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여성문화인상’ 한복려 궁중음식연구원 원장

조선왕조 궁중음식 3대 기능보유자

궁중음식연구원 이끌며 한식문화 연구

경복궁 소주방 복원 자문 등

궁중음식 레시피 재현에 힘써

 

한복려 원장이 5일 한옥으로 지어진 궁중음식연구원에서 간장독을 살펴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한복려 원장이 5일 한옥으로 지어진 궁중음식연구원에서 간장독을 살펴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제가 여태껏 노력해온 것은 음식문화를 어떻게 이어가야 할 것인가 고민한 일이다. 이번에 주시는 상은 ‘잘했다’고 그동안의 노력을 칭찬해주시는 것으로 알고 더 열심히 하겠다.”

국가 지정 중요무형문화재이자 한국 전통음식의 정수 ‘궁중음식’의 기능보유자인 한복려(68) 궁중음식연구원 원장이 ‘2015 올해의 여성문화인상’을 수상했다. 한 원장은 궁중음식 연구가인 고 황혜성 교수의 맏딸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전통음식 문화와 밀접한 환경에서 자랐다.

어머니 황혜성 교수는 조선왕조의 마지막 두 왕인 고종과 순종을 모셨던 고 한희순 주방 상궁으로부터 궁중음식 비법을 전수해 계승했다. 한 원장은 1970년대부터 전수하기 시작해 200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38호 조선왕조 궁중음식 3대 기능보유자로 지정됐다. 궁중음식뿐만 아니라 향토 음식 등 한국 음식문화의 거의 모든 분야를 연구·발표했다. 시상식을 앞두고 한 원장과 마주했다.

-궁중음식연구원이 문을 연 지 44년이다.

“문을 연 1971년 당시만 해도 음식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건데 그게 무슨 문화재가 될 수 있느냐는 반발이 많았다. 그래도 어머니께서 뜻을 굽히지 않고 음식도 무형문화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앞을 내다보는 분이셨다. 어머니가 하시고자 했던 일이 딸들을 통해서 이어져 왔다.”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나실 것 같다.

“책을 보고 연구하다 보면 이게 맞을까에 대한 판단이 안 설 때가 있다. 궁금하기도 하고, 옆에 계시면 얼른 뛰어가서 여쭤보고 싶은데 그게 안 되니까…. 다 마찬가지다. 역사와 관련된 것은 누가 살아 돌아와서 가르쳐주는 게 아니니까. 과거에 좀 더 많이 여쭤봤어야 했는데 이제야 정신 차려보니 안 계신 거다.”

 

궁중음식 연구가 고 황혜성 교수의 맏딸인 한복려 원장은 ‘황혜성 기념관’을 세워 궁중음식의 세계를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궁중음식 연구가 고 황혜성 교수의 맏딸인 한복려 원장은 ‘황혜성 기념관’을 세워 궁중음식의 세계를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아직 고증해야 할 궁중음식 자료가 많은가.

“무궁무진하다. 궁중의 기록인 의궤를 보면 각종 연회가 있고 연회 안에 들어가는 음식상이 다양하다. 시간대별로 언제 들어갔나, 많은 음식을 어떻게 만들었나, 불도 없고 등도 없을 때인데…. 연구할수록 궁의 음식 준비라는 게 정말 엄청나고 대단했었구나 하는 걸 느낀다.”

-제사 음식도 지금과는 달랐을 것 같다.

“유교 성리학에 따라 제사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의례적으로 준비하는 명절 제사부터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누구를 참여시켰는지, 누구를 위해 상을 차렸는지에 대해 발기라는 두루마리 흰색 한지에 쭉 써놓은 게 몇만 통이다. 한학이나 한국학, 국문학 학자들이 연구해서 일종의 논문 형식으로 발표한 자료도 많지만, 실제로 음식하는 사람과 보는 관점이 다르니까 아쉬울 때가 많다.”

-이론과 실기 중 어느 부분이 더 중요한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받으면 기능적인 면과 솜씨에 관해서만 얘기한다. 하지만 그건 단순한 기능이지 궁중음식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문화를 보여줄 수 있는 건 아니다. 무형문화재 궁중음식 기능보유자는 기능과 함께 이론·학문적인 것을 함께 겸해야 한다. 그다음 단계는 실질적으로 생활 속에서 이것을 어떻게 적용을 하느냐 하는 고민이다. 10년 동안 해도 두 가지를 다 갖추려면 굉장히 힘들다.”

 

경복궁 내소주방 전시_사계절 상차림 중 가을(두부전골) ⓒ궁중음식연구원
경복궁 내소주방 전시_사계절 상차림 중 가을(두부전골) ⓒ궁중음식연구원

-최근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은 무엇인가.

“일제강점기에 경복궁이 훼손되면서 함께 사라졌던 소주방이 100년 만에 중건되면서 실제로 이곳에서 만들었던 궁중음식을 재현한 일과 조선왕조 궁중음식의 산실인 창덕궁 낙선재에서 궁중음식전을 개최한 일이다. 낙선재는 궁중음식 조리법이 저희 어머니에게 전해져 오늘날까지 전승되게 한 역사적 장소인데 먼지만 나고 있는 게 안타까웠다. 낙선재가 어떤 곳인지, 궁궐의 식생활과 연결하면 참 좋은 문화 상품이 나올 수 있지 않겠는가.”

-항상 궁중음식이 어렵지 않다고 주장하셨다.

“궁중음식은 들어가는 재료와 조리 단계가 많아서 실제로 그렇게 해보라고 하면 다 따라 할 수 없다. 그리고 그렇게 조리한 음식이 지금의 음식보다 더 맛있다고 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궁중음식은 무엇이냐. 상대를 위해 성심껏 만든 음식이라면 궁중음식이 될 수 있다. 궁중음식이 화려했던 것은 국가의 상징, 왕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서였다. 백성이 다 보는 거니까. 하지만 일상에선 내실이 중요하다. 상대방을 위해 정성스럽게, 맛있게 만들면 되지 않나.”

-꼭 하고 싶은 새로운 계획이 있다면.

“나이도 있고, 이제는 정리하는 단계다. 사람들에게 궁중음식의 뿌리와 어머니의 업적을 알릴 수 있는 기념관을 세우고 싶다. 고향인 충남 덕산에 ‘황혜성 기념관’을 세우고 궁중음식의 세계를 보여줄 수 있도록 형제들과 함께 기획하고 있다. 콘텐츠는 많이 가지고 있는데 자본이 부족하니 지원금도 많이 확보해야 한다. 이 공간을 완성하는 것이 저의 마지막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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