해 해결하느냐가 그 나라 민주주의의 질을 결정한다. 여야 모두 방향이 아무리 옳아도 방법이 투박하고 서투르면 합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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