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군사 대치 상황은 ‘치킨 게임’ 성격 강해

양쪽이 끝까지 포기 안 하면 전쟁이란 최악의 상황도

안보를 국내 정치와 선거에는 활용 말아야

 

박근혜 대통령이 21일 북한의 포격 도발과 관련해 경기도 용인의 제3야전군 사령부를 방문, 우리 군의 대응 태세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한민구 국방장관, 박 대통령,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뉴시스·여성신문
박근혜 대통령이 21일 북한의 포격 도발과 관련해 경기도 용인의 제3야전군 사령부를 방문, 우리 군의 대응 태세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한민구 국방장관, 박 대통령,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뉴시스·여성신문
한반도에 짙게 깔려 있었던 일촉즉발의 군사적 충돌 위기가 극적으로 타결됐다. 남과 북이 ‘무박 4일’의 고위급 접촉을 통해 6개항의 합의를 도출했기 때문이다. 핵심 내용은 남북 당국회담 개최, 비무장지대에서의 지뢰 폭발에 대한 북측의 유감 표명,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 북측의 준전시상태 해제,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실무접촉, 다양한 분야에서 민간 교류 활성화 등이 포함됐다.

이번 남북한 군사 대치 상황은 ‘치킨(chicken) 게임’ 성격이 강하다. 치킨 게임에서는 어떤 사안(DMZ 지뢰 도발)에 대해 대립하는 두 집단(대한민국과 북한)이 있을 때 누구든지 먼저 포기하면 ‘겁쟁이’(치킨)가 되지만, 양쪽 모두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모두에게 최악의 상황(전쟁)이 벌어진다.

국가 간에 발생한 가장 대표적인 치킨 게임은 쿠바 미사일 위기다. 1962년 10월에 미국 첩보기에 의해 쿠바에 건설 중이던 소련 미사일 기지의 사진과 건설 현장으로 부품을 운반하던 소련 선박의 사진이 촬영되면서 미·소 간 군사적 대립이 촉발됐다.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소련이 쿠바에서 미사일 기지의 완공을 강행한다면 제3차 세계대전도 불사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특히 쿠바 앞바다에 봉쇄선(sea lane)을 설정하고 만약 소련 배가 이 봉쇄선을 넘으면 미국 본토를 공격한 것으로 간주하겠다는 내용의 최후통첩을 소련에게 보냈다. 쿠바 미사일 위기가 발생한지 13일 만에 소련이 배를 본국으로 회항하면서 위기는 종결됐다. 미국의 단호한 의지와 전쟁의 위험성을 간파한 소련이 양보했기 때문이다.

치킨 게임에서는 보통 폭탄성 최후통첩을 보내는 쪽이 승리한다. 이번 남북한 군사 대치 상황도 비슷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남북한 고위급 회담 도중에 청와대 수석 비서관회의에서 “북한의 확실한 사과와 재발 방지가 필요하다” “결코 물러설 사안이 아니다” “그렇지 않으면 확성기 방송을 유지할 것”이라며 북측에 최후통첩성 발언을 했다. 이것이 이번 회담의 극적 타결을 가져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남북 고위급 회담 협상 타결로 군사적 긴장 상태가 끝난 것이 아니다. 남북한이 긴장을 해소하고 한반도 평화와 발전의 전기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를 위해서는 향후 당국 회담을 통해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해 어떤 일을 할 것인가를 둘러싼 차이를 줄여나가야 한다. 북한은 앞으로 당국 회담을 통해 5·24 해제 조치와 금강산 관광 재개를 요구할지 모른다. 이런 민감한 현안에 대해 우리가 대화의 문을 닫아 버려 회담이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오히려 길게 호흡하면서 회담이 지속성을 갖도록 해야 한다.

둘째, 북한에 대한 원칙적인 대응이 성과를 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김정은=겁쟁이’와 같이 북한을 자극하는 발언은 피해야 한다. 국가 간 치킨 게임에서는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승리할 수는 없다. 가령 쿠바 미사일 위기 때 미국이 승리한 것 같지만 실상은 다르다. 미국은 소련이 쿠바 미사일 기지 건설을 중지하는 대가로 터키에 있던 미국의 대륙간 탄도탄(ICBM) 기지를 철수시키고, 향후 쿠바를 침략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서 사태를 종결시켰다. 마찬가지로 이번 합의문에 우리가 요구한 사과나 재발 방지 문구가 빠진 것은 북측에 어느 정도 양보한 것이다. 우리가 완벽하게 승리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셋째, 정부 여당은 안보 문제를 국내 정치와 선거에 활용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동안 국내 정치에서 북한 이슈는 종종 남남 갈등의 원인이 됐다.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안보와 관련해 야당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 대통령이 조만간 문재인 대표를 만나 남북 고위급 접촉 과정과 결과를 상세히 설명하는 기회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

여하튼 이번 사태를 계기로 남북 관계가 대결에서 대화의 장으로 변모하길 기대해 본다. 그동안 구호에만 그쳤던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본격 가동되길 바란다. 이런 기대가 실현되기 위해서 정부는 일시적인 승리에 도취되지 말고 북한을 세심하게 파악하는 역지사지의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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