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아시아태평양 젠더서밋’ 기자간담회 열려
“‘젠더 결함’이 잘못된 과학 지식 생산”
골다공증은 정말 ‘여성 질환’일까? 뼈가 약해져 작은 충격에도 부러질 수 있는 이 병은 ‘폐경기 여성들이 앓기 쉬운 질환’으로 알려졌다. 실제로는 미국·유럽의 골다공증성 골반 골절 환자의 3분의 1이 남성이다. 골절로 인한 결과도 여성보다 남성에게 더 치명적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여성 질환’이라는 편견 탓에, 남성용 골다공증 골밀도 판단 기준은 1997년에야 마련됐다.
이처럼 ‘젠더 결함’이 있는 과학기술 연구결과는 잘못된 지식을 생산하고 불필요한 비용을 초래해 인류의 보건을 위협한다. 과학계는 이러한 사태를 막고 지속 가능하며 효과적인 연구개발에 힘써야 한다고 외쳐왔다. 방법은 남녀의 차이를 인정하고 이를 연구 단계에 반영하는 것이다.
26일 개막한 ‘2015 아시아태평양 젠더서밋’(이하 젠더서밋)은 과학기술 연구개발 시 성·젠더 요소 분석을 도입하도록 촉구하고, 그 우수 사례와 발전 방안을 논의하는 글로벌 포럼이다. 2011년부터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매년 열리며 올해부터 아프리카·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확대됐다.
26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서울플라자호텔 4층 오크룸에서 젠더서밋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혜숙 공동추진위원장(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 소장), 론다 슈빙어 미국 스탠포드대 석좌교수, 엘리자베스 폴리쳐 영국 포샤 소장, 커트 라이스 노르웨이 오슬로 아케르후스 응용과학대학 총장, 아스트리드 린더 스웨덴 국립도로교통연구소(VTI) 소장, 헬레나 왕 중국 통지대(同濟大) 의학박사(더 란셋 아시아 편집장) 등이 참석했다.
“과학기술계 성적 불평등 여전히 심각해...다양성(diversity) 중요”
이날 간담회에서는 과학기술계의 성적 불평등(gender inequality) 문제와, 젠더혁신이 과학기술 연구개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질의응답이 이뤄졌다.
라이스 총장은 “지난 수십 년간 여자 과학도의 수가 급증했지만, 여성이 택할 수 있는 진로와 기회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린더 소장은 “많은 과학자들은 남성 중심의 사고방식을 갖도록 훈련됐고 그들의 연구가 표준으로 삼는 것도 남성”이라고 지적했다.
왕 박사도 학계에 만연한 성차별적 고정관념을 꼬집으며 “성·젠더 요소에 대한 고려 없이 연구개발을 하면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차별받을 수 있다. 최근 이를 입증하는 과학 논문이 다수 발표됐다”고 밝혔다.
참석자들은 ‘과학 공동체 내 다양성(diversity)’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폴리쳐 소장은 “리서치 팀 내 성별 균형이 이뤄질 때 집단 지성이 활성화되는 경향이 있다”며 “한쪽 성별로만 구성된 팀에서는 팀원들의 성적 편견 때문에 좋은 실험 결과를 도출하기 어렵다. 다양한 시각에서 문제에 접근할 때 새롭고 훌륭한 연구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라이스 총장은 “성평등 실현은 사회적 정의 차원만의 문제가 아니라 과학의 질을 높이는 과정이다. 이것이 젠더서밋의 요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불행히도 많은 남성들은 이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젠더서밋도 참석자 대다수는 여성”이라며 “성평등의 가치를 이해하고 협력하려는 남성들이 참여할 때 젠더서밋이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젠더혁신 이루어질 때 창조경제 확산”
여성의 높은 구매력도 과학기술 젠더혁신이 필요한 이유로 꼽힌다. 세계적으로 상품 구매 의사결정의 70%는 여성이 주도한다. 연구개발 단계부터 성·젠더 요소를 반영한 상품·서비스 개발이 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셈이다.
슈빙어 교수는 “현재 대학과 산업계는 젠더혁신 개념에 충격적일 정도로 둔감하다”고 비판하며 “연구비 지원 등을 통해 성·젠더 요소를 고려한 연구결과·기술개발을 장려하고 촉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폴리쳐 소장은 “창조경제가 남성만을 위해 만들어진다면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똑똑한 한국 여성들이 나서서 함께 노력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ICT, 자동차, 미용 분야 등 한국의 발달한 과학기술과 젠더혁신이 만나면 새로운 기술과 시장 창출이 가능하다”며 “예를 들어 미용 분야의 성·젠더 분석을 (아시아 지역에서 심각한 문제로 떠오른) 기후 변화 문제에 적용하면 새로운 해결방안 및 기술 개발로 이어질 수 있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이 위원장은 “과학기술 젠더혁신으로 더 완전한 과학 지식이 창출되고, 새로운 시장이 형성돼 창조경제에 이바지하기를 기대한다”며 “아태 지역에서는 한국이 확산 거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