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성의 날’을 이틀 앞둔 3월 6일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주최로 대구백화점 앞에서 열린 세계여성의 날 기념 대구여성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여성의 인권 보장과 일자리 확대를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세계여성의 날’을 이틀 앞둔 3월 6일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주최로 대구백화점 앞에서 열린 세계여성의 날 기념 대구여성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여성의 인권 보장과 일자리 확대를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오래전 유학 시절,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국제관계 연구의 세계적 석학 케네스 월츠 교수로부터 들은 얘기다. 남성과 여성 간 성별분업 규범이 사라진 세상에서 이혼의 증가를 막을 길은 없다. 분업이 불가능한 독립 국가들이 겨루기 시작하면 전쟁을 피할 수 없는 것처럼. 두 아들 모두의 이혼을 전쟁이론으로 설명했다. 30년도 더 지난 지금 그를 떠올리는 것은 평등한 주권국가로서의 남성과 여성 사이에 친밀한 평화 정착의 전략 같은 것이 있기나 한 것인지 묻고 싶기 때문이다.

성별분업이 평화의 열쇠라고? 성별분업은 20세기 내내 주류 사회과학에 의해 이론적으로 무장되고, 복지국가라는 정치경제 체제 속에서 이데올로기가 됐다. 파슨즈 등 기능주의 사회학자들이 모성은 여성에게 생물학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라 전제하고, 분업을 개인과 사회의 관계로 이해했다.

인간자본론의 경제학자 게리 베커는 가구 내에서 남편과 아내는 자신들의 비교 우위에 따라 가사노동과 임금노동으로 분업하는 것이 남편과 아내의 효용의 합을 극대화하는 길이라며 성별분업의 경제적 효율성을 강조했다. 복지국가는 남성의 유급 생산노동과 여성의 무급 재생산노동을 전제로 황금기를 구가했다.

그동안 페미니스트들은 성별분업의 사회학적 전제를 거부하고, 성별분업의 경제논리의 한계를 비판하며, 전후 복지국가 체제의 성 분업적 이데올로기를 맹렬히 공격해 왔다. 일터에서, 사회에서, 가정에서 “여성이 인간으로서 존중받는 세상”이 오기는 하려나? 성평등과 성별분업의 각축은 깊어가고, 여성의 시민권은 남성과의 평등에 근거해야 하는지 차이에 근거해야 하는지, 울스톤크래프트의 딜레마는 풀릴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최근 세계은행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같은 국제기구들이 성별분업이 아니라 성평등의 경제논리 개발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2012년 12월 OECD는 30개 회원국의 50년(1969∼2008) 경제성장 경험을 실증분석해 성별 격차의 축소야말로 어떤 투자보다 수익률이 높은 경제성장 전략임을 증명하는 보고서를 냈다. 경제가 성장하면 성평등이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 성별 격차가 해소되면 경제가 성장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성평등은 더 이상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중대한 경제‧사회 문제이고 시대의 명령이다. 저성장과 긴축의 시대에 성평등은 국가경쟁력과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의 주요 전략이고, 전 지구적 생존의 과제다.” 앙헬 구리아 OECD 사무총장이 한 말이다.

주요 국제기구의 이러한 논리의 전환은 일단 환영해야겠지만, 편안하지만은 않다. 우선 이들의 관심이 평등과 정의로서의 성평등보다 경제성장의 원동력으로서의 성평등에 있다는 것이 우려스럽고 더 중요한 것은 한국처럼 교육의 성별 격차 축소에 성공해 여학생의 대학 진학률이 남학생을 앞질러도, 여성 고용률은 50%대를 못 벗어나고, 세계경제포럼(WEF)의 성별격차지수가 세계 113위 수준일 수 있다는 것이다. 성평등의 경제논리가 가부장적 성별분업의 이데올로기를 압도하려면 해야 할 일이 많고 갈 길이 멀다.

“여성이 인간으로서 존중받는 세상” 만들기는 영겁의 시간을 요하는 숙제일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지칠 수 없는 것은 그것이 우리 딸들의 희망이고, 인류 역사의 방향이고, 그리고 영겁은 찰나와 동의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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