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미생’을 보면서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직장 내 괴롭힘(workplace harassment)을 너무 미화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흔히 직장 내 괴롭힘은 정신적 공격(폭언, 모욕 등), 인간관계 단절(따돌림, 무시 등), 업무 방해(과다한 요구 또는 과소 요구), 신체적 공격 등으로 나타난다. ‘미생’을 보면 곳곳에서 직장 내 괴롭힘이 일상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마치 직장생활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인 것처럼.

 

드라마 미생서 안영이 역을 맡은 강소라. ⓒtvN
드라마 미생서 안영이 역을 맡은 강소라. ⓒtvN

국내에서 직장 내 괴롭힘이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2014년 11월 KT 직장 내 괴롭힘 실태조사 보고회가 열렸다. KT 사례는 ‘경영전략으로서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는 것으로 기업이 구조조정을 위해 의도적으로 노동자들을 괴롭힌 경우였다. 뒤이어 지난 1월 KBS 시사기획 창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 인격 없는 일터’를 방영했다. 7개 업종, 5922명의 근로자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직장 내 괴롭힘 피해율이 16.5%나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국제기준보다 1.5배는 높은 수치였다. 예상할 수 있듯이, 주 가해자는 상사였다. ‘미생’에서 볼 수 있듯이, 부하직원 괴롭힘이 만연한 것이다. 직장 내 괴롭힘은 부하직원에 대한 훈련의 방식이 아니라 범죄다. 대다수의 가해자가 착각하는 사실은 피해자를 괴롭히면 ‘일을 잘하게’ 될 것이라거나, 그만두게 하는 것이 ‘조직을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최근 사회적 관심을 받은 부하직원 괴롭힘보다 먼저 제도적으로 금지된 직장 내 괴롭힘은 우리가 성희롱(Sexual Harassment)이라고 개념화한 성적 괴롭힘이다. 일본에서는 이와 더불어 ‘모성 괴롭힘’을 직장 내 괴롭힘의 대표적인 유형으로 보고 있다. 많은 조직에서 여성들이 임신, 출산을 하면 부정적인 메시지를 보낸다. 알아서 나가라는 것이다. 이때 알아서 나가지 않으면 괴롭힘이 시작된다. 이를 ‘모성 괴롭힘’이라고 개념화한 것이다. 국내에서도 육아휴직 사용 후 복직한 여성 근로자를 괴롭힌 행위에 대해 회사 측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례가 있다. 육아휴직 후 복직한 근로자에게 책상도 배치해 주지 않은 채 왕따 분위기를 선동하고 모욕하는 등 부당하게 대우한 것을 불법행위로 본 것이다.

이로 인해 여성들은 직장 내 괴롭힘에서 더욱 취약하다. 유럽연합(EU)의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조사에 따르면, 피해자는 남성보다 여성이 더 많았으며, 이러한 현상은 대부분의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여성은 남성과 달리 부하직원 괴롭힘뿐만 아니라 성희롱과 모성 괴롭힘의 주된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사실 성차별 관련 많은 사건들을 보면 여성들은 오래전부터 고용차별과 직장 내 괴롭힘을 세트로 경험해 왔다. 성차별에 순응하지 않고, 문제 제기를 하면 그때부터 괴롭힘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직장 내 괴롭힘에 취약한 또 다른 집단은 비정규직이다. 앞서 방송사 조사 결과에서도 비정규직, 구조조정 등 불안정한 고용 상황에 놓인 경우 직장 내 괴롭힘이 증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 서울시는 국내에서 최초로 지난해 ‘비정규직 직장 내 괴롭힘 예방대책’을 발표했다. 비정규직 근로자의 직접고용 전환과 관련해서 공무원 지위 및 권력관계를 이용해 가해지는 다양한 직장 내 괴롭힘을 근절하겠다는 것이다.

스웨덴은 1993년 세계 최초로 직장 내 괴롭힘 조례를 제정했다. 스웨덴처럼 특별법을 제정하지 않더라도, 프랑스, 핀란드, 벨기에, 캐나다 등 다수의 국가들에서 산업안전 관련 법률 등을 통해 직장 내 괴롭힘을 규제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현재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한 2개의 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근로기준법에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을 신설하는 안과 남녀고용평등법의 직장 내 성희롱 규정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변경하는 안이다. 직장 내 괴롭힘을 규제하는 것은 근로자의 노동권과 건강권 보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직장 내 괴롭힘은 개인은 물론 조직의 생산성도 저하시키는 일이다. 조직의 생산성을 높이고자 한다면 근로자들이 직장 내 괴롭힘으로부터 안전한 환경에서 일하도록 해야 한다. 성숙한 조직문화를 만드는 것은 나의 일상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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