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성병숙·서송희 모녀

같은 무대서 첫 연기 호흡

서송희 “엄마는 선생님이자 친구”

성병숙 “딸이 옆 사람 배려하는 좋은 배우 됐으면”

 

성병숙(왼쪽), 서송희 모녀가 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무대에 선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성병숙(왼쪽), 서송희 모녀가 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무대에 선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작품이 엄마하고 딸 얘기인데 그냥 얘하고 나다. 나는 푼수고, 얘는 백수고.(웃음) 우리를 위해서 누군가 써준 것만 같다. 그래서 이 연극을 하면서 그렇게 행복한가 보다. 성격이나 설정이나 벌어지는 일들이 거의 우리 집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정말 재밌다.”

반달눈에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웃는 환한 미소가 똑 닮았다. 배우 성병숙(60), 서송희(32) 모녀가 함께 연극 무대에 오른다. 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담은 오승수 연출가의 ‘내가 가장 예뻤을 때’가 처음으로 두 사람을 한 무대로 이끌었다.

38년 전 성우로 방송생활을 시작한 성병숙씨는 영화와 드라마, 연극을 넘나들며 연기자로 맹활약 중이다. 유독 ‘엄마’ 역할이 많다. 인기리에 방영된 tvN 드라마 ‘미생’에서 주인공 ‘장그래’의 엄마 역을 맡기도 했다. 때로는 인자하고 속정 깊은 엄마로, 때로는 억척스럽고 고집 센 엄마로 작품마다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성씨의 외동딸 서송희씨도 엄마와 같은 배우의 길을 걷고 있다. 그는 서울예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했지만, 한때 유치원 영어교사로 일하며 연기 생활을 접기도 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생활은 보람 있고 즐거웠지만, 연기에 대한 갈망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연극 연습이 한창인 두 사람을 서울 종로구 혜화동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나 “함께여서 행복하다”는 모녀 이야기를 들어봤다.

-성병숙씨는 이번 연극에 두 번째 출연이다. 이번엔 딸과 함께 무대에 선다.

성병숙 “정말 좋아하는 작품이고, 판타지가 있어서 보는 사람도 행복한 연극이다. 다시 하자는 제안이 왔을 때, 다른 스케줄 때문에 못 할 것 같더라. ‘이번엔 어렵겠다’ 말하려고 나갔는데 얘기하다가 ‘알았어. 할게’ 이렇게 됐다. 오 연출이 ‘따님 요즘 뭐해요. 이 작품 하고 싶어 할까요’ 물었다. 생각해보니 극 중 딸 나이가 딱 송희 나이다. 백수에다가 결혼할 나이인 것도 똑같고…. 송희에게 물어보니까 무척 좋아하더라.”

서송희 “‘갈매기’라는 작품을 준비 중이어서 두 작품을 다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긴 했다. 엄마가 배우로서 이 나이에 이런 작품 만나기 어렵고, 너무 아까운 기회라고 하시더라. 그래서 욕심을 냈다.”

 

성병숙씨는 이번 연극이 “푼수 엄마와 철없는 백수 딸의 이야기”라며 자신들과 많이 닮았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성병숙씨는 이번 연극이 “푼수 엄마와 철없는 백수 딸의 이야기”라며 자신들과 많이 닮았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연습할 때 가족이라 더 힘들지는 않나.

서송희 “장단점이 있겠지만, 좋은 점이 더 많다. 다른 선생님이나 선배님과 연기하면 이렇게 편하게는 못할 거다. 혼낼 수 있는 상황에서도 부족한 부분을 감싸주시곤 한다. 엄마한테 모든 걸 의논하는 편이다. 집에서도 ‘엄마, 나 이거 너무 힘든데 어떻게 해’ 하면서. 엄마는 선생님이다. 편하다.”

성병숙 “연극을 같이 하는 이 순간이 송희와 나에겐 인생의 봄날인 것 같다. 작품이 굉장히 밝고 즐겁다. 서로 장난치고 싸우면 속이 시원하다. 평소 딸한테 소리 지르지 못하고, 얘도 나한테 대들고 윽박지르지 못하지 않나. 연극에서는 그럴 수 있어서 대리만족을 느낀다.”

-엄마와 딸이 꼭 봐야 하는 연극인 것 같다.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

성병숙 “푼수 엄마하고 철없는 백수 딸의 이야기다. 엄마는 행복 여사다. 늘 즐겁고 웃고 노래하고 춤추는 엄마다. 극 중 딸은 청춘이니 고민이 많다. 성우 시험을 볼 때마다 떨어진다. 결혼에 대한 고민도 많다. 엄마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딸이 자기 꿈을 이루고 결혼도 했으면 하고 바란다. 그런데 딸은 자기가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게 아닌데 안 되니까 답답한 거다.”

서송희 “이런 대사가 있다. ‘너는 적금도 못 내고, 요리도 못 하고, 보험료도 내본 적 없잖아’ 딱 내 얘기더라. 연기라는 게 작품을 하고 있으면 백수가 아니지만, 극을 놓으면 그 순간 백수가 된다. 다른 친구들은 결혼도 하고 자기가 꿈꾸던 삶에 조금씩 다가가고 있는데 나만 도태된 것 같이 느껴질 때가 있었다. 나를 믿어주는 엄마에게 미안한 생각도 든다. 결혼하라고 윽박지르는 성격이 아니시고, 학창시절에도 공부하란 소리를 안 하셨다. 그런 것에 대한 감정이입이 된다. 극 중에서 엄마가 아프지만, 딸은 그걸 모른다. 철이 없어서….”

성병숙 “자식들은 엄마가 아프다고 하면 그냥 ‘병원 가’ 이러거나 ‘엄만 그러면서 일은 다 하잖아’ 그런다. 꼭 꾀병이나 늘 있는 현상처럼 흘려듣는다. 어느 딸이나 마찬가지다. 극 중에서 딸이 ‘엄마는 약을 그렇게 챙겨 먹으니까 100년은 살 거야’ 그런다. 딸아 너만 아프니 나도 아프다.”

 

이혼 등 가슴 아픈 가정사를 대중에게 밝힌 바 있는 성병숙씨는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겪으며 어른이 됐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이혼 등 가슴 아픈 가정사를 대중에게 밝힌 바 있는 성병숙씨는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겪으며 어른이 됐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송희씨가 연기자의 길을 가겠다고 했을 때 엄마는 어떤 반응이었나.

서송희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좋아하지도 않으셨다. 어려운 길을 굳이 가야 하나 생각했던 것 같다. 연기를 하면서도 엄마가 이 일을 하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친구들이 사회에서 자리를 잡는 걸 보면서 ‘난 도대체 뭐하고 있나’ 생각이 들었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로 한번 다르게 살아보자 해서 유치원 영어교사도 해보고 해외 봉사도 갔었다.”

성병숙 “뭘 해도 좋으니 백수로 놀지 말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연기는 작품이 안 들어오면 힘든 일이다. 그 빈 시간을 실망하지 않고 기다리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송희가 작품이 없어 쉬고 있을 때 ‘놀지 말고 아르바이트를 하면 어때’ 했는데 마침 강남의 유치원에 자리가 생겼다. 송희가 선생님을 한다는 게 너무너무 자랑스러웠다. 아이들과 학부모들에게 지금도 연락이 올 정도로 잘했다. 그런데 마음속에는 연기에 대한 꿈이 있었던 거다.”

서송희 “영어교사를 그만두고, 선교단체를 따라 아이티와 도미니카공화국으로 봉사활동을 나갔는데 거기서 콜레라에 걸려 죽을 뻔했다. 그때 무엇을 하며 살고 싶은지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연극이 떠올랐다. 내 안에서는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알고 있었던 거다. 연기를 시작하면 힘들겠지만, 자꾸 모른 척할 수가 없겠더라. 그래서 지나가는 말로 엄마에게 다시 얘기했다. 진짜 하고 싶은 게 뭔지 생각했는데 연기인 거 같다고.”

성병숙 “그런 와중에 송희 지도교수님에게서 연극 ‘갈매기’ 공연을 해보겠느냐는 전화가 왔는데 10분 안에 튀어나가더라. 꿈을 꾸면 이루어지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런 연락이 오는 것만 봐도….”

-딸이 콜레라에 걸려 생사를 오갈 때 정말 걱정이 컸겠다.

성병숙 “지난 1월 20일에 도미니카에서 전화가 왔다. 송희가 뎅기열인 거 같다고 하더라. 인터넷을 열심히 찾아봤더니 크게 걱정할 병이 아니어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새벽에 콜레라인 것 같다고 전화가 다시 온 거다. 수액만 잘 맞으면 죽지 않는다지만, 도미니카에 그게 충분히 있는지 모르니까…. 그날이 내 환갑 생일이었다. 처음엔 안 와도 된다더니 애가 깨어나질 않으니 오셔야 하겠다고 하더라. 비행기 표를 구하러 다니는데 깨어났다는 전화가 왔다.”

 

서송희씨는 “엄마처럼 끊임없이 작품을 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서송희씨는 “엄마처럼 끊임없이 작품을 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60세 생일에 딸이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다. 멀리서 두렵지 않았나.

성병숙 “걱정보다는 꼭 일어난다는 믿음 같은 게 있었다. 송희가 보름 후에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왔는데 아침, 점심, 저녁 늘 붙어서 밥을 먹였다. 같이 운동도 하면서 일할 때만 빼고는 온종일 붙어서 살았다. 둘이 그렇게 붙어 있었던 게 평생 처음일 거다. 처음 산책할 때 송희는 거의 80세 노인처럼 걸었다. 송희가 나를 앞서가는 데 8개월이 걸렸다. 70% 회복됐다. 완치까지 2년 걸린다고 하더라.”

서송희 “엄마가 음식을 잘 챙겨주셔서 그렇지 안 그랬으면 더 오래갔을 거다. 그래서 이 연극이 더 의미가 크다. 엄마가 올해 환갑이니까 이만한 선물을 어디서 돈을 주고 살 수 있겠나. 몸으로 때우는 선물이라 진짜 기억에 많이 남을 거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싶다.”

-두 번의 이혼과 친정어머니의 건강 악화, 경제적인 위기 등 힘든 시기를 겪었다.

성병숙 “돌아보면 어렵다고 다 나쁜 것도 아니고, 좋다고 다 좋은 것도 아니다. 인생이 소풍 같다는 생각이 든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겪었지만 그러다 보니 내가 어른이 됐다. 이제는 남이 아픈 것도 보이기 시작했다. 겪고 나니 좋은 일이다. 그리고 그걸 이겨냈다.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다음에도 그런 일을 겪게 된다면 나는 한번 졸업했으니까 이제 겁날 게 없다. 송희를 보면 얼마나 아픈 청춘인지 보인다. 사랑하는 내 딸이니까 언제나 내가 내민 손을 잡을 거라 생각한다.”

서송희 “그땐 많이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웃기다. 뭐가 그렇게 힘들다고…. 저한테는 피가 되고 살이 됐다. 사람들이 저를 보면서 힘든 일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엄마가 구김 없이 키워주셔서 그런 것 같다. 엄마 선에서 최선을 다해서 보호해주시고, 늘 도와주셨다. 극 중 엄마랑 같다. 여자 혼자 가장으로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돈을 벌어보기 전까지는 몰랐다. 엄마가 나를 먹여 살리고, 가정을 이끌기 위해 얼마나 많이 고개 숙이고 살았겠나. 싫어도 안 가리고 다 하셨을 거라 생각하니 짠하더라. 짠한 만큼 엄마가 굉장히 자랑스럽고 크게 보였다. 엄마는 초긍정 행복 여사다.”

-같은 연기자로서 딸에게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성병숙 “본인의 성격대로 살지 말고, 늘 지혜롭게 잘 넘겼으면 좋겠다. 매우 기쁠 때 표현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 내가 기쁘고 행복하면 나를 보며 누군가는 불행을 느낄 수도 있다. 그 사람의 마음도 헤아려라. 힘들어도 세상 끝날 듯이 하지 말고 매일 새로운 힘으로.”

서송희 “엄마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끊임없이 일이 있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다. 끊임없이 자기를 채우고 노력하면서 어떤 작품이 와도 할 수 있는 그런 배우. 늘 나를 찾는 사람이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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