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 3년 차 지방 성인지예산제

주민의 삶의 질 높일 씨앗으로

시행 3년 차에 접어든 ‘지방 성인지예산제’가 지역의 성차별을 개선하고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제도로 서서히 뿌리내리고 있다. 지방 성인지예산제는 지방 고유 영역의 예산사업에 대해 미리 여성과 남성에게 미치는 효과를 분석해 성평등하게 예산을 편성, 집행하는 제도다. 여성을 위한 별도 예산을 의미하거나, 예산을 여성과 남성이 반반씩 나누자는 것이 아니다. 예산의 배분 구조가 성불평등에 미치는 효과를 분석해 평등한 방식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자녀와 함께 외출하는 아빠들을 위해 남성 공공 화장실에도 기저귀 교환대를 설치하는 것도 여기에 해당된다.

지방자치단체에 성인지예산제가 도입된 것은 2013년이지만, 여성정책 예산분석 활동은 이전부터 이뤄져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경기 고양시의 ‘꽃아가씨 선발대회’ 폐지다. 고양시는 2002년 당시 성 상품화와 예산 낭비의 전형으로 꼽히던 이 행사에 매년 6억원이 넘는 지자체 예산을 투입하고 있었다. 이에 여성단체와 지방의원 등이 성인지 관점에서 예산을 분석해 관련 예산 전액이 삭감됐다.

 

지난해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에서 성인지 결산 대상사업 담당자 등 공무원들이 성인지 결산 교육을 받고 있는 모습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지난해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에서 성인지 결산 대상사업 담당자 등 공무원들이 성인지 결산 교육을 받고 있는 모습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최근 성인지예산전국네트워크가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성인지예산센터와 진행한 협력사업을 통해 발간한 보고서 ‘지역을 변화시키는 성인지예산 사례’를 보면 지난 3년간 지방자치단체의 성인지예산제 성과를 볼 수 있다. 아직 눈에 띄는 큰 변화보다는 추진 체계 강화와 공무원과 지방의원의 인식 향상, 예산사업의 성 불평등을 개선하는 점진적인 발전 위주다. 사례집은 2015년 성인지예산서를 토대로 지방의원과 전문가 심층 인터뷰, 성과 분석 등을 통해 △추진 체계 변화 사례 △여성정책 추진사업 사례 △성별영향분석평가 사업 사례 등으로 구분, 정리됐다.

사례집을 보면, 지방 성인지예산제가 예산담당 부서의 고유 업무로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7개 광역자치단체 홈페이지 조직도를 검토한 결과, 광주, 세종, 울산, 인천과 경북, 충북 등 6개 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11개 자치단체는 성인지예산서 담당자를 지정, 업무 분장을 공개했다. 광주광역시의회 등 성인지예산서 전담 부서 설치에 관한 적극적 논의를 시작한 지역도 나타났다. 성인지예산을 주제로 하는 지방의원 대상 연수와 교육도 늘고 있다.

이러한 성인지예산제 추진 체계 강화와 함께 주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 변화도 이뤄지고 있다.

울산의 경우, 경제적 약자인 여성 농업인을 위한 교육을 통해 성 불평등을 개선하고 있다. 울산의 전체 농가 인구 3만1700명 중 여성은 50.9%로 절반을 넘는다. 하지만 여성 농업인은 남편과 함께 농사를 지어도 경영주가 아닌 보조자 위치에 있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농가 경영주로 등록된 여성은 전체의 21% 정도다. 울산시가 농가 경영 형태를 분석한 결과, 여성이 농업 경영주 지위에 있다고 하더라도 대부분 영세한 규모이거나 수익성 낮은 노지 밭작물 재배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상황에도 시가 운영하는 농업전문인력양성교육에 참여하는 여성 비율은 남성의 3분의 1 수준에 그쳤다. 울산시는 성별영향분석평가를 통해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2015년 1억2300만원의 관련 예산을 편성했다. 국제농업경쟁력을 갖춘 농업인 양성을 위한 행사를 열고 홍보를 통해 교육 참여 비중을 늘리기로 한 것이다. 이를 통해 여성 농업인의 교육 참여율을 기존 36%에서 38%로 끌어올린다는 구체적인 계획도 세웠다.

충청남도는 성별영향분석평가를 통해 성별에 따라 선호하는 생활체육 활동의 종목이 다르고 참여 여건도 다르다는 점을 확인했다. 특히 생활체육 활동 참여자 중 남성 비율은 33%로 여성의 절반에 그쳤다. 이에 충청남도는 연령별, 계층별로 프로그램을 개발, 보급해 남성의 참여율을 높이고 성별 수혜 불균형을 해소하기로 했다.

이 밖에도 서울은 주민 참여형 안전 마을 만들기 사업에 성인지 관점을 통합해 운영하고 있으며, 충청북도는 산부인과가 없는 괴산군, 단양군에 거주하는 여성을 위해 찾아가는 산부인과 운영을 결정했다.

하지만 지방 성인지예산제가 안착하기 위해선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지자체나 지방의회의 무관심, 공무원들의 낮은 인식 등과 함께 중앙 차원에서의 교육이나 컨설팅 지원 부족, 성별분리통계 구축 미비 등이 문제로 지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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