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의 존엄성’ 발언한 교황의 첫 방미 맞춰 이민법 개정 촉구 위한 행진

“1100만 이민자 미국 경제의 일부”… 증오 버리고 이민자 포용정책 필요

 

 

여러분은 혼자가 아니에요. 우리가 함께 걸을게요’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행진에 참가한 여학생들. 이처럼 도중에 참여해 이들을 응원하는 여성들도 많았다.
'여러분은 혼자가 아니에요. 우리가 함께 걸을게요’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행진에 참가한 여학생들. 이처럼 도중에 참여해 이들을 응원하는 여성들도 많았다. ⓒWe Belong Together
지난 9월 15일 미국 북동부 펜실베이니아 주 요크 카운티 이민자 수용소 앞에 100명의 여성들이 모여 워싱턴DC까지 약 161㎞, 교황을 만나기 위한 순례길을 떠났다. ‘100명의 여성 100마일의 여정’(100 Women 100 Miles)이란 이름의 이 행진은 22일 프란치스코 교황의 미국 방문에 때맞춰 열린 것으로, 미국 내 이민자들에 대한 부당한 처우를 호소하고 이민법 개정을 촉구하기 위한 행사다. 교황이 도착하는 22일에 워싱턴DC에 입성해 교황을 만나 호소하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이 행사는 전미가사노동자연맹(National Domestic Workers Alliance)과 전미아시아태평양계미국여성포럼(National Asian Pacific American Women's Forum)이 주축이 되어 여성단체와 이민자 단체 등이 함께 벌이고 있는 ‘우리는 하나’(We Belong Together) 캠페인의 일환으로 개최됐다.

캠페인의 공동 대표인 안드레아 크리스티나 메르카도는 “이번 행진은 우리 가족과 1100만 명의 미등록 이민자들을 위한 희생과 사랑”이라며 국민의 마음을 움직여 미국의 이민정책이 ‘공감의 정책’으로 바뀌기를 희망했다.

유럽에서 시리아 난민 문제가 이슈라면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는 이민자 문제가 ‘뜨거운 감자’다. 지난해 11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에서 5년 이상 거주했으며 미국 시민권자나 영주권자 자녀를 둔 미등록 이민자에 대한 추방을 유예하는 이민법 개혁안을 발표했지만 공화당의 거센 반대와 법원의 제동으로 인해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민법 개정은 다가오는 차기 대선 후보들에게도 중요한 이슈 중 하나다.

이번 행진에 참여한 100명의 여성들은 대선 후보들 앞으로 공개 서한을 띄우기도 했다. 이들은 대선 후보들이 내놓은 이민자 정책이 ‘미사여구로 치장한 재활용 정책’이라고 비판하며 1100만의 미등록 이민자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미국의 경제를 떠받치고 있다는 현실을 깨닫고 이민자들에 대한 증오가 바탕이 된 이민정책을 버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민법 개정을 호소하며 100마일 행진에 나선 여성들의 행렬. ⓒWe Belong Together
이민법 개정을 호소하며 100마일 행진에 나선 여성들의 행렬. ⓒWe Belong Together
100명의 여성들은 각자 저마다의 아픈 사연을 간직한 채 행진에 참여했다. 이민법으로 인해 가족과 헤어진 경우, 이민자 수용소에서 힘든 삶을 이어가는 이가 있는가 하면 국외 추방의 위기에 놓인 사람들도 있다.

이민자 인권운동가로 유명한 로시 카라스코는 미국에서 20년간 살았지만 개정 이민법의 ‘국외추방 유예’ 자격을 얻지 못했다. 이민법 개정을 위한 투쟁에 수차례 참여해 왔기 때문이다. 애나 카네구에즈처럼 아이들과 함께 온 이들도 있다. 그는 현재 추방명령을 받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행진에 참여했다. 아이들과 함께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이들도 있다. 로자리오 레예스는 12년 전 엘살바도르에 남겨두고 온 아들과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으리란 희망을 가지고 순례길을 떠났다.

멕시코 출신의 전직 수녀 후아나 플로레스에게 이번 순례길은 독특한 의미를 지닌다. 그는 1979년 전 교황인 요한 바오로 2세가 멕시코를 방문했을 당시 교황의 아침식사를 준비하며 만났던 적이 있다. 그는 현재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가정폭력 피해 여성을 위한 시설에서 일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글로벌화된 이주에는 자비와 협력의 글로벌화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교황은 쓸모없는 사람 없고 쫓겨나지 않는 세계, 국경 없는 교회, 낯선 이를 환영하는 나라를 이야기했습니다.”

플로레스는 행사 보도자료에서 이민자에 대한 교황의 메시지를 전하며 “교황이 이야기한 존중받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많지만 100마일의 여정을 향한 한 걸음 한 걸음으로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22일 드디어 워싱턴 DC에 입성한 행진 행렬의 선두에는 멕시코 출신의 미등록 이민자 실비아 곤잘레스가 섰다. 그는 미국에서 시급 15달러짜리 청소일로 번 돈을 모아 딸을 대학에 보냈다. 그는 자신들의 메시지가 교황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닿기를 바란다면서 “우리 존재조차 모르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가 존재하고 있으며 다른 모든 사람들과 똑같은 대우를 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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