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입법전쟁’ 시작… 여야 확연한 입장차로 극심한 진통 예상 

여성계 “임신·출산 여성 노동자 삶 위협하는 구조개악” 거센 반발

 

1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제89차 본위원회에 참석한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과 김대환 노사정위 위원장,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왼쪽부터)이 합의문 조인식을 마치고 한자리에 모였다. ⓒ뉴시스
1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제89차 본위원회에 참석한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과 김대환 노사정위 위원장,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왼쪽부터)이 합의문 조인식을 마치고 한자리에 모였다. ⓒ뉴시스

 

1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노사정야합 조인식 저지 및 대표자 투쟁 결의대회’에서 민주노총 이영주 사무총장을 비롯한 중앙집행위원회 간부들이 삭발식을 하고 있다. ⓒ뉴시스
1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노사정야합 조인식 저지 및 대표자 투쟁 결의대회’에서 민주노총 이영주 사무총장을 비롯한 중앙집행위원회 간부들이 삭발식을 하고 있다. ⓒ뉴시스

노사정이 외환위기 이후 17년 만에 노동시장 구조 개편안을 내놨다. 하지만 여성계는 “더 쉬운 해고, 더 낮은 임금, 더 나쁜 근로 환경을 가져올 하향 평준화 개편”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는 15일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노사정위 대회의실에서 제89차 본위원회를 열어 ‘노동시장 구조 개선을 위한 노사정 합의문’을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핵심 쟁점으로 꼽혀온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변경 요건 완화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시행치 않으며 노사와 충분한 협의를 거친다고 합의했다.

특히 여성들의 주목을 받아온 일·가정 양립 지원 강화와 관련해선 국·공립 보육시설을 30% 수준으로 단계적으로 확대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민간 보육시설의 투명성 확보, 아동의 안전성과 교사의 근무 여건 개선 등을 통해 보육의 공공성을 제고하고 일하는 부모 등 실수요자 중심으로 지원을 강화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합의가 시행될 경우 고용시장에 지각변동을 가져올 전망이다. 합의안에는 주당 근로시간을 68시간(주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휴일근로 16시간)에서 52시간(주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으로 24%, 16시간 줄어드는 내용이 담겨 있다. 정부·재계가 주장해온 60세 정년 연장에 따른 임금체계 개편은 ‘직무, 숙련 등을 기준으로 노사 자율로 추진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이에 따라 지금의 호봉형 임금체계가 사라지고 역할의 무게와 업무 성격과 강도, 생산성, 성과 등을 따져 월급을 주는 임금체계가 확산될 전망이다. 현재 실직 전 임금의 50% 수준인 실업급여는 60%로, 실직 후 6개월까지 지급하던 지급 기간도 9개월로 늘어나는 내용도 담았다.

노사정은 이번 합의에서 청년 고용 활성화를 위한 노사정의 노력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줄어든 인건비를 모두 청년 고용에 투입한다고 가정했을 때 2019년까지 81만8649명이 새롭게 직장을 구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실천하기에 따라 독일 하르츠 개혁, 네덜란드 바세나르협약처럼 후세들로부터 한국병을 고친 노사정 대타협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노동시장 개혁의 첫 삽을 떴다”며 “능력, 성과와 관계없이 정년이 보장되는 등 불공평한 제도를 개선해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와 여당은 합의안을 토대로 입법 절차에 돌입했다. 새누리당은 16일 의원총회에서 5대 노동 입법을 당론으로 발의한 데 이어 20일 당·정·청 정책조정협의회를 열기로 했다. 5대 입법안은 근로기준법·고용보험법·산재보험법·기간제근로자법·파견근로자법 개정안 등이다. 새정치민주연합도 ‘맞불 카드’가 될 대안 입법 발의를 서두르고 있다. 하지만 여야 입장 차가 뚜렷한데다 한국노총도 “새누리당 법안이 합의문을 위반했다”며 반발해 향후 입법 과정에서 극심한 진통이 예고된다.

하지만 여성계를 비롯해 시민사회단체는 노조 울타리 바깥에 방치된 노동자 1800만 명의 고용이 불안정해진다며 반발하고 있다. 국내 노조 조직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가장 낮은 10.3%다.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률은 2%뿐이다. 노동계의 또 다른 축인 민주노총은 합의를 ‘노동 개악을 위한 야합’이라고 규정하고 전면적인 반대 투쟁을 벌이고 있다.

여성계는 기간제 근로자 사용 기한을 4년으로 연장하는 내용을 비롯해 저성과자와 근무 불량자를 해고할 수 있는 일반해고 도입, 파견 업종 확대, 취업 규칙 불이익 변경 기준 완화가 모두 여성에게 불리할 것으로 보고 있다. 김금옥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는 “임신, 출산을 한 여성을 기피하기 위해 ‘저성과’라는 명목을 씌워 쉽게 일반해고하는 길이 열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여성 노동자의 60%가 비정규직이며 성별 임금격차는 수십 년째 OECD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노동시장 개편안이 가뜩이나 노동환경이 나쁜 여성들을 더 불리하게 만들 것이라는 지적이다.

한국여성민우회와 지역여성민우회 9곳도 14일 긴급 성명을 내고 “여성 노동자들의 삶을 위협할 것”이라며 비판했다. 박봉정숙 민우회 상임대표는 “육아휴직이나 출산휴가를 사용한 여성 노동자들이 그해 가장 낮은 성과를 받는 불이익을 받았고, 직장 내 성희롱과 성차별로 사내에 문제 제기를 한 여성 역시 낮은 성과를 받는 등 업무상 불이익에 노출돼 왔다”며 “일반해고 도입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약한 고리에 있는 여성 노동자들을 겨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